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인생
190714 조원형목사님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8~17)
1960년대는 혼란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던 때이다.
전쟁 후 사회 대변화중에 군사정권으로 질서가 잡힌다. 군인들을 정신무장시키기 위해 대표를 뽑아 이스라엘에 보낸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정신은 시온 정신에 있다,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하여 부대 내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다. 부대에서 또는 단체에서 주관하여 부대 안에 교회를 세운다. 군부대 교회의 유리창을 담당한 사람이 한국유리의 최태섭장로이다.
북한이 남침하여 UN군이 참여한다.
압록강까지 갔으나 중공군이 나와 1.4후퇴를 한다. 그 때까지 최태섭 장로는 북한에 있었다. 모두 피난하는데 은행을 찾아 진 빚을 갚기 위해서이다. 급급한 때에 피난가려는데 돈을 갚으러 왔다 하니 의아해 한다. 이에 죽기 전에 빚을 갚겠다 하여 갚고 제주까지 피난온다. 군납을 하려니 돈이 없어 담보없는 융자를 신청한다. 내 자신이 담보라 하니 은행에서 대출이 나온다. 찾아갔더니 북한에서 은행 창구에서 돈받던 직원이 제주도 지점장으로 왔다. 이 분이 사업중 유리공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군인들, 사람들, 하나님께 진 빚을 어떻게 갚을까 하여 군부대의 교회 짓는데 헌납한다. 1960~1970년대 유리를 담당했다.
하나님 앞에 사람앞에 정직하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업가 바튼에게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찾아온다.
담보가 없어서 은행 대출을 못받는다. 젊음이 담보라 2천불만 빌려달라 한다. 사업을 구상한 사업서를 보고 청년에게 빌려준다. 10년쯤 지나서 바튼 회사가 부도난다. 문을 닫게 되어 전국에 소문이 퍼진다. 이에 스트로사가 찾아와 7만5천불의 빚을 대신 갚아준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했는데 2천불은 갚았지만 은혜는 갚지 못했다 한다. 이로 인해 바튼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한다.
은혜와 사랑은 돈으로 숫자로만 갚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3종류가 있다.
먼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남에게 신세질 필요없고 신세내어줄 필요 없다. 내가 내 돈 쓴다. 남에게 해끼치는 것 없이 부담 갖지 않는다.
들째는, 채권자형이다.
EBC의 영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인도여행팀을 장애인으로 구성한다. 남자 다리 하나 없고 여자 다리 하나없다. 또 한 사람은 목뒤 골절로 하체를 못쓴다. 팔 하나 없는 사람, 보청기를 껴야만 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 못하는 사람, 여자 흑인중 키가 작은 사람 총 7명이 여행한다. 다리없이 팔이 없어서 도움받아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있는 자가 나를 도와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나에게 빚진 것으로 생각한다. 장애인 중에서도 일반인보다도 출중한 사람이 많지만 자신이 약자로 부족하며 남에게 의지하며 날 도와주기만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원망한다.
세째는 채무자형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5살 이전은 기억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은혜없이는 살 수 없다. 기억치 못하는 것까지도 그 은혜를 감사한다. 은혜받아 갚을 대상이 없다면 다른이에게 갚는다. 그리스도인의 기본 사상이고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 말씀이다.
은혜에 빚지고 긍휼에 빚진 자로서 모든이에게 복음의 빚,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쓰고 있는 편지의 내용이다.
사랑의 빚을 깨닫지 못하면 불평불만이 나온다.
노예 근성과 빚진 자의 마음은 다르다.
노예 근성은 자아가 없다. 사람은 선을 행하더라도 죄가 묻어 나온다. 선을 행하여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많다. 경솔하고 낮아지지 못하고 진심을 다하지 못하고 좋은 일을 한다면서 옆사람이 상처입는다. 이가 바로 율법주의자이다.하늘가고 천국가서라도 낮은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복음에 빚진 자, 사람에게 빚진 자로서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에도 교회를 핍박한 원수를 위해서 아무 소리 안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저들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합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한다.
자식이 사춘기가 되면 나의 잘못에 대한 청구서를 내민다. 자식이 속썩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중엔 사람된다.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스데반집사도 죽였다. 그런 나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빌벡크로의 글이다.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먼저 사회적 단절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교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소통하면 사람과도 소통된다.
둘째는, 비관주의 스트레스이다. 나는 가진게 없고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고 순탄치 않았다...이런데에 매인다. 그러나 사람은 천박한 인생을 살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 살았다. 사랑받고 선택받았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사랑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산 사도 바울처럼 마음 생각을 새기는 진실한 속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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