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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90623 여호와께 속한 전쟁

여호와께 속한 전쟁


190623                                         조원형목사님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 17:41~49)


네들란드 풍차가 유명하다. 정원의 나라로서 튜율립이 유명하다. 2001년도 축구 히딩크 감독의 고향이다.

덧붙이면 프랭크 안네의 집이 있다.

이 집은 3층으로서 3층에 책상 하나가 있고 책상을 밀면 지하 통로가 있고 지하방 하나가 있다. 2차대전 전까지 유대인 가족이 숨어지냈던 곳이다. 답답하고 눅눅한 그 안에서 13살 안네의 일기가 발견되었고 아이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전쟁중의 일기 내용중의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점점 어두운 두려움의 세계가밀려오고 있다'고 기록한다. '그 전쟁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빛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빛이 이 답답한 곳에서 큰 소망이 되고 낙원으로 만들어준다'고 기록한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다가올 여호와의 영광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부모의 가르침으로 안네의 믿음도 연단되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가 쓴 책의 내용중에 전쟁은 악인을 통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는 것이라 증언한다.

악은들에 의해 다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악인이 이기는 것 같지만 교만의 극치에 이르며 망하게 하신다. 맷돌 속의 알곡같이 깨어난다. 인간 역사에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다. 전쟁없는 시대와 전쟁없는 민족이 없고 결국 전쟁의 역사이다. 역사학자의 말이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다.

전쟁은 강한 자의 것이라고 블레셋 장군이 큰소리친다. 다윗의 대답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6.25 사변 비극을 잊어가고 있다. 전쟁의 역사를 기념하지 않고 16개국이란 나라가 와서 전사했는데도 지금은 덮으려 하고 있다. 아픈 전쟁의 역사를 잊어버린 나라는 또 겪게 된다는 역사가들의 말이다.


전쟁만 여호와께 속한 것인가.

사사로운 모든 사건도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목1호인 최동욱목사는 96세인데 대담이 얼마전에 있었다. 우리나라 교회 문제가 예배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본주의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야 하는데 좋으신 하나님, 인본주의로 간 교회로서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를 양육하고 연단시키시는 분으로서  내 삶은 여호와께 속했는데 왜 악인이 번성하고 형통함에 미혹받고 죄를 짓게 만드나. 믿음을 포기치 않고 기다리면 악인을 쓸어버리심을 확인한다.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본다. 은인도 은인이고 나를 괴롭힌 사람도 은인이다. 나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다윗의 증언도 마찬가지이다. 악인이 이기는 것 같아도 여호와의 손이 나를 이끄신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6.25사변때와 동일하다.

그런 가운데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믿고 뛰어나간 다윗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망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여호와를 증언한다. 두손두발 다 빌며 북한에 화해를 신청해도 화해되지 않는다.



전쟁에는 의미가 있다.

먼저, 전쟁을 통해서 악인들을 심판하신다.

악인들이 번영하는 것 같아도 잠언 11:18~19,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아도 여호와의 빛에 무너진다.

2차대전막바지에 일본과 독일이 전쟁을 일으켜도 일본과 독일이 손을 잡고자 일본 수상 동조가 히틀러를 찾아가서 사열한다. 이 때 히틀러가 하나님의 군대만이 무너뜨릴 수 있는 군대라 하니 일본 수상은 하나님의 군대도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얼마 후 원자탄 2개에 무너진다. 2차 대전에서 맷돌로 갈아내어 가루가 되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역사학자는 말한다. 본문에서 블레셋 장군은 하나님도 무시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2차 대전 당시 적국에 첩보원을 보낸다. 12명을 보내면 8명 정도가 살아서 돌아온다. 이들이 영웅 대접을 받는데 의기양양하고 교만하고 강한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면서 결국 자신이 악인이 된다. 사회에 적을을 못하고 술 마시고 행패부린다. 그 중 몇 사람은 자기를 살려준데 감사하며 더욱 겸손해진다.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산다. 전쟁을 겪고 나면 더 악랄해지는 사람과 더 겸손해지는 사람으로 나뉜다. 여호와의 구원이 여기에 있다.


세째, 전쟁은 하나님의 선교적 의미가 담겨있다.

전쟁이 있어서 선교가 된다. 평안하면 선교가 안된다. 9.11사건 이후에 교회가 꽉 찼다. 이라크 전쟁 이후 무슬림 지역에 2천년만에 복음이 들어갔다. 병 가난 고통 실패가 없으면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깨닫는 기회이다.

버저 클랜트는 전쟁을 평가한다. ① 창조적 가치 ② 경험의 가치 ③ 태도적 가치이다.

자신의 태도를 정립하는 것은 고난을 겪으며 세워진다. 천안함 사건을 모른체 하는 대통령도 이해하기는 힘들다.

우리의 태도를 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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