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그 외 자료

170115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

 

170115                                                                  주안장로교회 유재원목사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9)

 

오늘의 본문 말씀은 고린도전서와 후서의 서론 말씀이다.

이 서론의 편지를 고린도교회에게 쓰는 사도 바울의 마음은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먼저 칭찬하면서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책망후 칭찬하는 것도 있지만 고린도전후서는 칭찬후에 책망한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중에 에베소에서 편지한 말씀이다.

 

수신자들은 당시 신분이 높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 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들을 보는 눈이 각별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 고린도교회에 세속적인 가치관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도 바울이 교훈적인 성격이 강한 편지를 쓴다.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고린도에서는 아폴로디테신전을 섬기는 여자 즉 창녀들이 천명이 넘었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항구도시로서 부유했으나 혼탁하고 무질서하고 평판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싸우다가 수치스런 말이 너는 고린도 사람같다는 것이다. 육은 부유하나 영은 가난한 곳인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혼탁한 곳이었다. 부자와 사기꾼, 미련하고 멸시받는 이들까지 모였다. 하나님은 미련하고 멸시받는 이들을 선택하여 주셨다. 1장2절에서도 그들이 거룩하여졌다고 말씀한다. 거룩함은 구별된 사람이다. 세상 살면서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말씀이다.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던 그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평강있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그 모든 사람들이 9절에서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교제란 무엇인가.

남녀의 사귐 등의 일시적인 모양이 아니다. '커미니엄' 즉 접착본드가 탁 붙이는 것처럼 달라붙어 하나됨을 의미한다. 똑같은 것만 달라붙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종교합이 아니라 중심되시는 예수님께 붙여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에 하신 것이 성찬이다. 이것이 커미니엄이다. 함께 모여서 주님의 보혈과 살을 함께 나누며 주님 안에 있음을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은 자라는 조건이 붙는다. 교회로 와서 새가족이 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나누며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시의 고린도 교회는 다문화 공동체였지만 우리나라처럼 여러 교파로 나눠지는 분열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종교합의 이단은 배제하며 또 서로를 나누는 교회였다. 하면서도 누구에게 배웠는가 베드로냐 아볼로냐 나눠지기 시작한 것을 사도 바울이 지적하는 것이다.

교회 구역을 나누면서도 갈라지지 않아야 할 여러가지 이유를 대는 것을 본다. 익숙해짐 때문이리라. 모임에서 갈등 충돌이 일어나서 갈라지는  것은 차라리 편하지만 웬지 선뜻 불편한 갈라짐이 있다. 갈등 피해를 준 사람은 용서했지만 다시는 합쳐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편하고 개운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속시원한 해결을 기도하지만 내가 먼저 어색함을 깨뜨려야 하는데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변하고 싶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계속 쌓고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새해 인사를 하며 잘 지냈는가 문자를 보내니 전화가 온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 억지로 전화를 받지만 뜻밖에 진실한 말이 나온다. 상대방도 기다렸다는 뜻이리라. 생각으로만 어색하다 생각했는데 진솔한 관계가 회복됨을 체험하며 스스로 부끄러움도 느낀다. 돼먹지 않은 나의 자존심 때문이며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고집때문이리라.

 

교제라는 의미가 참 중요하다.

온전한 교제를 우리는 실천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베푸신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가둬두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의 창문부터 먼저 열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오감을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이 하나라도 안정된 것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당시 사도 바울의 지적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도 우리는 나눔을 행복해 한다.

인간 사이의 벽을 그리스도의 피로 채워지고 성찬도 세례를 받아야만 참석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고 교제하기를 바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안정적인 것이 없고 혼란스런 삶이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모두가 교제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올해 한해가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