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사람
170528 조원형목사님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1~5)
중국 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인사를 한다. '천리길을 마다치 않으시고 우리나라를 찾아오셨으니 큰 이익(복)이 될겁니다.'
이에 맹자의 답변이다. '나라의 큰 이익이라 했습니까. 사람에겐 인과 의 밖엔 없습니다.'
인은 사람의 도리인 인격을 말하고 의는 온전한 마음과 행동, 삶을 뜻한다. 사람은 사람됨과 사랑 밖에는 없다는 답변이다.
서한 때의 무제 시대 복식은 부모의 많은 재산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양 100마리만 가지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몇년 후 오랑캐의 침략으로 나라가 무기살 돈이 없다. 이에 백마리가 수천마리가 되었느네 그걸 모두 팔아서 나라에 바친다. 이후 나라가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는다. 이에 그 동안 기른 양을 모두 나누어주어 살게 했다. 이에 무제가 몇번이나 중용하려 했지만 양키우는 자로서 거절하지만 결국에는 재상 자리에 앉아 나라를 잘 다스리고 부국이 되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됨됨이이다. 그리고 나라 교회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다.
"형제들아" 첫번째 인사말이다. 나와 함께 그리스도에게 부름받은 동질성을 포함한다.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아닌 나와 함께 그리스도에게 부름받은 동등한 위치의 사람을 뜻한다. 성도들의 문제 고통이 자기의 고통이요 자신의 문제라 말한다. "형제자매"란 말을 우리는 관습적으로 사용한다.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나와 함께 부름받고 섬기며 고통과 아픔을 나눈다.
사회학자 하버드 밋트는 사람에게 있어 나를 아이(I)와 미(me)로 나눈다. 아이는 본능적인 뜻, 충동적 감정적인 의미이고 미는 공유된 인격을 갖춘, 상대를 생각하는 나이다. 미숙한 사람은 아이를 많이 사용하지만 성숙하게 되면 공유된 나인 미를 많이 사용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온유한 심령, 겸손하고 나를 낮추는 마음으로 살라 한다. 배려 이해 포용이 있어야 한 뜻을 이룬다. 1절에서 자신을 돌아보라 한다. 어렸을 땐 상대에 관심을 갖지만 나이들어서는 나를 돌아본다.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 자신을 돌아보고 살펴본다는 것이다. 지금은 천주교나 유대교보다도 못한 욕을 먹지만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초대 교회의 그러한 마음가짐이었다. 예수님은 원수, 핍박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포용하며 가르치셨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가르친다.
나를 돌아볼 때는 언제인가.
장례식에서는 나도 죽는구나 생각한다. 상대와 부딪힐 때에도 보다 겸손치 못하고 포용, 배려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돌이킨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본문 말씀이다. 선한 사람 보면 선하게 살아야지 악한 사람봄ㄴ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지만 이는 미숙한 삶이다. 나도 마찬가지의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에게 묻는다.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물으니 간교하고 악한 폭군이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대답한다.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지켜만 보는 내가 안타깝다.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내 도리를 다하지 못함이 안타깝고 힘들다는 말이다. 우리의 환경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다. 나를 낮추지 못하고 남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말은 세례 요한이 구약시대 사람으로서 깨닫기를 바라고 자신을 돌아보길 가르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라고 가르친다. 죄, 허물, 내 중심적 욕망에 대해 두려워하라, 정신적, 영적으로 깨어나라는 것이다.
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한다. 내 짐이 무거울 경우도 있다. 세상 짐인 내 짐이 더 커 보일 때가 있고 상대의 잘못된 짐이 크게 보일 때도 있다. 잘 깨닫고 서로의 짐을 들어주어야 한다. 스승이 아이의 잘못으로 잘못 가르쳤다고 대신 아이로부터 매를 맞는 경우도 있다.
탕자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탕자의 마음을 배려했기에 가능했다. 큰 아들의 마음은 탕자가 객사하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배려의 자세가 필요하다. 다윗도 하나님의 마음에 든 성군이라 하지만 아들 압살롬의 공격에 도망다니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한 일들이 생겨난 자신의 잘못을 알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압살롬이 죽자 자신의 가슴을 치는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사도바울은 권고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표현한다. 예수님의 법이 사랑의 법이다. 가장 큰 사랑이 공유하는 사랑이다. 우리 죄를 공유하고 십자가에 지신 사랑이다. 신령한 사람이란 이러한 의식, 공유된 사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맹자가 왕궁에서 왕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현자들도 이러한 즐거움을 누립니까 묻는다. 이에 먹고 마시고 즐거워합니다마는 백성들과 함께 하면 공경받지만 백성들과 나누지 못하면 비난받는다고 말한다.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람과 사랑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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