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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60508 현대인의 무지

현대인의 무지

 

160508                                                   조원형목사님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한복음 11:47~53)

 

한 어머니가 오갈데 없게 되자 아들집으로 갔다.

아들이 딸네 집으로 가라고 문전박대한다. 딸네집에서도 다시 오빠집으로 가라 한다. 갈데 없어 길모퉁이에 앉아 밤을 새우는데 경찰이 발견한다. 아들 집을 찾으려다가 길을 잃었다 한다. 몇년전 신문에 나온 얘기이다.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한다. 현대인의 가치관이 달라진 것은 잘못된 견해 때문이다.

500년전의 칼빈이 이를 설명한다.

먼저, 나외에는 다른  사람이다.

부모, 아내, 남편도 다른 사람이다. 잘못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너그럽지만 다른이에게는 숨겨진 죄값 때문이라 한다.

둘째,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못의 잣대가 엄격하다. 율법의 잣대이다.

세째, 그러면서 자기에게는 예외라는 잣대를 댄다. 이해, 편견, 변명으로 자기 자신을 본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이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쿼블러로스의 '인생수업'에서 사람들마다 편견,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을 살면서 자신의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의식으로 산다. 남은 자의 죄의식이다. 아우스구스 독일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살아남아 감사 감격했는데 나이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는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그 사람들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산 자의 죄의식이 그를 괴롭힌다는 글이다.

 

술만 먹으면 울면서 하는 말이 형님이 살고 내가 죽었어야 우리 집안이 잘된건데 통탄한다. 전쟁터에 나가서 죽은 형을 통해 괴로워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일 수도 있다. 잠재의식속의 고민이다.

나이가 들고 나면 젊었을 때 잘못되었던 가치관이 나이들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누리는 많은 것들보다도 더 공허하고 허탈해 하는 것은 속사람을 채우는 방법을 몰라서이기 때문이다.

 

2월 13일자 일간지에 나온 글이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샘물호스피스 원주희 목사님은 젊었을 때 불신자로서 중대 약대를 졸업하고 ROTC로 군근무중 이었다. 85년 8월 미루나무 사건에서 군의관으로 근무중 앰브란스 차량에서 가다가 전복되어 다쳐 병원 치료를 받는데 젊은이들이 찬송을 부른다. 그 찬송 소리에 평안함을 느낀다. 그리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신학공부후 목사가 된다. 그리하여 천여명을 수용하는 큰 호스피스 병원을 운영한다. 병원에서 죽어간 사람이 6천여명이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이가 천여명, 살아난 사람이 수십명이라 한다. 살아난 사람이 다시 그 병원에서 봉사하는 처남댁도 있다 한다.

평안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 하지만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누군가가 마지막까지 끝까지 함께 해 주는 것이 더 귀함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통증 주사보다도 함께 있어주고 기도하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암투병중인 환자에게 위문을 가면 어떤 약을 써도 통증 때문에 몸부림치는데 찬송과 기도의 짧은 시간에는 잠이 든다.

찬송이 그치면 다시 눈을 뜨는데 찬송가 테이프를 틀어준다. 그런데 테이프는 소용이 없다. 찬송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산 경험이다. 한번은 일어혀 하다가 넘어질뻔 했다. 옷자락 단추구멍에 그 환자의 손가락이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간호이지만 간호하는데도 인내심이 필요하다.

 

누구나 마지막을 경험할텐데 어버이 주일뿐만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이다.

스데반 집사처럼 돌에 맞아 죽든 목베임을 당하든지간에 평안하다. 약한 생각을 할 때마다 회개한다.  하나님이 붙들어주셔야만 한다. 신앙잃지 않고 죽기를 기도한다.

평상인처럼 살다가 죽음을 앞두고 고통도 함께 할텐데 그 고통도 죽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신앙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죄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임마누엘 하나님이 오셨는데 유대인의 신앙을 지도하는 대제사장의 말이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서 신앙적 혼란이 오고 전통이 깨어지게 되었으니 예수 한사람이 죽어서 평안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피력한다.

내가 살고 다른 사람이 죽어야 세상이 바로 된다는 사랑이 현대에 존재한다. 교회도 되고 학교도 되고 집안이 선다고 말한다.

 

연세있는 목사님의 간증이다.

두 부부가 대학교수로 있는데 큰아들이 공부를 못한다. 부부의 체면을 살려야 한다고 독려하지만 아들이 따라주질 못한다. 서울대가 안되고 그 다음 대학을 앞두고 유서를 쓰고 죽는다. 둘째 아들도 1~2년 지난 후 형이 못이룬 걸 네가 이루어다오 하니 부모님 뜻을 따르지 못할 경우 형을 따르겠다 한다. 어떡하면 좋겠는가 목사님께 물으니 목사님 말씀이 나도 마찬가지로 죽겠다 한다. 당신들은 전쟁통에 공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졸업했는데 자식에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 하니 진작에 형에게 얘기했으면 형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우리 집안의 수준, 레벨을 말하며 자식에게 요구한다. 부모가 안보이면 울던 아이가 커서는 부모가 불필요하게 귀찮아 한다.

본문 내용이 그러하다.

 

두 바구니에 계란이 들어있다.

한 바구니는 벌도 나비도 파리도 날아들고 복잡하게 산다.  우리는 찾는이 없는데 너희는 왜 그런가 하니 서로가 부비며 계란을 깨뜨려 살아보라 한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며 냄새가 나고 썩어 주인이 내다버렸다. 법썩떨고 파리와 벌이 날아들고 사람사는 맛이 나지만 결국은 썩어 내버려진다.

 

어렸을 대 소중한 부모가 나이들어서도 소중하다.

본문의 대제사장의 쓸데없는 가치관 때문에 지금도 손가락질 받는다.

 

임마누엘의 가치관으로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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