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가 되어라
190421 조원형목사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6~29)
결혼 적령기 청년이 가정학과를 졸업한, 이상적인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것보다는 잔소리가 심해서 견디기가 힘들다. 그래도 80까지 살았다. 두 사람이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천국에 와서 두 사람을 베드로가 안내하는데 멋진 집을 안내받는다. 최고의 집이다. 전부 공짜라고 한다. 점심때가 되니 진수성찬이다. 먹으려 하니 아내가 또 잔소리다. 뭐가 건강에 좋고 뭐는 나쁘고 조금 먹으라 한다. 이에 베드로가 병날 걱정 없으니 마음껏 먹으라 말하니 남편이 곤욕의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한다. 마음껏 먹어 일찍 죽어서 올걸 그랬다 한다.
책임감, 분별력 등이 있어야 천국에 오지만 우리는 세상에 너무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천국과 영적인 세계를 잊어버린다.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 세상, 부활의 세상이다.
이것을 본문에서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한다.
내가 보는 것, 경험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분명히 듣고 잡아보았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LA에 가면 케이티박물관에 500년된 그림이 있다. 루베스가 그린 그림이다.
예수님이 서 계신데 도마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 옆구리에 손을 넣으려는 장면이다. 믿는 자가 되어라는 주제의 그림이다.
아인쉬타인 박사의 이야기이다.
과학은 신비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기초는 믿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과학의 기본 정신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신학자 안셀은 믿어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삶의 기본이 지식이다.
그 지식이 온전한 것인가. 잘못된 지식인가. 그 때문에 분별력이 필요하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들어도 지식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 원칙이 있다.
먼저, 내 지식은 버려져야 한다.
새로운 지식 세계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뭇가지가 꽃을 피우고 잎을 내지만 작년의 것이 아니다. 묵은 가지에는 새 순이 나와도 잎과 꽃이 없다. 새로운 가지에서 새로운 꽃과 새로운 잎이 나온다. 어제의 음식이 오늘의 음식과 다르다. 지식을 찾아 나가는 탐구력이다.
둘째, 앞서 가졌던 경험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다 겪어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다시 겪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질 않는다.
세째, 현재를 버려야 한다.
현재는 미래가 다가오기에 미래에 도달할 수 없다. 미래를 거절할 수 없다.안일했던 생각은 후퇴한다.
네째, 자기 주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많은 지식을 추구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의 세계는 신비의 세계이다.
먼저, 생명의 신비이다. 인간의 두뇌로는 생명의 세계를 알 수 없다.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이다.
둘째, 생명의 변화 성장이다. 내가 꽃피운 것이 아니라 물주고 가꾸는 사람은 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세째, 죽음의 신비이다. 멀쩡히 살고 있다가 죽는다, 이것도 신비이다.
네째, 죽은 다음의 부활의 신비이다. 다시 살아나는 신비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우리는 부활절 예배를 드린다.
생명 성장 죽음도 신비이지만 부활도 單回的 신비이다. 삶은 단회적이다. 키볼로스는 죽음을 연구한 죽음의 학자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말한다. 죽음은 또다른 세상의 시작이라 말한다. 부활의 세계는 내일이 있다는 신앙이다.
실증주의자가 있다. 그러나 경험보다도 지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데카르트는 산책을 좋아하는 학자이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한데 뱀이 또아리틀고 있음을 본다. 그 다음날에도 그 뱀이 그대로 있다. 3일되는 날에도 있다. 이에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누가 버린 동아줄이다. 이에 내 눈이 나를 속였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다. 내가 본 것 들은 것만 믿고 살면 문제가 생긴다. 반드시 생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존재의 의미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사색하고 묵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본문의 내용이다.
도마가 경험해본 것만 믿는 것인가. 동료들이 먼저 보았던 것을 도마가 직접 보아야 믿는다고 한다. 그 도마를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만나신다. 우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이다.
현대인들은 합리적인 것만 받아들이려 한다. 새로운 세계를 도전하질 못한다. 지식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이다.
합리적 논리적인 청년이 아가씨를 만나 결혼한다. 보자마자 결혼하겠다 한다. 지식보다, 경험보다도 느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험보다는 들음으로 믿는다. 우리 신앙인의 자세이다.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보고라도 믿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기적을 제시하는 부흥회도 많다. 꿈에라도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믿겠다 한다. 그러나 믿어지는 것 자체가 복이다. 철학자 신학자가 연구하고도 믿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지는 것이 최상의 복이다. 특권이다. 논리적 합리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지만 부활의 확인을 믿는 우리가 복이다.
'말씀 > 조원형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519 자식이 되어라 (0) | 2019.05.22 |
---|---|
190428 은밀한 신앙 (0) | 2019.04.30 |
190414 헌신자의 신앙 (0) | 2019.04.15 |
190407 믿음의 생명력 (0) | 2019.04.07 |
190331 와서 보라 (0) | 201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