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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90331 와서 보라

와서 보라


190331                                       조원형목사님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시쯤 되었더라....

                                                                                                                (요한복음 1:35~46)


비행기가 없던 시절, 당대의 지식인인 에머슨과 카알라일이 같은 배를 타고 유럽 여행을 간다고 뉴스에 나온다.

기자들이 따라 나선다, 그 두명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승선하였다. 어느 때 어디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가 기자들이 궁금하다. 그 다음날도 배에서 생활하면서도 각자 식당에서 각각 앉아 동네 인사를 하고는 식사후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간다. 기자가 물어본다. 두 분이 만나서 대화 나누는걸 기대했는데 언제하는가 물으니 에머슨이 식당에서 밥 먹기 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언제 그런가 했더니 식사전 충분한 목례를 하였다는 것이다. 마음 뿐만 아니라 표정으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충분하다. 그만큼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보다 친숙한 관계를 생각한다.

말이 필요하지만 말 없이도 성숙한 자세, 마음가짐, 소통이 중요하다.


신학자 유엘하우는 불안에 둘러싸인 고독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 말한다.

친구가 있든없든,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가졌든 못가졌든 간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먼저 자기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능하고 무가치한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 나의 무능을 보고 내가 어찌할 수 없음도 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인데 이를 모른다. 어린아이가 자신은 모른다. 단지 엄마만 찾는다. 엄마만 안다. 그래도 충분한 생활을 한다. 우리도 하나님만 알면 된다. 이를 신학자 우엘하우가 말한다. 네 자신을 알라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하나님을 통해서 나를 안다.


어린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어도 4~5살이하의 기억은 없다. 그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를 돌보심을 안다.

성령으로 거듭나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불안 고독하다. 하나님을 알고난 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심을 안다. 사고나 병으로 젊어 줏게 되면 안타깝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게 되면 모든이가 죽으라 한다. 하지만 그 부모는 대신 죗값을 치루고 대신 죽고싶어한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 삶에서 그것을 느낀다.


후안 카를로스 오이치즈의 "제자입니까"에서의 이야기이다.

교인의 문제가 아니라 친척의 문제로 심방오셔서 장례 참석하시기를 부탁한다. 위로예배를 드리니 정작 그 집이 아니라 바로 옆집이라 한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슬픔 고통중에서는 위로받고 싶어 한다. 그 후에 모든이에게 위로예배를 드리며 교회도 부흥되었다고 한다.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하게 되면 교회에 나오는 분이 있다.

그 분은 평소 교회에 나오고 싶어했던 분이다. 진정 감동을 받고 나오는 분은 한순간에 변화하여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삶에 충성해야 할 이유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하여야 한다.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는 장면이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이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했다 하더라도 와서 보라는 것은 말로뿐만이 아니라 와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보아야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시야 그리스도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이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곳으로 떠나라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산 믿음을 체험한다.

디엘 무디가 말씀을 읽다가 모르겠거든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해보라 그러면 알게 된다고 말한다. 순종하는 사람만이 알게 된다.

베드로는 안드레 말을 듣고 따른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본 것을 전하지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한다. 나사렛은 예루살렘과는 멀고 사마리아와 가까우며 사마리아와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다. 그러한 곳에서 메시야가 나올 수 있는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이다. 나다나엘의 지식의 한계이다. 오직 예루살렘만 알았다. 이에 빌립이 와서 보라 한다.


세례 요한이 메시야 예수를 소개한다.

이를 소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고 헤롯왕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다. 헤로디아가 엄마의 지시를 받고 춤을 춘 후 요한의 목을 왕에게 구한다. 요한이 감옥에 있을 때 메시야가 참 메시야인가 의심하여 제자들을 보내어 물어보게 한다. 이에 예수님은 병든 자가 고쳐지고 죽은 자가 살아난다. 이를 보고 그대로 요한에게 전하라 한다. 이에 세례 요한이 이를 믿고 그대로 순교한다.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 이웃이 알 수 있는가.

이 세상 모든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현장의 삶이다.


어떤이가 외국 유학을 갔는데 지나는 길에 누구든지 오면 대접하겠다는 교회의 광고 문구를 본다. 따뜻함을 보고 무신론자인 그 청년이 한 집에 배정받아 먹고 하룻밤을 지낸다. 이를 계기로 하나님을 믿고 목사까지 되었다 한다.


언더우드가 평양에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먼저 예수믿는 이가 있다. 어찌 되었는가 물으니 중국에 장사가서 기독인에게 감명받아 믿게 되었다 한다. 현장에서 예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사신 하나님을 믿으며 산 신앙인으로 살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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