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촉해서 보내신 길
190303 조원형목사님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타고 맢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마가복음 6:45~52)
세계적 칼럼리스트가 쓴 "렘 레모네이드를 만들다"라는 책에서 인터넷으로 상담 요청자가 만여통이다.
글을 읽고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상담 내용을 정리해 보니 핵심이 두려움이다. 심중에 감출 수 없는 두려움, 남들이 볼 때는 행복해 보일지라도 건강한데도 병들지 않을까, 사업이 잘 되는데도 망하지 않을까, 고난을 극복하지 못할까, 이혼당하지 아니할까, 그 핵심이 두려움이다.
보장된 믿음, 자신감이 없고 해결할 길이 없어 상담 요청을 한 것이다.
찰스 테일러 교수의 "현대인들의 불안증"에서 나르시시즘, 이성의 불안 고민 등에서 현대인들은 이성이 지배하기 때문이라 한다.
결국 생각이 많고 생각이 복잡해서 고민한다. 지식 지혜를 많이 가지고 살아도 이성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마음과 이성이 지배하고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이성에만 의존하기에 불안한 시대를 산다. 이성을 지배할만한 심증이 없기 때문이다.
걱정없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그 걱정을 지배할만한 힘이 없다. 무엇엔가 쫒기고 고민하는 것이 사람이다.
하늘의 구름중에서 먹구름이 무게로 느껴지는 꿈이다. 땅을 박살낼만한 먹구름 속에 사탄이 나타나 쫒아오는데 도망가지만 내 목덜미를 잡으려 한다. 그 때 먹구름이 쪼개어지며 햇살이 비치며 사탄이 없어진다. 꿈이다. 감사한 적이 있다. 목사도 불안하고 걱정거리가 시시각각 뒤덮을 때가 있다. 지식 경험을 통해서 해결할 길이 없다. 기도로서 위로받고 해결한다. 온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치료를 기다린다. 은혜 은총을 경험한다.
우리는 이성만 의지하고 두뇌만 의지한다.
이성은 비판 판단이요 미래의 예측을 기능한다. 그런데 이성만 의지하기에 두려움 근심 걱정을 또다른 세계에서 얻어야 한다.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잘 알며 오늘을 산다.
본문 말씀이다.
어부들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이 갈등하며 허우적거린다.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억하지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고민한다.
대풍을 만나 배가 파손될 지경이다. 이 때 예수님을 통해 해결받는다. 고난 풍랑 환난 때에만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형통할 때, 기적이 일어날 때도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인생이 망하는 곳으로 빠질 때도 많다.
제자들이 게네사렛 호수를 건너가기 전에 벳세다 들녘에서 큰 기적을 본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출애굽 시에 만나와 고기가 내려서 살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보잘 것 없는 떡으로 수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것이 이성판단으로는 이젠 세상 삶의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한다. 허황된 망상된 꿈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하기에 예수님은 재촉하여 바다 건너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돌려보내신다. 권세있는 정치적 왕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겸손히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내 위치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허황된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죽을 지경이 되는 것이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이 보내신 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길이라면 형통하여야 하는데 근심걱정없는 일이 없다. 형통한 일이 없다.
기도가 응답받았다면서도 며칠 후엔 낙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하신다면 형통해야 하고 반대하는 이들은 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그 시험과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마다 따라붙는 것은 고난 핍박 어려움이다.스스로 포기할 때가 많다.
예수님이 오셔서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처럼 순풍이 불어야 하는데 풍랑이다.
우리의 삶이 고난이고 그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지식 경험적으로 제자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난이다. 나처럼 나만큼 고난당한 사람이 또 있을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한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조상들로부터도 들어본 적 없는 풍랑을 제자들이 만난다. 연거푸 고난을 당하며 듣도보도 못한 고난이 내 앞에서 일어난다. 찬송 373장의 고요한 바다로 주께서 순풍주시니...이 찬송도 평탄할 때 지은 찬송이 아니다. 고난의 때에 부른 찬송이다. 예수님이 옆에 계셨더라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이 부모없는 가운데서 일이 생기면 두려움이 더 크다.
왜 이런 지경에 당하도록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셨을까.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네가 한번 해봐라 경험시키게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처음엔 고기를 찢어주지만 시간이 흐르며 산짐승을 잡아준다.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하는데 착각하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고민한다. 포기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이럴 때에 이떻게 문제를 해결하나 고민해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찾는 길 밖에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재촉해서 보내신 이유이다. 그 풍랑 시련이 없었다면 오늘만큼의 믿음이 있었을까. 하나님의 은혜요 연단이다. 특별하신 은총이다.
시편 139편 9절에서 네가 새벽 날개를 쳐서 바다 끝에 이를지라도 주께서 붙드심을 고백한다. 평탄한 때가 아닌 고난의 때에 부른 찬양이다.
먹구름이 가득 끼었어도 해는 떠있는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우리의 생명을 거두실 때까지 지켜보신다. 우리가 왜 그 때에 낙담했나, 우리가 난리를 쳤나, 주께서 떡 떼시던 일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둔하여졌기 때문이라 기록한다. 분명히 지켜보시고 구원해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요나의 체질을 알고 니느웨성을 가라해도 도망감을 아시고 큰 고기를 마련하셔서 사용하신다.
이제는 모든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고 하나님을 따르자.
'말씀 > 조원형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317 믿음이 문제입니다 (0) | 2019.03.18 |
---|---|
190310 기도하고 함께 가자 (0) | 2019.03.11 |
190224 충만한 신앙 (0) | 2019.02.24 |
190217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0) | 2019.02.18 |
190127 내 인생이 넘치나이다 (0) | 201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