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얻으리이까
160619 조원형목사님
....그러나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복음 19:27~30)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 수업"은 죽음을맞 이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죽어가면서 마지막 인생을 돌아보며 그 과정을 쓴 책이다.
유작으로 "상실 수업"이 있다. 남겨진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남은 사람이 겪는 고통의 과정, 유훈을 담은 책읻.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 남는 것이 후회이다. 모르고 잘 대해주지 못한 후회, 뉘우치는 마음이다.
후회할 때 대하는 행동이 있다.
먼저, 쓰러질 때까지 울고 또 울어라.
울지 마라, 이미 갔는데 어찌할 것인가, 그만 울어라 하지만 같이 실컷 울어주는 것이 오히려 위로이다.
둘째, 철저히 절망하라.
더이상 기쁨, 보람, 살 희망, 살 이유가 없다고 절망하라.
세째, 철저히 울고 절망하면 캄캄한데서 서서히 새로운 세계가 다가올 것이다. 아픔 고통이 교훈으로 다가올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이 빛으로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시는 살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이 1년 지나면 추억을 나누고 유머까지 나누게 된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한다. 질문의 내용이 의미있다. 인간의 계산이 가득하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정 직업 명예조차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다른 이에게 소외당하는 것이었다. 젊음, 청춘도 버렸다 한다. 베드로의 고백속에 욕망은 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하지만 내 속의 욕망은 버리지 못했다. 내적인 가운데 숨겨진 것들을 깨닫고 회개하고 뉘우친다. 숨겨진, 깨닫지 못한 것들이 아직도 많다.
존 쿼리스는 호주의 장애인이다.
모태에서 콜라캔 만하게 태어났다. 하체가 호생되지 않을 것 같아 의사가 24시간내에 죽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48시간이 지나도 살아있다. 7년을 그렇게 산다. 현대 의학의 도움이다. 17살에는 하체의 다리가 소용이 없어 다리까지 잘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처럼 살았다 한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운전면허증도 낸다. 1994년에는 장애인 테니스 대회에 나가서 우승한다. 그 이듬해 장애인 역도대회에서 준우승하며 강사로 나가게 된다. 지체장애인이면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살면서 내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이 귀한 것이다.
베드로가 3년반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자기자신은 몰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대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가르치시고 키우신다. 그리하여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가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는데까지 이른다.
어떤 목사님이 구치소에 가서 세례식을 집례한다.
세례후 한 젊은이가 찾아온다. 누군가 했더니 구치소에서 세례받은 사람이라 한다. 만나보니 젊은이가 바깥 세상에 나오니 소외당하여 직업이라도 소개시켜줄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한다. 소개하기가 참 힘들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회개한다고 세례를 주었지만 직업은 소개할 수 없다 하니 교회는 말 뿐이라 거짓말이다, 세상을 원망 불평한다. 이에 목사님이 대답한다. 생각해 보자. 당신 부모가 버려서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내 자식도 키우기 어려워 버렸는데 누군가가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했으니 지금껏 살아온 것 아닌가. 살아있음은 사랑받은 흔적이다. 그러고보니 고아원에서 장로님이 자신을 사랑했음을 기억해낸다. 불평보다도 감사를 깨닫는다.
기독교인의 회개는 계속되어 죽는 순간까지 회개하며 산다.
베드로가 다 버렸다 하지만 욕망 명분 명예를 버리지 못했다.
사랑의 법칙이 있다.
먼저, 준 것만큼 내가 받겠다는 장사속의 사랑이다.
둘째, 내가 한개 줬으니 두개 받겠다는 욕망의 사랑이다.
세째, 두개 줬으니 한개라도 받겠지 하는 미련의 사랑이다.
내 모든 것 포기하고 희생하고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손해보면서도 기뻐해야 진정한 신앙인이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갚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믿음이 성숙하여 나중엔 순교의 제물로 바치는 베드뢰다. 순교하면서도 감사하는 베드로가 된다.
베드로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생명이었다.
생명까지 다 포기하여야 바른 신앙이다. 의술은 발달되었다지만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이왕 죽는 것 치사한 삶보다는 위대한 죽음을 원한다.
북한에서 두 사람이 총살당한다. 한사람이 억울하다 후회한다고 운다. 또 한사람은 이왕 죽는 것 의연하게 죽는다. 그 소문을 낸 사람을 적발해내려 김정일 시대에 애썼다 한다. 생명을 못버려 예수님을 부인했다. 명예를 버리지 못해 천국 열쇠와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 예수님께 요구했다.
그러한 베드로를 보며 우리 자신을 보고 철저히 돌아보며 회개한다.
하버드대에서 성공에 필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재능이고 기회지만 세째는 잘못에 대한 반성이다.
에디슨도 수천번의 잘못된 실험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루하루 반성하고 돌이키고 겸손히 충성할 때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다.
신실한 신앙인으로서 온몸과 마음 성품 다바쳐 충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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