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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주승중목사님

180318 (감옥 안에서도 진행된 하나님의 섭리)

감옥안에서도 진행된 하나님의 섭리

(비전과 섭리의 사람 요셉 5)


180318                                                             주승중목사님


....옥에 갇힌 애굽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창세기 40:1~8)


우리는 때로 내 삶의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나의 꿈과 비전,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경험을 한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묵상하는 가운데 간절히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잘 되어야 하는데 우리 삶은 여전히 어렵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삶의 방향은 전혀 반대로 흘러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스텐리 존스 인도 선교사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모습'의 일기장에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폐허를 보지 않고 그 폐허 속에서 재건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죄악이 팽배해 가는 세상을 보지 않고 그 흑암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이미 아침을 보고 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모습은 원망과 탄식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꿈으로 인하여 17세부터 고생한 인생이다. 요셉을 감옥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이끄셨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 경호대장의 집에 왔고, 정직하고 신실했던 요셉은 보디발의 신임을 얻어 가정총리가 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되를 범할 수 없다(창세기 39:9)고 하면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요셉은 성실하게 산 결과가 실망과 혼란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요셉이 황당한 상황 가운데서 실망했다거나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내용이 성경에는 전혀 없다. 창세기에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시편기자가 당시에 기록한 기록한 것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편 105:16~19에서 '그가 또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사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가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착고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가운데 감옥안에서도 요셉을 인도하셨다는 것, 처음에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에 착고가 채워지고 온몸은 쇠사슬로 묶였다고 나온다. 요셉의 수감생활 처음 1년여 시간은 육체적인 고통이 심했을 것이다.

요셉의 꿈은 형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지만 정작 그가 처한 현실은 그 꿈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창세기 37:8에서 형들의 조롱을 받고 죽음의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지만 신임을 받고 가정총무가 되고 그 아내의 억울한 누명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속박하다, 짐승들을 묶다는 뜻으로서 죄인 아닌 죄인된 요셉은 온몸에 착고가 채워지는 고통스런 상황이고 꿈과는 멀어지는 모습이다. 이런 요셉의 상황은 그의 꿈과는 모순되고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감옥에갇혀있는데도 또다른 죄수들을 섬기는 신세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순이다. 꿈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리여야 하는데 점점 더 꿈과는 반대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꿈대로 그를 하나씩하나씩 밑바닥에서 여전히 인도하고 계신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신임을 받았고 요셉에게 자기 집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고 창세기 39:5에서 말씀한다. 창세기 39:21에서도 보디발의 아내의 일로 감옥에 갔지만 감옥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고 기록한다. 그리하여 모든 제반 업무를 요셉에게 맡겼다.

요셉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도우셨다는 것이다. 송봉모교수의 "신앙의 인간 요셉"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어떤 비극적인 상항에서도 사람과 함께 하시며 돌보아주신다는 것,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팔려간 요셉을 돌보는 것이요 요셉을 무고하게 성폭행자로 몰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감옥에 있는 요셉을 돌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본문의 사건에서도 친위대장 보디발 아내의 일로 자기집 옥에 가두었는데 그 옥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창세기39:20)이었고 왕의 신임을 받던 두 관원장이 옥에 갇힌 곳도 요셉이 갇힌 그 곳 친위대장 집안의  감옥(창세기40:3)에 갇혔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드러나는 말씀이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을 이루게 되는데 한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된 것이다. 바로 앞에 요셉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길이었다.

창세기 37장~39장까지 보면 "손"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37장에서 형제들의 손이 4번, 39장에서 여인의 손, 보디발 아내의 손이 3번, 또한 "요셉의 손에 맡기니..." 즉 요셉의 손이 여러번 등장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간수가 모든 것을 요셉의 손에 맡겼다고 표현한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의해, 원수 대적의 손에 의해 팔리고 요셉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 계속 흐로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두 관원장을 만나게 하신 것, 술맡은 관원장이 본문에 나온다. 그 때 그 시간에 그 감옥에 갇히게 만든 것, 하나님의 섭리는 여전히 감옥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요셉이 왕의 죄수들을 섬기는 자리로 내려감으로서 겉으로는 그의 꿈이 좌절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요셉과 두 관원장을 만나게 하심으로서 실제로 그 꿈을 이루고 계신다. 도지원목사의 "요셉의 섭리살이"에서 말한다.


 우리도 꿈과 현실이 모순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때로는 우리의 삶이 어디를 둘러보아도 도저히 벗어날 수 잆는 토굴과 같은 곳에 갇힌 채 착고가 채워지고 온몸이 쇠사슬에 묶인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절망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러하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는 믿음이었다. 도저히 그와 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었다. 그 결과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4:18~22에서 말씀한다.

요셉은 앞서 말한대로 시련을 받고 결국은 차가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요셉은 두 관원장에게 말한다. 창세기 40:8에서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모든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함으로서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에 실망도 좌절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송병주 목사님의 간증집 '오후 5시에 온 사람'이 있다. 마태복음 20:1~16 포도원 품꾼의 품삯의 비유에서 아침 일찍 온 사람도 낮에 온 사람도 오후 3시에 온 사람도 오후 5시에 온 사람도 똑같이 품삯 1데나리온을 받았다. 포도원애 일하러 마지막에 온 사람 그 사람도 품삯을 다 받은 것처럼 읂입니다 저의 삶은 은혜입니다 고백한다.
 

청소년기엔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빨간 딱지가 붙고 달동네 판잣집에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고 어린 동생들을 돌볼 수  밖에 없었다. 전기 수도도 끊기고 아버지는 큰 빚만 남기고 55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교회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빚을 갚느라 전전긍긍하던 어머니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자폐증세가 있었다.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인생처럼 앞이 막막하고 캄캄했다.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역사, 섭리의 역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다. 이제는 자폐증 아들을 두고도 감사히 여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마지막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구속섭리의 시작이다. 인간 최고의 순간에 처절한 좌절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표를 찍으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떨기나무같은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모두가 끝장이라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어떤 실패도 그 어떤 좌절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내 육신과 영혼을 할퀴고 지나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으시기 전까지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지 말아야 한다.' 송병주 목사의 '오후5시에 온 사람'에서 고백한다.


주님은 우리가 아파할 때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고 우리의 시련과 눈물을 더 안타까워하시면서 마침내 놀라운 선이 될 수 있도록 지금도 역사하신다. 요셉의 시련이 하나님의 섭리의 시작이셨던 것처럼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 "여기가 네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야, 새로운 시작이야, 일어나라"하신다.

 우리의 감옥과도 같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믿음의 눈을 활짝 열자.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손을 길게 내밀어 그 분의 손을 꽉 잡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섭리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편 105:17~19 말씀처럼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욥기 23:10의 말씀처럼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시나니...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 시련이 단련되어 정금같은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