나를 더 사랑하느냐
140810 조원형목사님
...세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니이다...
(요한복음 21:15~18)
맹자의 성선설이 있다.
기독교인의 견해와 비슷하다. 물은 순리적으로 높은데서 낮은데로 흘러가는 것처럼 사람도 선하게 태어난다. 물을 튕기면 사람의 키를 넘을 때도 있고 물이 밀면 산을 넘을 때도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범죄자가 되었을지라도 주변 상황 영향 때문이지 본래는 선하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은 인간이 약해서 범죄에 이르렀다. 요즈음 사회, 집단에서 일어나는 문제, 사람을 때려죽이고도 재판정에 나와 고개를 빳빳이 든 사병의 이야기가 회자된다. 그래도 사회의 영향 때문이나 자신의 욕망으로 못된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이다.
본문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배신자 유다에 대한 예수님의 배려와 기록으로 남긴 요한, 동료 베드로에 대해서도 예수님이 베푸신 배려와 사랑을 살펴보자.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의 성만찬 자리에 대하여 4복음서에 기록했다. 누가도 섬세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도 깊은 사랑과 견해를 가지고 보고 있다. 각자의 보는 관점과 견해가 다르다.
마태복음 26:26~27에서 성만찬 기록과 28절에서의 잔을 나누시고 언약의 피,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아버지 나라에서 마시기 전까지는 마시지 않겠다. 너희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고 가룟 유다가 나간 다음에 잔을 나누셨다.
마가의 성만찬 기록이다. 이는 내 몸이라. 내 언약의 피라. 성만찬 이후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먹지 않겠다. 너희중에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고 가룟 유다가 나가고 잔을 나누신다.
누가복음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임할 때 까지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다. 나를 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나를 판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가룟 유다가 성만찬에 참석했어도 배반한다는 것이 3복음서에 기록되었다.
요한복음에서는 너희중에 나를 팔리라. 예수님께 기대었던 한 제자가 머릿짓을 하면서 흥분한 상태에서 누구냐고 묻는다. 떡 한조각을 주는 자가 그니라. 가룟 유다에게 네 일을 행하라 하시어 가룟 유다가 나간다. 앉아있는 자들은 모르고 돈궤를 맡은 유다가 무엇을 사러 나간 줄 안다. 말고의 귀를 짤랐던 성질급한 베드로가 유다인 것을 알았다면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룟 유다만 알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조치하셨다. 모두가 유다가 심부름시켜 나간 줄 알았다. 다른 제자들은 모르게 하셨다. 요한은 가룟 유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면박을 주지 않으시고 끝까지 관용을 베푸심을 기록했다. 예수님께 기대 선 요한은 상세하게 보았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느꼈던 요한은 배신자 유다를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예수를 위해 기록했다. 예수님의 배려를 생각하여 신앙인들도 배려할 때가 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심도 세번이다. 안식후 첫날 제자들이 문을 잠궜는데도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니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두번째 여드레 후에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손을 내밀어 창자욱과 못자욱을 만져보고 믿으라 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 하신다. 세번째 제자 7명에게 나타나셨다. 밤새 고기를 못잡았으나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하신다. 사도 요한은 자기 이름을 빼고 "한 제자가"라고 표현한다. 동료에 대한 배려이다. 요한의 기록은 예수님을 베드로가 부인했다고 노골적인 기록은 없다.
베드로가 세번 부인했기에 나도 베드로에게 세번 묻겠다는 식은 아니다. 세번의 아픈 상처를 치료해 주시는 예수님의 배려이다. 어린 양을 먹이라. 부인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들을 돌보아 주거라. 내 양을 치라. 흠없는 짐승일지라도 베풀어라.
내 양을 치라. 흠없는 짐승일지라도 베풀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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