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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01070 기다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조원형목사님                                                                              01070

 

이사야30:18-22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영국소설가 G.H.월츠는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썼다. 대주교란 장로교의 총회장 또는 감리교의 감독과 같은 직책이다. 그러한 사람인 성공회의 대주교께서 습관대로 대성당에 들어가 기도드린다. ‘하나님이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평생을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응답하셨다. ‘그래, 무슨 일이냐.’ 너무 놀라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죽고만다.  이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형식적, 외식적, 습관적 신앙고백으로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기도, 자기 기도로 위안, 감흥을 삼는다. 기도의 응답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문, 주술로 자기 만족, 자기 충만하며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대답하면서 하나님께 응답받았다고 한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 의미, 뜻풀이로 만족한다. 감각적 감흥이나 충족받는 것으로 끝낸다. 내가 희생하고 봉사하고 실천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비없는 뜬구름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등불의 사명은 감당치 못한다.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 초조한,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신다. 왜? Why? 우리는 능력부족, 건강회복, 세월 등을 기다려야 하나 하나님은 창조, 지혜, 섭리의 主이시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주께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씀으로 오래 참으사 다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 기다리심도 고통이다. 못믿을 사람의 기다림, 탕자의 기다림, 패역자의 기다림으로 고통이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기다림, 지금까지 사심이 기적이리라. 그 기다림으로 오래 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의 사진에 절하라는 자식이지만 그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쁨이 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 패역한 자식의 기다리심은 칼빈이 말한 “불가항력적 하나님의 선택하신 은혜”이다. 심판을 보류하시고 그 심판을 대신 물어내시고, 죄를 대속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복음 자체가 기다리심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 자체는 어떤가.

박정희 대통령의 10가지 철학중 3번째 항목은 검정된 사람을 쓰는 것이다. 檢定의 철학은 기다림이다. 사람 하나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기다림, 인내가 부족하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이며 그것은 기다림이다.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한국 사람의 가정 교육 또한 기다림이다. 아이가 요구할 때 즉시 요구를 듣지 말고 보류하고 후에 주라. 약속한 것은 바로 지켜라. 여호수아 7:13에서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려라고 말씀하신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기다리자. 말씀을 순종의 법, 헌신하고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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