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되어 묻혀버린 양심 되살리기 2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13)
180617 주승중목사님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세기 42:9~17)
어느 대안학교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범죄한 청소년들에게 인정교육을 하고 사회로 내보내는 곳인데 그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양심에 대한 교육이다. 이제 한번만 더 범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게 될 것이며 그 양심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여러 수업을 한다. 하루는 오리털이 가득 든 가방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다가 과거의 잘못이나 실수가 생각나면 오리털을 그 자리에 놓고 오라고 했다. 일주일 뒤에 선생님은 그 오리털을 다시 찾아오라고 하니 아이들이 당황한다. 오리털이 다 날라가고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양심을 잃으면 오리털처럼 우리의 양심도 그렇게 날라간다고 말한다.
지금은 요셉의 형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되살리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라는 환경을 주고, 또 아버지 야곱이 애굽에 가서 양식을 구해오라는 말씀을 통해 마비된 양심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환경을 재연함으로서 우리의 죽은 양심을 일으키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돌아가시자 돌아선 베드로를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까지 찾아가셨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이나 질문하셨다. 왜 세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는가. 예수님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에 빠져있는 베드로에게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고백을 듣고자 하셨다. 이에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내 양을 먹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당시 예수님이 잡혀가셨는데 뒤따르던 베드로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숯불을 쬐다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상황(요한복음18:18)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때의 모습을 재연하셨다. 주님께서는 해변가에서 숯불을 피우시고 생선을 굽고 떡을 준비하셨다.(요한복음21:9) 주님 부활후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이 때에 의도적으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한번도 아니고 세번 질문하셨다. 결국 베드로의 부인을 생각나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셋팅이었다. 바로 그 실패의 자리로 이끄신 것이다. 그곳에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세번 말씀하시며 내 양을 먹이라는 새 사명을 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요셉도 형들에게 22년 전 사건의 재연을 통하여 형들의 양심을 일깨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F.B. 마이어 목사의 말씀이다.
총리된 요셉이 형들을 향하여 너희는 정탐꾼이라 말한다. 22년전 형들이 양을 치고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이 걱정되어서 요셉에게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고 했었다.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갔다고 창세기37:14에서 기록한다. 형들의 간식을 준비해서 세겜까지 갔는데 형들은 22년전 요셉을 아버지가 보낸 정탐꾼이라 생각했다. 저녀석이 또 우리를 정탐하고 우리를 고자질하러 왔구나 생각한 것이다.
창세기 37:27~28에서 결국 형들은 구덩이에 넣었던 요셉을 은 이십에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팔아 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간 것이다.
창세기 42:9,14,16에서 요셉은 결국 그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붙힌다.
요셉과 형들의 대화는 22년 전의 재연이다. 형들의 마비된 양심을 일깨운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요셉을 외면했던 자신들의 죄악이 생각났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형들의 대화를 통하여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22년전의 창세기 37:18~20에서 형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로 비웃었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했다. 이후 창세기42:13에서는 우리는 열두형제라고 총리앞에서 말하며 창세기 42:21에서는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환경을 재연함으로 우리의 마비된 양심을 일깨우신다. 우리의 무뎌진 양심을 일깨우기 위해 환경을 재연하실 때 우리는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구덩이와 관련된 환경의 재연이다.
구덩이 "보르"는 항아리 모양이다. 전갈이나 위험한 것도 나타나는 구덩이에 던져졌다. 던져졌다는 "야슈리크"는 적어도 깊이가 10m이상에 던져질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외부와 단절된 것이다. 이번에는 구덩이와 같은 감옥에 형들이 전져졌다. 요셉은 사실 형들인 줄을 알고 있었지만 형들이 22년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기회를 준 것이다. 마침내 형들은 과거의 행동이 잘못이었다고 창세기 42:21에서 스스로 고백한다. 결국에는 양식을 들고 돌아가는 길에서 자루에 돈이 그대로 있음을 보고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말한다.
형들의 입에서 22년만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왔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신앙의 양심을 되찾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을 형들에게 깨우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일상적인 삶에서 떼어놓으시려고 격리 또는 육신적인 투옥을 사용하셨다고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목사는 설명한다.
하나님니 필요하시면 질병, 사고, 실패라는 파산,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의 어려움이라는 웅덩이같은 상황속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비된 신앙양심을 깨우치신다.
LA로 이민간 김집사 부부의 이야기이다.
대부분 한인들처럼 세탁소와 식료품 가게를 하며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했다. 딸은 미국 동부에 있는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어느날 딸을 만나러 갔는데 기쁘게 맞이하지 않고 뭐하러 여기까지 찾아왔나 친구들 앞에서 창피하단 말을 듣는다. 부모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백인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다니 부부는 충격이었다. 이십년동안 노력한 것이 허무했다. 집에 돌아오니 LA흑인폭동사건으로 평생 일군 터전이 불에 타 없어졌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밤 작정기도를 했다. 기도하다가 기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바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자녀들에게 하는 말도 달라졌다. 딸은 변호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폭동때의 피해 전액을 보상해 주셨다. 아들은 의사가 되어 오지에서 봉사도 했다. "저희는 돈이 최고였습니다.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도 양심도 믿음도 뒷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의 충격적인 말을 듣고 저희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LA폭동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뒷전에 놓았던 것을 최우선으로 삼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성공과 돈이 우선이 아니라 믿음과 착한 양심이 우선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19에서 말씀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종종 하나님은 이런 웅덩이와 감옥같은 삶의 상황을 통하여 잃어버린 그 무엇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는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숙하기를 원하신다. 신앙 양심이 마비되었을 때 죄를 범하고 잠자고 있는 양심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깨닫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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