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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50712 이만한 믿음

이만한 믿음

 

150712                                                                                          조원형목사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태복음 8:5~10)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소원을 가진다.

생활중에 인생중에 소원이 있다. 신앙인으로서는 믿음이 크게 자라는 것이 소원이다. 범사에 감사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겸손하고 늘 기쁨이 소원이다. 믿음은 삶의 의미이고 이유이며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 부럽기도 하지만 믿음이 성숙하게 자라는 비결은 무엇인가.

 

일본의 유학자 히로 세탄소는 저서 "자신록"에서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이며 그 중에서도 인격적 만남인데 그 중 실수하는 5가지를 말한다.

먼저, 그 사람의 진심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훌륭한 상대를 내 방법대로 만나서 알아보지 못한다. 내 욕심, 내 기준, 내 편견, 내 자존심, 내 습성으로 본다.

둘째는 훌륭한 사람인 것은 알지만 그 분과 깊은 사귐이 없다. 아픔, 걱정을 알아주고 실수했더라도 미안하고 상하고 분노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성실한 마음이 필요하지만 사귀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세째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고 인사도 하지만 마음을 같이 할 줄 모른다. 사귐만 있지 헌신하거나 동조하지 않아 인격적 만남이 계속되지 않는다.

네째, 마음을 같이 하지만 성취를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바라만 보지 힘쓰지는 않는다.

다섯째, 노력하고 힘쓰고 같이 동조해서 훌륭한 일을 함께 하지만 공로에는 함께 하지못한다. 조금 거들고는 내가 다했다 한다.

 

신앙인으로서의 생각이다.

먼저, 이웃과 가족, 사람과의 관계이다. 훌륭한 상대를 바보 취급하고 도 알고 존경하는 정도로만 살아간다. 마음은 멀리 있다. 공로를 마땅히 돌려야 하는데 자기 공로로 돌린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자이신 것을 알지 못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신으로만 여긴다. 창조주, 심판주로만 안다. 내 속에서 우러나는 존경, 공경으로 모셔야 하는데 찬송,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귀담아 들음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어져야 하는데  사람과의 만남과 식사로 교제하면서도  나는 나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라 생각한다. 이쩌다가 선한 일 몇가지 하면 자신이 공로자라 한다. 내가 훌륭히 자란 것은 부모의 공로인데 내가 잘났고 부모는 못났다고 괄시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못함은 믿음이 바로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이 크다는 것도 하나님을 인격의 신으로 사귀는 것을 뜻한다. 기도는 열심히 했는데도 생활은 불평이다. 거지 나사로로 살아도 감사하다. 내 자신을 알고 배워가는 것이 믿음의 성숙이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다. 믿음을 전하시고 사랑을 전하신다. 인류의 원초적 불행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오해하고 지키지 못한데서 시작되었다. 그 사람을 못믿으면 갈등, 불안이 생긴다.하나님을 믿으면 되는데 왜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었나.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또다른 진리를 찾지만 가짜뿐이다. 그리하여 믿음이 파괴된다. 하나님만 믿고 내 인생 삶을 맡겨야 내 삶이 평안해진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과 사귀심으로 믿음을 가르쳐주셨지만 인간은 배반하고 도망가고 핍박한다.

이에 믿음이 없는 세대라 탄식하신다.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탄식하신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기뻐하신다.

믿음의 모범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만나시는 백부장이다. 이만한 믿음이란 상당한 수준의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 바리새인도 믿음이 작지만 이방인인데도 깜짝 놀랄만한 믿음이다. 자신이 아니라 하인이 병들어 예수님을 직접 찾아왔다. 하인에게 시켜도 되는데 직접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는다.  식민지 백성인 이스라엘의 30세 조금 넘은 청년 예수에게 로마군인 백부장이 무릎꿇은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인의 아들이 중풍병 들었다. 당시 어린 아이도 중풍병이 들었다. 당시 노예 자식은 짐승 취급도 안했다. 값으로 따지면 그냥 내다버려도 된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 무릎꿇었다. 값없는 삶으로 취급하는 시대일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믿음이다. 거룩하심을 말하는 것은 인격적으로 흠이 없으신 분임을 말한다.

 

큰 믿음이란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백부장의 믿음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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