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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61225 쓰여지는 감격

쓰여지는 감격

 

161225                                                                  조원형목사님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데살로니가전서 2:1~7)

 

뉴질랜드에 '크라이스트처치'라는 도시가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이름이다.

뉴질랜드는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신앙인들이 세웠다. 스코틀랜드를 떠나 뉴지랜드를 세우면서 크라이스트처치를 수도로 삼았다. 35만명의 인구가 도시에 있었는데 큰 도시로 손꼽혔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고 자손들에게도 그 신앙을 물려주었다. 버스나 택시를 운전하는 분들을 보며 그 도시를 짐작하는데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데 돌아갔으면 그것을 제하고 돈을 받는다. 자손대대에까지 이런 자세로 살아왔다.

이주민들이 그 지역의 원주민들을 박해하거나 몰아냈다면 뉴질랜드에서는 마오족 원주민을 교육시키며 지금까지도 차등없이 살도록 배려했다. 교회집 지붕을 삼각형으로 지었다. 눈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눈이 많이 쌓였다. 그런데 뉴질랜드는 눈이 별로 오지 않고 일년내내 비가 오는데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 스코틀랜드를 그리운 마음으로 삼각형 지붕을 그대로 지었다. 신앙적, 영적인 고향을 사모한다는 마음이었다.

뉴질랜드는 경관도 뛰어나지만 민족성, 신앙관도 뛰어나다. 교파없이 한 교회로 영국에서 이어온 성공회를 전통계승했다.

한 민족으로서 교파는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점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탄절을 통하여 본파가 없어야 한다.

 

'크라이스트처치'라는 교회가 그 도시 안에 세워져 있다.

일본의 남녀 청년이 결혼을 앞두고 여행하다가 교회를 구경하게 되었는데 신부의 허락을 맡고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한다. 믿지는 않지만 신부에게 부탁하여 선교적 차원에서 주례를 서 준다. 일본에 돌아가서 결혼의 사연을 글로 발표한다. 결국 결혼식을 크라이스트첯에서 하는 것을 복받는 것으로 알았다. 관광회상서 사람을 데려와 계속 주례를 서게 된다. 이에 교회에서는 당회가 모이고 결론을 내린 것이 주례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교회의 일은 아니라 하여 결혼식을 안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그 옆에 가짜 교회를 세워서 가짜 신부를 세우고 결혼식을 올리며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4절에서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 교회의 나아갈 길을 간략히 설명하는 바울이다.

사람이 교회를 세우지만 그세워짐은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쓰여지는 것 뿐이다.

5절에서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음을 말한다.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는데는 사람들의 노력, 방법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유지할 수 없다. 포기하기 직전까지 이르렀어도 하나님이 붙들어주심을 안다. 오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바울이 지적해 가르쳐주는 것 3가지가 있다.

누가 잘해서 부흥성장한 것이 아니다.

첫째, 믿음의 역사이다.

가슴에 있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적 외적 시험도 이겨내며 충성 헌신하게 쓰여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미국의 레디우스보 목사는 길거리에서 유명 메이커의 전지가위를 보고 구입한다. 집에 와서 사용하니 두세번 사용하니 고장난다. 가짜 제품임을 알고 자신도 가짜 목사도 있음을 회개한다.

둘째, 사랑의 수고이다.

슈바이처박사는 사랑은 수고와 희생이다, 그러나 사랑이기에 기쁨이라 말한다. 가족을 사랑하기에 수고하고 희생한다.

여인이 어린아이를 해산할 때 죽음과 동일한 고통을 받아들인다. 생명을 얻는 기쁨이 그 고통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교회에 충성하고 수고하고 헌금하고 하는 것이 고통이지만 결과를 알기에 수고한다.

세째, 소망의 인내이다.

소망이 있고 목표, 열매가 있기에 인내한다.

스데반 집사가 인내하며 순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지만 죽음 이후의 천국이 있음을 알기에 순교했다.

괴테는 사람이 성공은 꿈꿔도 성장은 모른다고 말한다.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제일 먼저 쓴 편지이다.

우리 교회도 성탄절을 맞아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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