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문제입니다
190317 조원형목사님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누가복음 24:13~27)
역사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부관을 데리고 민정 시찰을 나섰다.
평복을 입고 해가 저물어 여관에서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갑이 없다. 부관 역시 지갑을 챙기질 못했다. 주인에게 사정하여 집에 가서 가져오겠다 하니 주인이 절대로 안된다 한다. 이에 두 사람을 지켜보던 종업원이 보증에 나선다. 그래도 주인이 안된다고 하자 종업원이 월급에서 공제해 달라 한다. 이에 나폴레옹이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여관비와 밥값을 준다. 또한 여관을 판다는 팻말을 보고는 주인에게 물으니 50만 프랑을 받아야 하지만 30만 프랑에 팔겠다 한다. 이에 30만 프랑을 주고 여관을 사서 그 종업원에게 준다. 이 나라 황제를 평히 자게 해준 값이라 한다.
주인이 얼마나 후회했겠는가. 말만 잘 하고 배려하고 선심만 썼으면 보상받았을텐데 젊은 종업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넌센스는 착각이다.
사람이 허풍을 하고 과장을 많이 한다. 또한 약점이 불만 원망 의심하지 않아도 될 때 불만 원망 의삼하여 인생에 손해를 본다. 성경에도 나온다.
창세기의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을 사랑하는데 하루는 아들들이 와서 요셉이 죽었다 한다. 피묻은 옷까지 가져왔는데 13년동안 울면서 세월을 보낸다. 사실 알고 보면 기뻐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일찍 데려가신 것을 선하신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알았다면 감탄했을텐데 야곱 뿐만 아니라 우리도 신앙인이라 하면서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찬송하며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못하고 원망 불평하며 산다.
광야 40년의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이 우리의 생활삶,우리의 이야기이다. 원망 불신의 체질화가 된 우리이다. 불평 불만이 체질화되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나쁜 일에도 시련속에서도 감사해야 하는데 나중에야 깨닫는다. 풀뭇불 속에 일곱번 여덟번을 넣었다 배내어 연장을 만들어가듯 늦게서야 깨닫는다.
막상 모함 오해를 받으면 믿음이 깊으면 감사해야 하는데 변명 원망만 한다. 이번의 연단과 채찍질로 내가 성숙함을 알면서도 분이 안풀리고 원망이 솟구치는 것을 억제하며 사는 우리이다. 죄의 도구로 살던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으로 선의 도구로 살려니까 온전히 쓰여지질 못해서 선의 도구로 쓰여지면서도 회개한다.
본문 말씀은 두 제자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부활 소식도 들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침이다. 예수님이 옆에 함께 가시는데도 알아보질 못한다. 그들에게 하신 책망의 말씀은 선지자들과 구약의 말씀을 더디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불신 원망이 체질화된 두 사람이 우리와 동일하다. 넌센스, 착각이다. 허풍보다는 믿지 못하고 원망 불신 변명 책임을 회피하는 넌센스이다. 19절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모든 것이 능하신 분이 어찌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가. 죽은 사람도 살리신 분이 왜 그런 일을 당하시는가 말한다.
목적을 걸어놓고 집착하여 하나님께 떼를 쓴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 해방시킬 능력자로 믿었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니 그럴 수가 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후에 살리라 말씀하셨는데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기 집착, 불신의 극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현실을 비교하여 반감을 가지고 믿지를 ㅗㅅ한다. 잘못된 기대 심리이다. 꿈은 인간의 희망의 기대치이다. 꿈을 가져라 가르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헤아리고 깨닫고 재능대로 살아야 한다. 꿈으로는 사회 부작용이 생긴다. 달란트대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따르기를, 충성하기를 구해야 한다. 충성 헌신하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데 꿈을 기대하면 허황이다. 내 재능 가능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성해야 한다.
이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는가.
고난의 메시야를 영접하고 깨달았다면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인데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나는 왜 이런가 불평하고 원망한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웠어야 한다. 허황되고 망상된 꿈은 사단이 뿌린 씨앗이다. 내 욕망이 앞선 탓이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지 못한다.
세상의 꿈을 사단이 심어주려 하지만 우리는 실체를 깨달아야 한다. 실존주의이신 역사의 하나님이시다.
누가복음 24:42에서 예수님은 이 성을 떠나지 말라 하신다. 사도행전 1:4에서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라 말씀하신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예루살렘에 머물며 깨달아야 하는데 두 제자는 꿈이 깨어졌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들었다. 확인을 해보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떠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도 고향으로 간다. 내 기대치가 무너지면 교회를 떠난다. 이런 제자들을 예수님이 찾아오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깨닫고 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충성한다.
우리도 이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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