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으면 찾으리라
160612 조원형목사님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5~28)
공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고 소년 시절 어머니를 잃었다.
어려운 성장 환경을 거치며 많은 사람을 대하며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하여 성현 칭호까지 받는다. 인생 절사 "무의, 무필, 무보, 무아" 이 네가지를 가지고 대인 관계를 가졌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가 생각해 보자.
먼저 "무의"이다. 내 의는 없다. 내 편견 내 주관은 없다. 거기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 내 의와 내 편견으로 인해 상대방을 잃게 된다. 내 의를 내려놓아야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둘째는 "무필"이다. 내 고집은 없다.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은 버렸다. 나이 50이 되면 '반드시'라는 말을 사용치 말라. 반드시 한가지 목표가 세워지면 반드시 한가지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나이들며 반드시 라는 말은 없다. 반드시는 자신의 인생을망친다.
세째, "무보"이다. 내 집착을 버린다. 집착을 버리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네째, "무아"이다. 나는 없다. 내 존재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린다. 보다더 깊은 대인 관계이다.
본문 말씀이 그러하다.
베드로가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자신의 고집 편견 집착 사정을 버리지 못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보다는 반감, 불평하는 사람이다. 이에 예수님이 꾸짖으신다.
내 자신의 의식 편견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말씀과 부활의 말씀을 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싱로 오셨고 유대왕으로 오셨는데 왜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더욱 말씀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잣를 가져야 하는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삶이 울의 처지이다. 좀더 기다리고 좀더 말씀을 듣고 깊히 생각을 했더라면 책망받지 않고 지혜롭고 겸손한, 잘 훈련받은 사람으로 인정받았을 것이지만 예수님을 책망하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오히려 예수님의 일을 훼방하는 자리로 들어선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양반중의 양반이 사는 곳이다.
청교도적 정통 신앙을 지키는데 사는 여인이 한국 유학간 남자를 사랑하여 한국에 온다. 자녀들 교육시키는데 교육 방법이 달라서 TV에 방영되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용돈을 그냥 주지 않는다. 우리는 값싼 동정, 값싼 사랑으로 세뱃돈을 주지만 세상이 만만한 곳이 아님을 가르친다. 어렸을 때부터 제방정리, 이불정리, 방청소로 얼마씩 정해진 돈을 준다. 아이들이 땀을 흐리며 청소한다. 큰 아이들에게 천원씩, 막내에게는 5백원을 주면서 뭐 살꺼냐 물어보고 지도해 준다. 유치원 차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까지 데려다주며 대화와 놀이를 계속한다. 큰 아이들은 제대로 가는데 막내가 업어달라 하는데 호통친다. 짐승도 새끼가 걷는다고 가르치지만 아이가 칭칭대어도 걷게 한다. 옷도 후줄근한 옷을 입힌다. 진정한 사랑은 자립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고난 희생 헌신을 베드로는 모른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 축복이 공짜가 아님을 가르친다. 희생하는 양과 비둘기가 있음을 가르친다. 선민이기에 은혜와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지키기에 은혜입고 특권을 누린ㄷ.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누가복음 10장의 강도만난 사람의 비유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남을 이해하고 돕고 치료하느 사람으로 자랐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남을 위해 일으켜준 적이 없다.
공산권에서 온 분들의 생각이 한국은 공짜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짜가 아니다. 교회조차도 정부나 부자가 돈을 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희생과 헌금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나 스승이나 구원을 받는 것도 희생의 댓가이다.
캐나다의 "라이언 영혼"은 초등학생 흘처의 이야기이다.
아프리카 방영의 TV를 본다. 우간다에서 우물이 없어서 더러운 물을 마시는 것을 본다. 물에 병균이 많아 아이들이 죽어간다. 우물 파는데 70달러가 든다는 것을 기억하고 어린아이인 흘처가 집에 가서 70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우리 형편에 70달러 줄 형편이 아니니 생각해 보자. 네가 우간다 아이들을 위한다면 용돈을 모아라. 그 용돈은 일의 댓가임을 알리고 3개월간 모은다. 선생님께 말하니 그것은 우물의 펌프값이고 2000달러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초교1학년짜리가 모금함을 학교에 만든다. 학교에 알려지고 모금함이 더 세워지고 신문에 나고 구독자까지 모금을 낸다. 56%의 인구에게 우물을 파주게 되었다. 캐나다의 진정한 긍지, 사랑이라 부른다.
은혜, 사랑이란 하나님의 아들로서 능력으로 기적도 나타내시기에 모든 것이 공짜인 줄 알지만 희생이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모른다.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산다,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만원짜리 하나 주더라도 내 쓸 것을 주는 것이기에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의 희생을 반문하며 힐책하는 베드로의 행동이 본문 말씀이다. 미국 대통령도 명령만 하여 어려운 사람을 격려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격려하고 호소하지만 후임 대통령과의 약속에서 후임 대통령이 늦어지자 그 시간에도 백악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격려한다.
훈련되어져야 하는데 베드로는 바람과 바다도 꾸짖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죽으셔야 하는가 반문한다. 예수님은 골방에서 기도하시며 힘을 얻으셨다.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희생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따르지 못하면 아름다운 열매나 복이 따르질 못한다.
어떻게 하면 세상은 녹록하지 않음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나이들어서도 사람되지 못하게 한다. 늘 희생과 헌신으로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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