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되어 잃어버린 양심 되살리기 4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15)
180708 주승중 목사님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곱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그 묻는 말에 따라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창세기 43:1~14)
차를 세차하면 꼭 그날 비가 온다.
어디서든지 줄을 서면 다른 줄은 빨리 줄어드는데 내가 선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꼭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긴다.
약속있는 날에 일이 바빠서 야근하게 된다.
지각하는 날에 평소 잘 오던 버스가 기다리는데도 안오고 있다.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하필이면 그 때 직장상사가 와서 나를 찾는다.
우리 속담중에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우연히도 자신에게 불리한 현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실을 에드워드 머피가 말한다.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 이를 우리는 머피의 법칙이라 한다.
우리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보다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때가 많다.
오늘은 요셉의 형들이 맞게 된 머피의 법칙이다.
정탐꾼으로 몰려서 모두가 감옥에 다 들어가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 곡식값으로 낸 돈이 곡식 자루에 다시 들어있어 놀라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아버지에게 모두 보고했다. 그들은 앞으로 잘 될거라 정상적으로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기근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더욱 심해졌다. 본문에서 "심하고"라는 말은 맹렬하고 비통하다는 의미이다. 가나안 땅에 배고픔과 기근이 더욱 심해져서 다시 곡식을 구하려 애굽으로 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본문에서 아버지는 다시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 명령한다. "조금"이란 히브리 원문을 보면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오라"는 뜻이다. 요셉의 형들은 상황이 호전되길 기대했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형들에게 왜 머피의 법칙이 필요했는가.
하나님께서 볼 때는 형들의 마비된 양심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하나님께서 형들의 마비된 양심을 회복시키시려고 먼저, 기근이라는 환경의 어려움을 주었고 둘째, 아버지의 입을 통하여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는 말에 마비된 양심을 일깨우려 했다. 애굽은 지난 20년간 그들에게는 동생을 팔아넘긴 행실로서 금기어였다.
세째는 22년전에 그들이 죄를 지은 현장을 다시 재연하게 되었고 네째, 요셉의 일방적인 사랑과 은혜를 통해 22년전의 자신의 죄악된 일을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을 언급하였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하면서 하나님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한다. 마침내 22년만에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면서도 요셉에게 고백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고백한 것도 아니었다. 온전한 고백이 아니고 자기들끼리 서로 말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 야곱에게 보고할 때에도 진실을 100% 말하지 않았다. 요셉에 대하여 말할 때 요셉은 없어졌다 즉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팔아버렸다는 진실을 총리에게도 아버지 야곱에게도 밝히지 않고 22년전의 거짓말을,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말로 여전히 하고 있다.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그들은 모든 진실을 그대로 고백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형들의 양심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재압박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정반대의 방향으로 몰아가시는 것이라고 제임스 몽고메리 목사는 설명한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머피의 법칙은 형들에게 다가온 불가피한 상황들이다.
더욱 심해진 기근으로 인해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더 이상 먹을 양식이 없다. 호전되기는 커녕 그들이 원하는 것의 정반대 방향이요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고 갔다.
또한 애굽 총리의 요구는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오라면서 데려오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형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야곱에게 말했지만 야곱은 그 요구사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베냐민)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요셉)은 죽고 그(베냐민)만 남았음이라 했다.
기근은 더 맹렬해지고 곡식은 또다시 떨어져서 구하러 가야 하고 시므온은 볼모로 잡혀있고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아예 만나주지 않겠다는 총리의 말은 창세기 43:3과 43:5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무엇 하나 형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이러한 머피의 법칙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변화된 모습들이 나온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형제들 누구라도 나서지 못할 때에 유다가 나온다. 유다의 변화이다. 22년 전에 요셉을 죽이지 말고 팔자고 했던 유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버지 야곱을 설득한다. 자신을 담보로 내세운다. 반드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시므온도 찾는다고 하며 자신이 담보가 되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한다.(창세기43:9) 담보란 보증서겠다는 것으로 더 나아가 자기 목숨까지 내어놓겠다는 말이다. 베냐민의 안전에 이상이 없도록 베냐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자기 희생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희생적인 유다의 발언에 아버지 야곱의 마음이 움직인다. 이후에 메시야의 혈통을 이어가는 것은 유다의 혈통으로서 야곱이 유다를 축복하는데 이는 유다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올 것을 예언한다.
이로 인하여 야곱도 변화하게 된다. 사랑하는 라헬의 아들 요셉을 잃고 베냐민마저 잃게 되면 그 괴로움이 배가 될 것이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니 유다의 간곡한 부탁으로 베냐민도 동행하기를 수락한다.
그런데 야곱이 유다의 간곡한 부탁으로 수락하면서도 창세기 43:11,14에서 야곱을 더이상 야곱이라 말하지 않고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이라 부른다.
하나님께서 얍복강가에서 주신 새로운 언약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창세기 32:29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로 설명한다. 더이상 욕망의 인간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이스라엘로 변화한 것이다. 성경 저자가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을 쓴 것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제 온전히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고백이다.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창세기 28:3~4와 창세기 35:11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나온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노년에 요셉을 잃고 시므온도 잃고 사랑하는 막내 베냐민도 잃게 될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의지할 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이시며 인간적으로 붙잡고 있던 베냐민을 놓음으로서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 것이다. 야곱에게 미치는 불가피한 상황들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심을 인정하게 하는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소중한 방법이었다.
머피의 법칙, 즉 불가피한 상황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가시를 사용하시기도 하고 불리한 상황이 반복되게 역사하시기도 하신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는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자꾸 꼬리를 물고 있는가.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끼어들고 싶지 않는 일에 끼어들게 되고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그곳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원만이나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감사하고 그 사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이 손길이 있다고 故 하용조목사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란 없다. 해석이 안되는 사건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필연이고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이 복주시는 사건이라고 故하용조목사는 설명한다.
스텐리 텐의 '하나님이 나의 기업을 소유하신다'는 책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이민자의 이야기이다. 19살 때부터 생계를 위하여 일했지만 다섯번째 사업에서도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왜 너 혼자만 애를 쓰고 나에게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가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37달러를 마련하여 플라스틱 사업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애썼다. 십일조 뿐만 아니라 수익의 51%를 하나님께 드렸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둔 것만이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직 하나님께 드린 것만이 내 돈이라 고백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기대와 계획을 갖고 계심을 깨닫는다. 남미의 한 원주민 교회에 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고 그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 대답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장 크게 남는 투자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셨고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투자는 영혼에 대한 투자라고 대답한다.그렇다면 너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 물으셨고 스텐리는 하나님께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수익의 51%를 드렸고 수백만불을 드렸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나는 십자가 위에서 내 모든 것을 너를 위해 주었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에 스텐리는 제 기업은 주님의 것이라 주님께서 경영해 주십사 하며 수익 전부를 하나님께 선교헌금으로 드린다. 그는 한국에도 교회를 세웠다.
우리가 이 사람처럼 가진 것 다 포기하고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 불가피하고 뭔가 풀리지 않는 상황을 주셨다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처럼 하나님과의 씨름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믿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내 소중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섭리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잃으면 잃으리이다"는 야곱의 고백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삶을 섭리하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전적인 신뢰와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침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경험하는 성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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