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탄원을 통한 중보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18)
180729 주승중목사님
...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창세기 44:18~34)
많이 덥다. 폭염이다.
이런 때에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기 쉽다. 한 예를 든다.
부산의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덥다. 이에 건설회사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려 하였으나 주민들이 반대했다. 전력 때문이다. 결국엔 설치하지 못했다.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자신과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전역에 만연되어 있다.
오늘 말씀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바로 유다이다.
창세기 37:26에서 배다른 동생인 요셉을 죽이려 했을 때 유다는 피를 묻히지 말고 팔자고 제안한 사람이다. 22년전 사악하고 비열한 말을 했던 장남 유다이다. 이러했던 유다가 오늘 동생 베냐민과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이 종이 되겠다 한다. 회심한 사람의 모습이다.
먼저 총리인 요셉에게 자기의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한다.
첫번째 방문 때에 총리의 말대로 약속을 지켰는데 그 약속이 쉽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막내아우 베냐민이 아버지의 생명과 연결되었음을 말한다. 이로 인하여 총리에게 결정적인 제안을 한다. 자신이 노예가 될 것이니 아우를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탄원한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다. 아버지 야곱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옛날에는 요셉과 베냐민만 사랑하는 아버지가 미웠었다. 당시에는 부모와 배다른 두 동생보다도 다른 형제들의 입장만 생각했었다. 유다는 베냐민 대신에 노예로 남겠다고 한다. 이 때에 아버지의 연세는 130세이다.
막내동생 베냐민을 대신하여 노예로 남겠다는 "대신하여"라는 단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했을 때 이삭을 대신하여 숫양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이 때의 "대신하여"라는 단어가 일치한다. 당시 형제들은 자초지종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면서 베냐민을 빼고 돌아갈 수 있었으나 대신하겠다 한다.
이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한다. 중보자라는 뜻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디모데전서 2:5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시 사건이다. 유다의 자기희생적인 중보이다. 유다의 후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시는 것이다.
아버지 야곱과 막내 베냐민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는 야곱이 막내아들 베냐민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35의 말씀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끊을 수 없는 것이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고 다시 애굽의 총리인 요셉에게 잡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서 그 베냐민을 대신하여 유다가 중보자로 나선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러해야 한다. 지옥으로 빠지는 가족 친구 동료들이 있다.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유다가 베냐민을 버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면 엄청난 비난과 죄책감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준엄한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유다의 중보적 삶을 생각하자.
미국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아틀레이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와 병원도 세워갔다. 그런데 그 종족에게 고쳐지지 않은 것이 식인이었다. 그들이 가족 친지를 먹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인을 먹는 습관이 고쳐지지 않았다. 사람을 사냥했다. 아틀레이 선교사가 부족장에게 강권하였지만 부족장은 부족들과 회의 끝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사냥하게 해 달라 한다. 이에 아틀레이 선교사는 내일 새벽 동이 틀 때 제일먼저 동산에 올라가는 사람을 잡으라 허락한다. 아직 어둑어둑할 때에 결국사람을 사냥한다. 그런데 사냥하여 죽이고보니 자신들을 사랑했던 죠지 아틀레이 선교사였다.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사냥한 것이다. 이에 식인의 습관을 버린다.
자신을 내놓은 중보적인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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