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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180304 유혹이 다가올 때

유혹이 다가올 때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4)


180304                                 주승중목사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어느 군부대에서의 일이다.

저녁 배식중에 돈가스가 나왔다. 한개도 아니고 두개나 준다. 돈가스와 소스 각자 한박스씩 받을 것을 돈가스 두상자로 받았다. 작전 실패는 해도 보급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고 불평하는데 옆 부대는 소스만 두박스를 받았다 한다.

긍정과 부정의 삶은 자신의 가치관에 자리잡고 있다. 가치관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가 하는데 있다.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여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아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보다는 물질 체면 내 자식 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닌가. 시험 시련 가운데 놓이면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는다면 세상과 타협할 수 없지만 우리는 타협한다.


오래 전에 기독실업인회에 참석하던 안수집사가 사업을 위해 관청에 허가를 내려고 들어가니 봉투를 요구한다.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했는데 공무원이 트집을 잡는다. 끝까지 봉투를 주지 않았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1년을 기다렸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지만 그 공무원은 이후 퇴출되었고 그 집사님은 새로운 아이템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요셉도 본문에서 유혹과 시련을 당한다.

윤리적인 유혹의 문제만은 아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10년이 넘었다.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까지 되었다. 주인은 자신이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의 성실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성실하고 신실하게 살았다. 요셉의 나이 27~28세였다.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 보디발의 아내가 반하기에 충분했다. 그 나라의 세번째 서열되는 경호대장 보디발은 바쁘고 출장도 잦아 집을 많이 비웠을 것이다. 이에 그 아내는 고독하고 외로왔을 것이다. 이에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명령했다. 가정 총무로 있었지만 요셉은 노예 신분이었다. 노예는 말하는 짐승이었다. 주인의 명령에는 순종해야 할 입장이었다.

보디발의 아내는 집요하게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요셉의 거절에 수치와 분노로 변한다. 이로 인해 깊은 감옥에 갇힌다.


유혹과 시련이 매우 심각한 사건이었다.

여인은 하나의 유희였지만 요셉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보디발에게 아내의 행동을 이를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요셉은 생존의 문제였다. 딱한번 눈 한번 감고 넘어갈 수 있는 처지이기도 했다.

먼저, 심리적 댓가가 있었다. 주인 마님과 잠자리를 함으로서 신분 상승과 노예로서의 복수심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둘째는, 마님과 즐기는 상황도 좋았다.

세째, 주인 마님과 잠자리를 함으로서 위로했으므로 문제가 생기면 마님이 해결해 줌으로서 문제가 없다.

네째,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혜택이 많았다. 후원자가 생기는 셈이다.

단순한 성적인 유혹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고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했다.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타협하지 않았다. 요셉의 가치관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적인 차원에서 신의를 중요시하는 가치관이다. 자신의 현재 처지가 하나님의 은혜임은 분명하지만 주인을 통하여 지금까지 왔는데 주인을 배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실과 신의를 중시하는 가치관이다.

둘째,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가치관 때문이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고백한다.

죄(바타)는 바른길, 표적에서 벗어나다, 빗나가다, 표적을 놓치다는 뜻이다. 그것이 죄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기에 죄를 짓는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원하는대로 살기에 그것이 죄이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말을 보디발의 아내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 그 의미를 알고 보자기로 자신이 섬기는 우상에 덮고 또다시 유혹한다. 이에 요셉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는 속이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요셉은 거절해도 죽고 받아들여도 죽는다. 주인 아내와의 불륜이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당시 노예가 주인을 성추행하면 악어밥이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했다. 하면서도 당시의 당하고만 있는 요셉은 몰랐다. 감옥에서 왕의 신하들을 만나고 애굽의 총리까지 되며 흉년에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까지 되지만 요셉은 몰랐다.


당시 요셉은 사형이 마땅하나 감옥에 갇힌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섭리였다. 악어밥이 되기 전에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당해야 했지만 왕의 죄수가 갇힌 감옥에 갇힌 것은 보디발이 요셉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화를 냈기 때문이다. 아내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겉옷의 뒷쪽이 찢어져 있었다. 보디발은 정치 지도자로서 노련한 사람이었다. 아내를 수치스런 자리로 몰지 않았고 억울한 요셉을 처형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셈이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유혹이 우리 앞에 있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함께 있지 말아야 한다.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도망하여 나갔다. 유혹에서 도망해야 한다.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가치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139편 1~4,7~10절말씀처럼 나를 아신다.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있다.


김수웅 장로의 이야기이다.

6.25전쟁에서 남쪽으로 피난후에 소금장수로 일한다. 자금난으로 일수돈을 빌릴 처지였다. 그런데 당시 떼어놓았던 십일조에 눈이 갔다. 그 십일조를 가지고 은행에 돈을 채워넣으려 버스를 탔는데 허전함을 느꼈다.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바라보심을 생각한다. 곧바로 목공소에 가서 작은 구멍이 있어 빼지 못하는 십일조 통을 만들어 넣는다.


하나님의 앞에서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섭리 손길에 있음을 알고 신앙인으로 살아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