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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90519 자식이 되어라

자식이 되어라


190519                         조원형목사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브리서 12:5~13)


5월을 가정의 달로 연례행사로 각성하는 계기를 삼는다.

근간에는 가정의 달에 사회 시대에 따라 자녀 관심에만 집중한다. 옛날엔 부모에 대해서만 강조한 시대도 있었다. 좌로, 우로 치우치는 시대를 우리는 산다. 오늘은 가정에서의 중심인 아버지에 대해서 공부해 보자. 좋은 기억은 남기고 나쁜 기억은 고쳐보자.


어떤 여성이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 오후에 학교에서 비가 오면 아버지가 우산을 챙겨와서 정문에서 기다린다. 친구들에게도 부러움을 받는다. 어느 날에도 오후에 갑자기 비가 오는데 아버지를 기대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안보인다. 짜증이 난다. 비를 맞으며 골목 집까지 걸어간다. 그런데 아버지가 우산을 든 채로 쓰러져 계셔서 결국 병원에 연락하고 조치했지만 끝내 돌아가셨다. 비가 오면 아버지가 기억나고 운다고 썼다. 누군가 나를 키워주신 고마움을 늦게서야 깨닫는다.


5가지의 아버지 유형이 있다.

먼저, 어머니 같은 아버지이다. 자상하기 보다는 약한 아버지이다.

둘째는, 손벌리면 돈만 내주는 돈주머니 아버지이다. 돈탄 기억밖에는 없다.

세째, 방관형 아버지이다. 돈은 벌어줄지 몰라도 자녀들에게 관심없는 아버지이다.

네째, 건축가형 아버지이다. 설계도를 가지고 기초공사를 한다. 목표 계획대로 고쳐서라도 되게 한다.

다섯째는, 농부형 아버지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돌보며 인내하며 결실을 기다린다. 바람직한 아버지상이다.


마틴 루터의 고백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엄하여 매맞은 기억이 많다. 자라서도 잘못하면 스스로 아버지가 기억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기억이 바뀐다. 그것이 나를 위한 사랑이었구나 깨닫는다. 그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려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경험하고 자라는 과정으로 인격이 형성되었다. 엄한 아버지로만 알았는데 내 앞날을 지극히 위하신 분, 그리스도의 초상이라 표현한다. 내 인생의 시작과 과정이 가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성경 본문에서 말씀한다.

위로하신다, 간싸고 사랑하신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나를 권면하신다.

꾸지람이다. 엄히 꾸짖으신다.

징계하신다. 잘못에 벌하신다.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

채찍질 하신다. 한대 때려서는 나쁜 습성이 안고쳐지니까바르게 될 때까지  계속된 연단을 주신다.


본문에서 '아들'은 '데카'와 '휘오스'로 구분한다.

'데카'는 혈통의 자식이다. 새끼를 뜻한다. 성경의 인물이 이스마엘이다.

'휘오스'는 유업의 자식이다. 신앙 인격을 이은 자식된 자식이다. 이삭을 뜻한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키울 때에 이삭에 대한 교육의 극치가 창세기 22장의 모리야산에서이다. 제사지내러 올라갈 때 이삭이 순종한다. 왜 제물이 없는가 물어본 이유를 이삭은 전혀 몰랐을까.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은 그 동안의 교육이 각별했음을 깨닫게 된다.


십자가를 노래하지만 십자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

가을날 풍성한 곡식이 거저된 줄 알지만 봄부터 고생한 것을 안다. 과정이다. 부모 가족 나를 키우신 분들을 돌아보면 나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을 깨닫는다. 친자식이 아니면 매를 못든다고 한다.


본문 히브리서 기자가 하는 말이다.

징계받지 않는 자식이 있겠는가. 신앙인다운 신앙인은 연단에 있다. 평탄한 신앙인이 없다. 누구나 시험이 있다. 연단 채찍이 유익이다.

채찍질 징계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는 것은 깨달음을 위함이다. 오해 곡해도 있다. 어렸을 때는 불평하던 것을 자라면 깨닫는다. 은혜로 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곡식은 안된다, 양으로 지내라 하신 적이 없다.가인이 제일 좋은 곡식으로 드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아벨은 부모가 잘못하여 양의 가죽을 입고 지내셨음은 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지음받은 의미를 깨닫는다. 성령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깨닫게 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원하신 뜻이 십자가인 것을 깨닫는다. 깨닫는 순간을 주신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옮기시옵소서 기도한 것이 그 이유이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함을 느끼신다. 그런데 깨달으신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순종하신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라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다.

아브라함도 고민 갈등하며 모리아산을 오른다. 자식을 재물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식이 되라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주기도문에서도 기도하는 이유이다.


마태복음 1:1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말씀한 다윗은 어떠한가.

시편 119:71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고 따르며 지킬 수 있었다고 노래한다.

이제는 깨닫는 자식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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