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놀랍게 여긴 믿음
161113 이부형목사(고양제일교회)
어떤 백부장의 종이....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누가복음 7:2~10)
신앙생활을 하면서 적극적인 생활과 헌신적 봉사를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마음에 닿지 않고 봉사도 부담되고 침체, 매너리즘, 타성에 젖어 기대를 접는 삶도 있다. 때때로 기대하고 소원도 있으나 지속적인 끈기가 없다. 기대 자체를 접는 때도 있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마귀가 속삭인다. 적당히 믿고 편히 지내라. 구원은 따놓은 당상 아닌가 한다.
오늘 주일 새벽 겨울비가 왔다.
날씨가 종잡을 수가 없다. 신앙의 침체, 매너리즘에 빠지며 하나님은 겨울비같은 은혜의 단비를 주시기를 원한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 백부장의 믿음을 본다. 어떤 믿음이기에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가.
먼저 본문 2절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생겼다. 종을 보내어 예수님께 고쳐주십사 한다.
백부장은 로마 시민이며 식민 통치의 장교로서 식민지 가버나움의 한 지역에 예수님이 있었다.
로마 지배하의 로마 시민이요 통치자로서 실세의 위치에 있었다. 그의 종은 노예로서 사람이 아닌 재산 취급을 받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백부장이 그 종을 사랑했다. 그런데 병들어 죽게 생겼다. 재산 취급을 하던 시대에서 하찮은 종 하나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마음을 쏟은 것이 이례적이다. 백부장에게 있어 유대인들과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유대의 친구 장로들을 부탁하여 예수님께 보낸다. 유대인 장로들도 기꺼이 참여한다. 하찮은 종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가진 이방인 로마 장교이다.
신앙의 중요한 마음 자세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교회의 등록교인이라는 것은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요 한 지체이다. 그것이 등록교인의 의미이다.
한 몸인 고양제일교회의 일원으로서 주인 의식을 갖는다. 교회의 일원으로 책임과 의무, 가치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교회의 객이 아닌 주인이다.
또한 교회 전체의 한 몸으로서 우리라는 의식을 갖는다. 허리 아픈 것이 엉덩이로 내려가고 다리까지 아파진다. 내가 아프니까 주위 사람도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무겁고 무너진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 일운으로서 동료 동지 한 운명체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백부장이 종에게 가르쳤던 동병상련의 동지 의식이다. 그것이 역지사지의 마음이다.
하남성교수는 공감적인 신뢰의식이라고 표현한다.
내 입장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기다리고 인내하며 들어줘야 한다. 불쑥불쑥 하고픈 말이 있다 해도 표현치 못하고 들어줘야 한다.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자존심없는 사람은 없다. 끝까지 들어주는 것은 순교이기도 하다. 순교와 다름없다. 순교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욕심 자존심도 다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목회자인 나 자신도 그간 헛말이었음을 실감한다. 지금도 자존심을 죽이고 기다리고 참아주고 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 말없이도 가꿔지고 다듬어지는 분들을 지켜본다. 동병상련 동지의식이다.
백부장의 삶에서 종의 아픔을 고치기 위해서 애쓰다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다.
여러 사람들을 가버나움에서 고치신 예수님을 소문들어 알고 있다가 종이 죽게 되었으니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의 힘있는 장로들에게 부탁하여 예수님께 청한다. 자신의 힘 위치 지위를 이용하여 부패를 드러내는 것이 요즈음이지만 선한 일에도 사용하는 분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벤쿠버 세계관 교회에서 만난 장로님은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도 나은 것이 없다는 전도서 말씀을 의지하여 CGI 교육을 만든다. 그 아들 요셉은 장애아로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에 요셉 장학금을 만들ㅇ 운영한다. 캐나다 지역 사회에서 선한 일을 실천하며 방송에까지 소개된다. 인터뷰에서 계속 나오는 말이 '지역사회'라는 단어이다. 그리하여 교육 사업을 통해지역사회에 이바지한다. 우리 교회도 지역 사회에서 쉼을 주고 후대를 키워야 한다. 1세들이 인맥과 자금과 모든 것을 동원하여 후세들을 키우자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백부장의 마음에서(6절) 자신의 말을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예수님께 보낸다. 이에 예수님이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한다.
맨처음엔 유대인 장로들을 통해 불러오게하다가 친구를 다시 보내어 그만 오게 하고 말씀만 하시라 하는가. 이 백부장은 권력, 권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 유대인 장로를 낸 후에 생각해 본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청은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이런 분을 오라가라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한다. 백부장은 군인이며 장교로서 권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치료하신 예수님을 이해한 것이다. 말씀만 하시면 단언컨대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한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이기에 가능하다.
맨처음엔 내 필요에 의해 신앙 생활을 시작하지만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 후, 깨달은 후에는 다시 올바른 신앙을 갖게 된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
내 소원, 내 필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권위에 응답하는 신앙으로 바뀐다. 이것이 신앙의 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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