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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180408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6)


180408                                      주승중목사님


.....술 맡는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세기 40:16~23)


지난 3월27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TV프로그램에 디바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엄정화가 출연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자 배우나 가수를 일컬어 디바라고 말하는데 엄정화는 가수로서의 외로움이 있었고 대중에게 잊혀질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잊혀짐, 외로움이 엄정화에게도 있었다. 아무도 몰랐던 디바의 눈물이다.


여자는 버림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남자는 실패를 가장 두려워한다.

남여가 공동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자신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들은 대중으로 부터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두려워진다고 말한다. 오늘 본문에서 한 잊혀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시편 105:18에서 "그의 발은 착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라고 말씀한다. 요셉이 간수장의 신임을 받아 옥중 총무가 되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애굽왕의 신임을 받던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갇힌 감옥으로 들어왔다. 어느날 술맡은 관원장, 떡굽는 관원장 둘이 동시에 꿈을 꾸었는데...그 꿈을 요셉이 해석해 준다. 창세기40:8에서 "굼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술맡은 관원장은 3일만에 복직될 것이고 떡굽는 관원장의 꿈은 새들이 광주리의 음식을 먹었으니 3일만에 사형당할 것이라 전해준다. 하면서도 요셉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세가 억울하다고 술맡은 관원장에게 호소한다. 당신이 복직이 되면 사흘 뒤 왕의 생일인데 바로왕 앞에서 나의 억울함을 전해달라고 청했다. 아마도 그 관원장은 알겠다, 내가 도와주겠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 약속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요셉은 그가 풀려나고 부푼 기대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다.

F.B 메이어 목사는 요셉의 이런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많은 일들이 잘못되어있어 그걸 바로 잡으려고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을거야. 아니면 아마도 그는 왕에게 내 억울함을 말할 좋은 기회를 엿보고 있을거야. 그래서 반드시 연락이 올꺼야.' 요셉이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며 자신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요셉의 헛된 바램이요 헛된 기도였다. 창세기40:23에서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기록하고 있다. 공동번역에서는 까마득하게 잊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항세기 41:12에서 "히브리 청년이 있는데..." 그는 요셉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송봉모교수는 하나님께서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게 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먼저, 인간에게 희망을 두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요셉이 알게 하려고 한 것이고, 둘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요셉에게 아직 더 단련할 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라 말한다. 시편 105:17~19에서도 단련하였도다 말씀한다. 세째는, 하나님만이 시간과 방법을 결정하는 분이시기에 더욱 그러했다.


결국, 사람들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시편 146:3~4에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말씀한다. 이사야 2:22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예레미야 17:5에서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말씀한다.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참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할 수 있다.

분명 요셉은 처음에 술맡은 관원장에게 의지하고 기대했다. 감옥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더 있으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구원해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요셉은 후에 자신이 애굽 총리에 올랐을 때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자신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에게 힘과 권력이 주어졌어도 감옥에 보낸 보디발과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 그의 형들, 술맡은 관원장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창세기 50:19~21에서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오히려 선대하였다. 가장 먼저는 요셉이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를 믿었고 요셉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당신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잠언 3:5~6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시편 146:5~6에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레미야 17:5,7에서 '무릇 여호와를 의비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말씀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받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때가 되었을 때 바로 앞에 요셉을 세우셨다. 창세기 40:23과 41:1의 여백에서 기억해야 한다. 만2년후에 인간은 요셉을 잊었으나 우리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않고 계셨다. 내 길이 꽉 막혀있는 것 같고 내가 하나님께 잊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내 송사를 하나님이 살피지 않으시는 것 같은가. 하나님을 원망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다. 이사야 49:15에서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모친이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전쟁 등 혹시 무슨 일이 있어 포기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신다. 우리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오래 전에 한 자매의 내적치유 현장을 보았다.

30세인 그녀는 친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심했다. 아들을 원하던 아버지는 젊은 다방 아가씨를 데려와 아들을 낳았고 그녀가 5살때 친모와 아버지가 크게 싸우고 아버지가 칼을 들고 엄마를 위협하여 엄마는 가출하였고 그녀는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쓴뿌리가 있었고 자신은 하나님께 잊혀진 존재라 생각했다. 영적인 치유자가 이렇게 기도하였다. "성령님 그녀에게 그 순간에 주님께서 어디 계셨는지 보여 주십시오," 이불 속에서 떨고 있던 그녀를 하나님이 품에 안고 계셨다. "딸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녀의 30년 인생이 회복되었다. 주께서 그녀의 가장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그녀와 함께 계셨고 그녀를 보호해 주셨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그녀는 아버지와 친모를 용서하게 되었고 참 자유를 얻고 놀라운 치유를 얻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잊어버리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누가복음 23:42)고 말하는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말씀하셨다. 흉악범인 그가 그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면서 그는 그날 천국에 입성했다. 십자가형에 처한 흉악범까지 기억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왜 기억하지 않으시겠는가.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기억하신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승리의 삶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