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중에 복음
160327(부활절) 조원형목사님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요한복음 20:16~18)
세계적인 극작가 유진 오닐은 노벨상 수상자로서 작품중에 "나사로는 웃었다"라는 것이 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3일만에 예수님이 살리셨던 경험이 있다. 극작이긴 하지만 다시 살아난 후 어떻게 살다 갔을까하는 내용으로서 죽음을 체험한 후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죽음을 설교하는 목사도 두려움을 장담치 못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아 아무렇게나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두려워 피하는 제자들보다도 앞장서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 장례 후 모든이들이 안식일날 집에 있거나 성전에 있을 때이다.
안식 후 첫날 새벽같이 향유를 바르겠다고 여자 혼자 나섰다. 큰 돌문이 가려 있을텐데 무모한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라 죽음을 초월한 사랑 때문이다. 강렬한 믿음 때문이다.
새벽에까지 무덤으로 가게 한 것은 사랑 때문이다. 열정을 능가하는 힘이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에 대한 최대의 응답이다. 타락한 인간을 쓸어버리시고 재장조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도 하나님의 자식으로 지으셨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친히 내려오심으로 우리 죄인을 구원하셨다.
아브라함도 자식을 내어줄 정도로 하나님을 공경했다. 막달라 마리아도 죽음을 초월한 신앙,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랑은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의 뿌리이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어렸을 때 숙모가 구두를 사주신다고 해서 구둣방엘 갔다. 앞이 둥근 구두와 네모난 머리의 구두, 두가지 구두중 고민을 하는데 선택을 못하고 다음에 오겠다 한다. 얼마가 지나서 구두방 주인을 만났는데 왜 찾으러 오질 않느냐 한다. 이에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하니 두가지 구두를 모두 만들어 놓았다 한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남이 선택한다는 것을 깨닫고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고 결심한다. 선택을 잘못해도 책임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한다.
다른 사람이 생각치 못하는 일을 막달라 마리아가 선택해서 사랑 믿음으로 새벽녘 무덤으로 간다.
계산해 보다가 선택을 미루는 것, 다른 사람이 선택해서 할 수 없이 고르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결심하여 무덤으로 나아간다.
인생을 살면서 사랑보다 위대한 것이 없다.
새벽에 나가보니 생각도 못했던 부활의 장면을 체험한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생전에 예수님께 향유를 발랐는데 그 사랑을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는데,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 인정받았는데 돌아가신 후에도 무덤에 향유를 바르기 위한 새벽녘 방문이 부활을 목격하는 기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구원의 반열에 서서 예배에 참여한다.
사랑의 마음으로 살면 큰 기회를 얻는다. 성공자들도 성공을 예상치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기에 성공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문이 열리고 예수님을 찾는다.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랍오니(선생님이여)" 대답한다. 나를 만지지 말라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신다. 동양적 사상으로는 남자의 옷자락을 만지지 말라 해석한다. 왜 만지지 말라 하시는가. 신앙은 손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믿다보면 꿈도 환상도 볼 수 있지만 보고 듣고 만져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복이다.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지만 도마는 없었다. 도마가 나중에 손으로 만지고 확인해보고야 믿겠다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만지지도 않고 믿었지만 도마에게는 만져보게 하고 믿게 했다. 남녀의 차별인가. 마리아는 보지도 않고도 믿었고 도마는 자신의 인지적 확인으로 믿었다.
본문 20:17말씀처럼 내 하나님이 너희 하나님이 되셨다고 말씀한다.
영원한 부활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주기도문에도 하나님이란 단어는 없다. 아버지란 단어가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기도이다. 부활의 아침에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은총임을 알게 된다. 그 은혜를 먼저 깨닫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이다.
중국의 한무제가 8살 먹은 막내 아들에게 후임을 정한다.
임종때 탁구대신 4명을 선정하여 부탁한다. 그 중 흉노족왕의 아들인 김일제가 있다. 여러 흉노족 중에서 계속 한무제를 대적하다가 모두 죽고 그 아들이 김일제인데 노예의 생활을 하다가 한무제가 보고 눈에 띄어 김일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지켜본다. 신분을 알아보니 포로된 흉노족 왕의 아들이다. 불평 원망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기에 벼슬을 주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탁구대신까지 된 것이다. 한무제의 포용력에 감동되어 충성하는 것이다.한무제의 막내 아들 대신 왕자의 난이 자주 일어나지만 김일제가 막는다. 사랑이 위대한 흔적을 남긴다.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과 믿음, 신앙이 부활의 장면을 목격하며 믿음의 승리를 한다.
우리 죄인을 이끄시는 부활절 아침, 우리 신앙의 삶의 계기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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