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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61127 스스로 버리노라

스스로 버리노라

 

161127                                                                        조원형목사님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0:14~18)

 

세계적인 대기업에서 사원을 뽑는다.

당신이 캄캄하고 비오는 밤에 시골길을 가는데 버스정류장에 비맞는 세 사람을 본다. 위급한 노일환자 한명은 병원으로 가고자 하고 있고 한사람은 예전에 치료바을 때 도움준 의사이다. 또 한 사람은 꿈에 그리던 한 여성이었다. 세 사람중에서 한 사람만 태울수 밖에 없다면 누구를 태우겠는가. 200명의 지원자가 뽑혔는데 그 중에서도 그룹을 만들어 답을 써도 좋다고 한다. 그룹의 대답이 노인을 선택하려 하지만 중병들린 노인이 내 차에서 사망하면 어쩌나 한다. 신세진 의사분도 이 다음에 은혜갚을 기회가 있다. 꿈에 그리던 여인은 평생에 한번 기회니까 여자를 태운다 한다. 그런데 자동차 열쇠를 의사에게 주어 위급한 환자를 태워 치료하게 하고 자신은 그 여성과 비맞으며 버스를 기다린다는 두번째 대답자가 회사에서 뽑혔다.

 

사람에게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선택과 지혜이다.

지혜로운 이는 자신에게도 유익이지만 이웃가 하나님께도 이익이요 영광이 된다. 지혜가 모자란 사람은 잘못된 행위가 아니고 선을 행하여도 그 결과는 자신과 이웃에게 손해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다. 지혜가 중요하고 선택이 중요하다.

현대인 모든 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결과는 예전 사람보다도 행복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다.

 

청출어람.

후삼국시대 제갈갑이 작은 아버지 제갈량의 조카이며 아버지가 제갈근이다. 가문좋은 집안이다. 교육도 잘 받고 성장 과정도 훌륭했다. 칭찬도 많이 받았다.아버지보다도 더 잘난 자식이라 말한다. 옛날에는 이것이 복이었다. 이것을 청출어람이라 불렀다. 훌륭한 집안에서 아버지보다도 더 잘난 아들이 나왔다고 칭찬한다. 그러나 아버지 제갈근은 늘 아들 제갈갑이 걱정이다. 너무 잘나서 자기 제어가 어려운 아들임을 알고 걱정한다. 처음엔 사회에서 성공하더라도 종말이 좋지 못함을 걱정한다. 아버지의 걱정처럼 자신을 낮추거나 다스리지 못해 사람들로부터 원망받고 끝내 비명횡사했다.

겸손과 지혜가 중요함을 역사적으로 배운다.

 

현 시국을 보면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추락하는 사람들을 본다.

동양의 노자는 내 인생 삶의 3가지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온순한 사람이 되자. 둘째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 앞가림도 하고 가족을 도울 수 있다. 먼저 일어나서 먼저 일하고 남을 돕자. 세째는, 겸손함이다. 내 부족, 무능을 알고 성숙할 수 있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런 분으로 오셨나보다 생각하고는 끝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잃어버린 양 때문에 목자가 생명을 내놓는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 짐승 한마리와 사람의 생명을 맞바꿀 수 있는가. 그런데 고린도전서1:21에서 하나님의 미련이 사람의 지혜보다도 낫다고 말씀한다. 그 답답하고 미련하다는 것이 사람보다도 앞선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잘났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할지라도 속은 못난 인간이 많다. 남이 볼 때는 바보로 보여도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는 비범이 있다.

 

신당서 책에 누사덕이 있다.

동생이 벼슬길에 오르며 형님께 인사를 한다. 이에 누사덕이 겸손과 낮아짐, 다스림에 대한 충고를 한다. 덕으로 다스려라 한다. 동생이 맡은 지역을 통치할 때 어떤이가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가만히 닦으면 되는가 하니 형님 누사덕의 대답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상대의 원망이 사그러질 때까지 마르도록 그대로 두라고 충고한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서 통치하니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시하지만 나중에야 그 사람을 인정한다.

 

자식을 키우면서 잘 자라주는 자식도 있지만 죽을 때까지라도 속썩이는 자식이 있다. 그러한 자식을 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본문은 자식이 아니라 양과 목자이다. 더 사고 더 늘리고 더 줄일 수도 있다. 이는 깊히 보면 피조물과 창조주의 사이이다. 그러하니 결국엔 생명의 소중함 때문에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가 나오는 것이다. 죄인된 생명이지만 그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바꾸신다.

 

작가 김성령의 "페스브레킹"에서 말한다.

성공한 사람의 특징이 있다. 먼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둘째,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늘 자신을 변화시킨다. 나를 낮추고 노력한다. 세째, 자신이 선택한 길을 위해 엄청난 댓가도 불사한다. 희생 댓가없이 유지되거나 성공하지 못한다.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기 때문이다. 한마리의 양을 위해 99마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내 생명 내 영혼의 소중함을 아신다. 18절에서 그 때문에 생명을 스스로 버리신다. 그 생명은 죽으면 끝이다. 영원한 심판밖에 없으므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받는다.

나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신 그 사랑에 이론이나 지식이 필요없다. 뭐라고 설명하나. 그 사랑이 귀중함을 오늘 우리는 잘 모른다.

깨달아야 한다.

 

수전 레틱은의 이야기이다.

 2009년 9.11 쌍둥이빌딩 테러사건에서 테러범이 납치한 비행기에서 남편이 타서 결국 죽는다. 당시 어린아이를 임신했다. 분노 아픔 가슴앓이를 했다. 지금도 분쟁하는 파키스탕네서 남자들이 죽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여성들을 보면서 유복자인 아들을 가지고 남편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으로 돕기를 작정한다. 마음의 고통이 있지만 굶는 그들을 돕는다. 나중에 미국의 시민봉사상을 대통려으로부터 받는다. 도움으로서 자신의 고통과 아픔에서도 벗어난다.

 

우리 스스로가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곳에 투자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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