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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60313 증인의 믿음

증인의 믿음

 

160313                                                                                            조원형목사님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사도행전 3:11~16)

 

옛날 어느 나라 왕이 지혜롭고 겸손하기로 소문났다.

한 성주의 초대를 받아 음식을 먹는데 맛이 있다.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를 불러 왕궁에서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요리에 칭찬한다. 요리사의 대답이 아니라 좋은 재료를 준야채장수에게로 공을 돌린다. 이에 야채장수를 불러 다시 고맙다 치하하니 그는 농사한 사람에게로 공을 돌린다. 그 농부를 다시 부른다. 그 공을 치하하니 물만 주었을 뿐이라. 햇살과 공기와 따뜻한 기온을 준 하나님께로 공을 돌린다.

자신을 낮추면 다른 사람의 공이 보인다. 그러나 왕이 자신의 잘난 면만 보았다면, 아니 요리사나 야채장수 몯가 자신의 자랑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을 다른이에게 돌렸다. 문제는 나를 낮추고 다른이의 은혜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공로만 높이고 내 잘난 맛에 산다. 큰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내 공을 내세운다.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한다.

베드로는 도구로 쓰여졌을 뿐이고 예수님께로 그 공을 돌린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가 자만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 공을 돌릴 줄 알았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무엇인가"에서 사람됨의 증거를 말한다.

먼저, 무엇을 알고 있는가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 생각의 차이가 훌륭한 사람과 천박한 사람의 차이이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매사에 감사하고 믿음과 사랑과 은혜속에서 사랑을 베풀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믿음, 소망이시기에 그러하다.

둘째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사람의 도리, 책임, 윤리적인 문제, 행위,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사람된 가치를 가지고 산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세째는, 무엇을 소망하는가이다.

기대감, 소망이 있기에 오늘을 참고 감사하며 양보한다. 손해가 나도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미래를 이끌어주심을 안다.

 

초대교회의 현상의 특징이 있다.

먼저,충만이다.

 "충만"이란 단어는 누가의 전용어이다. 누구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충만에 대해 많이 기록했다. 내적 충만, 끊임없이 충만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야 함을 말한다. 내적 충만은 외적으로는 모자라더라도 과분하게 생각한다.

어려운 시절 남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대에 내적 충만, 성령 충만 때문에 감사감격하며 이웃에게 베풀 수 있다. 성령충만, 말씀충만의 근거이다.

둘째는, 유무상통이다.

나누는 것이다. 내것도 내것이고 남의 것도 내것으로 착각하는 시대에 내것을 남에게 주며 필요를 채워준다. 본문에서 앉은뱅이를 보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성령충만을 전한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한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행복하지못한 이유가 있다.

먼저, 금지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 때문이다.

도를 넘고 선을 넘어서 추구하는 욕망이다. 나이 50에는 평준화이다. 얼굴의 평준화, 자신의 얼굴을 집작하며 가꾸다보니 모두가 동일하다. 나이 60에는 지식의 평준화이다. 못배운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그게 그거다. 겸손히 난체하지 말자. 나이 70이면 소유의 평준화이다. 먹고싶어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 나이 80은 건너뛴다. 80이나 90이나 산사람이나 죽은사람이나 똑같아 보인다.

무슨 명분과 명예, 부를 쌓고 과시하는가. 그러나 나누어라. 남의 고충도 보살펴라는 것이다.

둘째는, 가치에 대한 왜곡이다.

가치관이 잘못되면 잘못된 인생으로 끝난다. 자기 이름 석자를 남겨도 후일엔 잊혀질텐데 뭔 소용인가.  막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충실하게 겸손하게 살자는 것이다.

세째는, 염려이다.

우리가 살던대로 살기에 공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평지의 사람이 900~1000M 높은 지역에 가면 숨쉬기 어려운 것처럼 말씀과 성령이 부족하면 염려, 늙음의 서러움에 사로잡힌다. 소망이 없으면 염려에 사로잡힌다.

 

베드로가 나이먹고 고생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며 선교하며 더 빨리 노쇠해도 하나님의 말씀,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사한다.

앉은뱅이가 고쳐달란 것도 아닌데 가까이 다가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쓸데없는데 마음 빼앗기지 말고 내적 충만을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이웃을 돌보자. 가만히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는 충만한 인생으로 변화된 신앙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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