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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그 외 자료

170409 예수님을 외롭게 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외롭게 하지 맙시다

 

170409                                                                         주안장로교회 신광식목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가복음 11:1~11)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있다.

공의는 우리 죄로 죽어야 하는 심판이지만 그 십자가로 사랑을 베푸시는 공전이 있다. 심판과 용서가 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승리를 향한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고난을 향한 외로운 길도 있다는 것이다.

 

마태, 누가복음은 마가복음보다는 밝게 그려졌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들뜬 분위기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똑같은 호산나를 외치지만 참착한 슬픔의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예수님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제자들은 명절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왕으로 오르실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제자들조차 자리 다툼을 했다. 개선장군의 모습이다. 나귀 새끼였지만 겉옷도 깔아주고 왕의 재현을 기대했다. 식민지 이스라엘의 부활을 기대했다.

 

이 상황에서 이상한 부분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귀 새끼의 초라함은 보지 못했다. 말을 타고 늠름하게 들어가셔야 하는 일이었다.  나귀는 짐을 운반하는 비천한 짐승이다. 사람 태운 적 없는 초라한 나귀 등을 타는데 의문한 사람이 없었다. 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깔기도 했다. 입던 옷을 까는 것은 개선장군에게 경의와 복종을 의미했다. 최선의 대접이다. 마땅한 옷이 없으면 나무가지를 흔들고 깔았다. 유월절을 앞두고 왕의 행렬이라지만 급작한, 임시적 모습이었다. 뭔가 아쉬운 모습이다.

 

또한, 왕이 되려면 왕궁으로 오르셔야 하는데 성전으로 가셨다.

그 곳에서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나가신다. 왕이신 메시야를 기대하며 이상하다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호산나"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의미이다.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라는 것은 우리 조상 그 때의 번영을 기대하며 허락해 주십사 하는 것으로 노래했다. 그런 바램으로 불러야 하지만 로마의 지배로 우리를 구원해 달라는 의미가 더 컸을 것이다.

 

예수님도 동일한 목적이었다면 밝은 표정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내용은 답답한, 서글픈 모습의 예수님이시다. 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들도 알아주질 못했다. 그런데 나귀 새끼의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 하니 아무조건없이 내드렸다. 왕에 대한 아무 기대는 없었다.

"즉시 이리로 다시 보내리라." 원주인이신 예수님에게로 보내리라는 의미이다. 소유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다. 두 제자의 기대가 대단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두 제자이다. 어떻게 보면 도적질과 다름없지만 그대로 순종한다. 거기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고난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면 참담하다.

몰라서 그러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세번이나 예고하셨다. 듣고 싶지 않아서 외면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처한 입장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마의 압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난의 메시야임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눈을 돌렸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그러하지 못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을 외롭게 하지 않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성공하고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걸로 행동하지 않는가. 십자가 고난의 주로 오심을 알고 있는 우리조차도 우리의 바램을 이루어줄 예수님으로 기대하지 않는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외로운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알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 우리 자신을 뒤로 하고 외로운 예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2:20~21의 말씀처럼 선을 행하고도 고난을 받는 예수님의 길을 우리도 걸어가야 한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군중속에서 외로이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고난주간을 통하여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오신 고난의 예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