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나타날 영광
190120 조원형목사님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25)
우리는 고난 당할 때 어떤 찬송을 부르는가.
위로되는 찬송이 많지만 특히 고난 당할 때 찬송가를 보지 않고도 부르는 찬송이 위로와 힘을 얻는다. 성경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찬송가 338장 -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성경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유대인의 '아니마인'이라는 역사적인 찬송이 있다.
고난당할 때 입은 고통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때가 있다. 반복해서 암송해도 계속 듣고 싶은 찬송이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2차 대전 때에 600만이 아이슈비쳐 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그 속에서 부르던 찬송이 '아니마인'이다. 1절에서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믿는다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할 줄을 우리는 믿는다' 2절에서는 '이런 참상이 벌어지는데 그런데 메시야는 늦게 오신다'라고 노래한다.
평소에는 믿는 것 같으나 위급한 경우를 당하여 무신론자와 마찬가지가 된다. 니체는 목사의 아들로서 2차대전의 참상을 보며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긴급할 때 부르는 찬송과 성경 말씀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부르던 아미나인에서 2절을 바꾸어 부른다. '그런데 메시야가 더디 오셔서 사람들이 신앙이 부족하여 넘어지고 있다'라고 부른다. 메시야는 약속하셨는데 왜 드디 오시는가. 불평 원망이 섞인 찬송이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오시지 않았다고 한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람과 다투었는데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본다. '예' 하면 되는데 그 말씀은 성인군자인 예수님에게만 해당된다고 거부한다. 인간의 약점이다.
유대인들이 귀히 여기는 이사야서에 다윗 아브라함 등의 존경하는 선지자가 나온다. 인류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메시야 구원 사상을 보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없었다. 구약서 중에서 이사야서에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강력히 서사되어 있다. 그런데 유대인은 메시야가 오시면 로마가 완전히 망해야 하고 유대의 왕이 되었다면 메시야로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야는 멸시와 천대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메시야 신앙에 대한 짜집기로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자기 입맛에 맞게 생각을 바꾼 것이다.
어찌되었건 성경 그대로 우리는 믿어야 하는데 유대인은 짜집기하여 더디 오신다고 하면서도 메시야를 계속하여 기다린다는 것 자체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성경 본문 로마서 8:18은 유명한 말씀이다.
옛날에 반지는 굉장한 보화이며 자랑거리였다. 반지속에 박힌 다이아몬드처럼 성경학자들이 이 말씀을 비유한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영광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명을 쓰고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텐데 사는 것 자체가 괴롭다. 그런데 이 고난, 이 시련은 비교가 안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준비해 놓고 계심을 알면 절망하지 않는다. 얍복강가에서의 야곱의 기도처럼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다.
'주여 믿습니다' 이 단어 한마디로 믿음을 지킬 수는 없다.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 연단 과정을 통해서 시련속에서 배운다. 선물은 아무 때나 받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나 기회가 있어야 그 때 주신 선물이 참 선물이다. 믿음은 환상이 아닌 약속이다. 고난 시험 시련과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장차 주실 보상으로 이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 심리학자 지 엘이오트는 사람의 5가지 감옥을 말한다.
먼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의 감옥이다. 본능이다.
자기만 생각한다.어린아이나 짐승들도 가진 본능이다. 자기만의 사랑이 자라나서 형제 사랑이 내 사랑이요 하나님 사랑이 내 사랑임을 배운다.
둘째는, 근심의 감옥이다.
근심이 오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성경은 지적한다. 걱정하지 말라 세월이 지나가면 해결된다는 말은 나도 알지만 걱정이 된다.
세째, 과거의 감옥이다.
좋은 과거와 나쁜과거가 있는데 자기 기억에 갇혀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네째, 선망의 감옥이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한다.
다섯째는, 시기 질투의 감옥이다.
비교 빈곤의 감옥이다.
이런 감옥에서 탈출하고 벗어나야만이 인생을 살 수 있다. 술로 해결할 수는 없다. 성경은 믿음으로 채워야 한다고 말씀한다. 냄새나는 나쁜 공기의 공간을 맑은 공기로 채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즘, 환상적 꿈의 세계이다.
이데올르기 사상이 2가지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이다. 이론적으로 빠져들면 공산주의가 자생적으로도 나온다. 그 논리속에서 헛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대화가 어려운 점이 그러하다. 쉬운 일이 아니다. 교류가 문제가 아니라 사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단과 담만 쌓고 살 수는 없다. 시험과 시련이 무엇인지 알아야 믿음이 자란다.
예수믿는 사람이 비참하고 처참하게 죽어나간다. 이를 보고 사도 바울은 말씀한다. 이 고난이 장차 오실 영광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그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며 무장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 본능을 중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환상의 낙원의 세계가 오지 않는다. 그것으로 인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고 오늘의 편안을 포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내게 나타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말씀한다.
스데반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았다.
시인 네이밈 플라이어는 병들지 않으면 부르지 못하는 찬송이 있고 병들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기적이 있고 병들지 않으면 듣지 못하는 말씀이 있다고 노래한다.
칼빈은 로마서 8:18 말씀을 돌아갈 때까지도 암송한다. 28번째 암송하다가 운명한다.
우리도 말씀으로 찬송으로 믿음으로 무장하며 성장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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