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더하소서
190630 조원형목사님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5~10)
심리학 교수 폴트르니는 "나는 하찮은 존재인가"라는 저서에서 사람의 인격 성장 변화를 말한다.
먼저, 망설임의 단계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쥐고 있는 것을 달라 하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며 망설인다.
둘째, 조금 더 성장하면 소유보다는 나눔에 행복이 있음을 알며 인격이 성장한다. 인격 성장의 중요 과정이다.
세번째는, 초월적 단계이다. 정신 마음 영적 단계이다.
나에게서 누눔으로 인격이 성장하고 초월적 양심 정신적 단계, 신앙적 단계에 이른다. 옳은 일을 행하고도 양심이 허락치 않는 일도 있다.
천재는 위대하다는 말이 있다.
평범한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더 발전하고 천재를 능가한다.
음악 역량에 대해서 음악가에게 묻는다. 하루만 연습안해도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 안하면 평론가가 알고 3일을 연습안하면 청중이 안다고 한다. 하루에 5시간씩 매일 연습한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을 노력한다. 설교도 매일 준비한다.
노력하는 자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즐기는 사람이다. 축구에서도 본다. 네들란드 히딩크가 가르쳤다. 현장에서 즐겨야 한다. 매이지 않고 즐기는 단계이다.
그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다.인격의 완성단계이다. 리빙스턴 선교사가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프리카 선교중에 사자를 만나서 자신이 찢겼어도 나중에 자신은 특권을 누렸다 한다.
사도 바울이 한 말이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서 나는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충성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행복을 얻는다. 만민중에 선택받은 은혜로 행복을 누린다. 훌륭한 사람들가운데서 나는 뭔가 고민하는 것보다도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본문 말씀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민주주의를 말씀하셔야 하는데 노예 제도를 말씀하신다. 논란 거리가 된다.
예화는 악인이든 선인이든지 간에 예를 든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의 믿음의단계를 말씀하신다. 큰 믿음의 단계를 예화로 설명하신 것이다. 죽음의 단계, 십자가의 단계에까지 이르시는 단계이다. 낮아지는 사람, 이를 악물며 어쩔 수 없이 낮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원하여 낮추는 사람이다. 사건 하나만 해결해도 위대하다 하는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말씀의 교훈이다.
자유를 사랑하며 믿음이 이루어진다. 믿음은 선택이다. 성령님께서 선택하셔서 우리가 움직이지만 우리의 정체감, 인식이 믿음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엔 책임의 단계이다.
요즘 정치, 사회가 회피, 은폐이다.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러한 훈련을 받는 신앙인이어야 한다. 내 책임으로 인식하고 책임져야 한다.원망하고 낙담하고 핑계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다음엔 자유를 반납한다. 사랑이 성숙했을 때다.
젊은이가 결혼을 약속했는데 내 권리를 상대에게 넘겨준다.
그 다음엔 자유와 보상을 반납한다. 권리를 반납한다.
은혜받았다고 느낄 때 은혜 가운데서 삶을 느낄 때이다.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은 은혜이다. 내 공로가 커지고 내 존재가 커지면 인격이 축소되고 신앙, 믿음이 죽는다. 죽은 믿음을 산 믿음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씨앗이 땅에 묻힘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 가운데서 새로운 생명이 싹튼다.
요한복음에서 말씀한다.
우리를 종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라 하신다. 우리를 종에서 친구로 격상시키시고 친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다.
본문의 "노예"에 대하여 3가지 의미를 말한다.
먼저, 노예는 소유권이 없다.
노예의 재능, 지식, 가족 모두가 주인 것이다. 생각 마음 인격 몸 자식..모든 것이 주인 것이다.
둘째는, 기계적 인간이다.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공로도 없다. 버리면 버려진다. 키우는 짐승도 병들면 치료하는데 노예는 주인을 발못 만나면 버려진다.
세째, 일상이 없다. 북한 사람이 강제 수용소에서 밤에 잠을 자는데 자는 이유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침의 노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말조차 잊어버린다.
(브라질로 가서 브라질 여인과 결혼하며 한국말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다 큰 성인이어도 대화의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사람이 글도 잊어버리고 남한에 와서 다시 배웠다 한다. 종일 일하고나서도 주인에게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주인이 잠자리에 든 다음에 돌아와서 음식을 먹는다.내일을 위해서이다. 하면서도 스스로 무익한종이라 한다. 그는 강제로 끌려온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과분한 은혜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노예이다. 만세전부터 연단받으며 은혜받았다고 느끼는 신앙인이다.
철학자 만도린에게 물었다.
성공한 사람은 돈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아는 사람이라 한다.
성경 본문의 노예는 나이가 든 사람일 것이다. 세월이 있어야 사람을 만든다. 죽을 때까지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마쓰시타 전기회사를 1918년경에 세우고 15만명의 종업원을 뒀다. 성공한 이유를 물으니 나는 못배운 덕분에 배우려 노력했고 병약한 덕분에 건강하려 노력했다 한다. 실패한 덕분에 성공하게 되었고 망한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한다. 우리나라 인삿말에도 덕분이란 인사말이 있다.
잠언29:21에서 종을 거두면 아들인줄 안다. 도망갈 수도 있고 반항할 수도 있다. 주인이 신뢰하지 않으면 그리할 수 없다. 자유가 주어진 노예이다.
그러한 그가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한다.
낙심할 때든지 마음이 교만해질 때라도 이 말씀을 교과서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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