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 넘치나이다
190127 조원형목사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6)
우리는 미국의 존,F 케네디 대통령은 기억하지만 페트릭 맥마은은 기억하지 못한다.
케네디가 작은 함정의 선장으로서 일본과의 전쟁에 나섰다. 일본 비행기가 함정을 파손하여 3명이 죽고 11명이 산다. 페트릭 맥마은은 화상을 입고 구명조끼를 입었으나 수영을 못했다. 9명이 헤엄쳐서 나갔지만 페트릭 멕마은에게 함장인 케네디가 구명조끼의 끈을 입에 물고 헤엄쳐서 그를 구조한다. 그 후에 케네디는 대통령이 되고 맥마은은 소도시의 우체국장이 된다. 1년에 한번 정도는 만나서 교제를 나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만나서 불편한 일이 없는가 하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한다. 나를 살려주셔서 다시 사는 인생이라 대답한다.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경험이 없더라도 어려운 처지에서 헤어나게 된 경험이 있으면 불평이 없고 감사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삶에 휘둘려 불평 짜증 자학한다.
저술가 멕스록 케이도는 시편 23편을 해석하여 쓴 글이 있다. 현대인들의 고통 갈등 번민을 빗대어 썼다.
'나의 목자는 내 자신이니 항상 부족함이 넘치치로다.'
내 목자는 하나님이요 예수님이라 고백할 수만 있으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내 목자가 내 자신이라 짜증날 수 밖에 없다. 이 백화점에서 저 쇼핑센타로 옮기고 세상의 구충제 약을 다 먹어도 항상 불만이다. 직장에서도 적 투성이이고 집에 들어가서도 어항속의 붕어조차 나를 향해 짜증낸다. 내 잔에 독한 술을 부어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다고 쓴다. 내 마음에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나올 수 없는 글이다.
시편23편은 신구약 통틀어서 제일 많이 읽힌다.
죽음 직전, 운명 직전에서도 가장 많이 읽힌다. 우리 삶이 암담하고 참담할 때에도 읽힌다. 우리는 어떤 성경을 읽으며 위로받는가. 요한복음 10장의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이 구절도 많이 읽힌다. 찬송도 마찬가지이다. 494장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3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등이 있다. 내 자신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다.
여튼 어려움, 고난 당할 때 나의 목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본문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를 생각한다.
먼저, 목자와 양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교감의 관계이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 관계도 교감이다. 다큐를 보면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 있는 유목민들은 목자가 소떼 양떼 말떼를 키운다. 10마리~100마리씩 각집마다 소유하고 있지만 한곳에 몰아서 한 지역에서 스스로 몰려다니며 풀을 뜯는다. 주인들이 몰아서 한곳에 모이게 하는데 말에 표식이 없다. 하지만 자기의 말을 정확히 찾는다. 이는 교감 때문이다. 말과 주인과의 교감이다. 말들도 주인을 알아본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교감이 필요한 이유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유이다. 아이에게 엄마보다도 더 잘 입히고 먹여도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뗄 수 없다. 가전 제품이 제마우리 좋아도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신학이 어떻고 성경이 어떠하더라도 교감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원수들의 해를 받으며 고통을 겪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이다. 내 형편 내 현재의 고난 고통에 몸서리치며 몸부림쳐도 교감이다.
그 다음에는, 먹이신다.
목자와 짐승의 관계로 인해 소떼나 짐승들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목자가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시는대로 먹지 않기에 생긴다.
세번째는, 인도하신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교회 뿐만 아니라 사는 생활 가운데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그 과정이 연단이요 훈련이다.
예수님이 어린 양을 안고 있는 모습의 그림을 본다. 어미 양이 예수님을 바라본다. 감사한 표현이다. 그림 속에도 스토리가 있다. 어린 양은 골짜기가 무섭고 물이 무섭기에 건너기가 힘들다. 이를 알고 어미양이 감사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어려운 시련 때에 위로를 받는다.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편안한 곳에서도 엄마가 없으면 아이가 우는 것처럼 예수님이 계시면 편안함을 느낀다.
네번째는, 소생케 하신다.
상처입고 다치는 양도 있다. 밤새워가면서 치료해주는 목자이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바로 영육간의 치료의 시간, 치유의 시간이다. 내 마음의 상처를 고백치 못해도, 불안하여도 위안을 받는다. 성전에 들어와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면서 우리는 치유받고 회복받으며 믿음의 용기를 갖고 나서게 된다. 목자를 믿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퀴스틴 마하의 "명쾌하게 인생을 사는 법"이란 책에서 '단순화 하라'고 말한다.
먼저, 물건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인생을 가볍게 산다. 불교 용어로는 비운다 하지만 기독교는 비우는 것이 아니다. 비우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단순하고 낮아지고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둘째는, 작은것으로 단순화하라.
세째, 시간도 단순화하라.
네째, 건강도 단순화하라.
다섯째, 관계를 단순화하라. 범위를 넓히려다가 시험에 든다.
여섯째, 자신을 단순화하라.
단, 예수님이 내게 계셔야 한다.
어린아이가 엄마 한분으로 단순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감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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