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조원형목사님

190526 훈계를 들으라

훈계를 들으라


190526                                       조원형목사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1~9)


중국 여행 당시의 젊은 가이드인 조선족 청년이 기억난다.

말을 할 때마다 주흘래 어르신, 모택동 어르신...등의 어르신 호칭을 꼭 붙인다. 우리의 상황과 다름을 부끄럽게 여긴다. 존경하는 지도자가 없어서 안타깝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우파 좌파 구분하여 지도자들을 비난한다. 무엇이 바른 길인가 모를 정도이다. 김일성 주석 김정일 위원장 등의 존칭은 쓰지만 우리의 대통령들에게는 존칭없이 묘소도 찾지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보다도 먼저 존경의 대상을 상실하는 시대를 맞았다.


중국의 모택동은 중국을 세웠지만 정치적 오류나 피를 흘린 것도 많았다. 공과를 따져 공이 많으면 과를 덮는다. 이것이 중국의 풍습이다.

젊은이에게 어르신 호칭을 쓰는 이유를 물으니 중국을 위해서 헌신한 분들이라 한다. 거대한 중국이 대만을 찾지 않은 이유는 모택동 주흘래 장개석이 같이 정치하는 이로서 의리상 장개석의 대만을 남겨둔거라 말하기도 한다.

비리 척결을 위해서라지만 현실의 정치가 안타까운 것도 많다. 우리는 부모를 생각하며 어떤 기억을 하는가.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 기억도 있고 아픔 갈등 감사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내 자신은 어렸을 때 소천하신 부모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으니까 물론 좋은 기억밖에는 없다. 부모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어떻게 우리에게 베푸셨는가. 구약은 엄하신 하나님, 신약은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지만 그 사랑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피부로 느낄만한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계시자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라 한다. 나를 어떻게 했던지 간에 나를 품고 안아주신 분이 부모님이시고 세상 끝날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부모님이시다.


선다싱의 말이다.

나는 어머님 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신학을 알았다 한다.


영화 이야기이다. 아들을 고이 키워서 서울로 유학을 보낸 어머니 이야기이다.

당시엔 전화도 없고 글을 몰라서 편지를 쓸 수도 없다. 돈만 붙여주면 감감 무소식이다. 아들이 보고싶어 아들의 하숙집을 찾다가 날이 어두워 노숙을 한다.낮이 되어 학교를 찾아가니 공부중이다. 정문에서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아들을 찾으니 예쁜 아가씨와 함께 아들이 나온다. 아들이 놀란다. 아가씨가 누구냐 물으니 우리집 식모라 한다. 결국엔 그냥 시골로 내려간다. 나이들어 아들이 찾으니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무덤 앞에서 우는 장면의 영화가 당시 이슈였다.

조금 안다 싶으면 부모를 피하고 비난한다. 나이들고 이해되면 그때서야 후회한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주된 내용이 면류관이요 금사슬이다.

그 깊은 뜻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 표현할 길이 없다. 최고의 영광스런 표현이다. 성경은 비유이다. 부모의 사랑이 나를 덮고 얽어매었기에 금사슬이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마다하고 부끄러워하고 거절한다.


공자의 제자 자유가 있다.

부모의 효에 대해서 공양이 전부입니까 묻는다. 공자의 대답이 그건 짐승도 할 수 있는 일이라 한다. 까마귀도 병들면 새끼가 먹이를 부모에게 먹인다. 학도 마찬가지이다. 떼를 지어 살며 효도한다. 그럼 어떡하는가 물으니 공경이라 대답한다.


선다싱이 어머님 품에서 바른 신학을 공부했다는 말이 실감나는 이유이다.


성경에서는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자식을 바로 키우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선택적이지만 부모 자식은 숙명적 관계이다. 제2의 창조자가 부모님이시다. 아담 하와를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그 다음부터는 부모를 통하여 섭리하신다. 섭리 가운데서 자식인 우리가 태어난 것이다.

손주가 할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빠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가 가르쳤겠지만 대단한 글이다.


어떤 것이 효도인가.

하나님에 대해서 신학이 필요하고부모에 대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자라서 부모와의 의견과 충돌도 있지만 탈무드는 말한다.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자식이 앉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말대꾸하지 말라. 아버지가 누군가와 다투면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아버지 편을 들라 한다. 부모 섬기는 방법이다.


요즈음 가정 경영학이 있다.

부모는 특별한 스승이다. 기초적인 스승이고 세상 끝날까지 스승이다. 형제간 싸움과 질투, 친구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부모가 돌아가면 외양간도 고치지 말라. 부모의 흔적을 없애지 말라는 것이다. 옛날엔 부모가 입었던 옷 한벌쯤은 평생 남겨뒀었다. 기르치지 않은 탓이다.


영국의 스코틀랜드는 청교도의 고향이라 한다.

강철왕 카네기가 집에 오니 아버지는 장사한다고 전국을 다니며 출타중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공장을 다니며 고생한다. 카네기가 직장나가면 밤새 옷을 세탁하여 말려서 입혀 보낸다. 어머니는 늘 남루하다. 이에 카네기가 서원한다. 옷을 마음껏 사입힐 때까지 결혼하지 않는다. 52살에 강철왕이 되어서야 결혼하고 60살에 아이를 낳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부모 섬기는 것은 바쁘고 안바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아들이 아가씨를 데려왔더니 어머니가 반대한다. 교회에 문의했더니 기다리라 한다. 3년이 지나서야 어머니가 허락한다. 이것이 효도이고 공경이다.

믿음 안에서의 마지막이 기다림이다.

'말씀 > 조원형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609 마땅한 도리  (0) 2019.06.12
190602 사람들의 행복  (0) 2019.06.03
190519 자식이 되어라  (0) 2019.05.22
190428 은밀한 신앙  (0) 2019.04.30
190421 믿는 자가 되어라  (0) 201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