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표적
200101 조원형목사님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11:29~32)
일년을 결산하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 시간.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탄에게 조롱받고 남루한 옷을 입은 엘리야처럼 내 속사람의 모습은 어떠한가.
눈을 감고 기도한다.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우리 모두를 성결케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975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온 내용이다.
교회를 섬기는 집사 한분이 목사님을 찾아 상담한다. 속이 터져서 죽겠다 푸념하며 말을 하는데 목사님의 대답은 들어주는 것 밖에 없다. 그렇겠군요 그럴 수 있겠군요 하며 3시간이 지났다. 이야기를 들으며 보니 집사님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이에 거꾸로 질문을 한다. 집사님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이에 모르겠습니다 한다. 그럼 목사님은 아십니까 거꾸로 묻기에 저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하시는 일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수없이 많다 한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니시, 여호와 라파, 샬롬, 임마누엘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체험한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격 감동하며 사는 것이다.
안믿는 사람은 기적 구원을 보아도 내 공로로, 부모 이웃 덕으로, 행운 운명이라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은혜 표적 은총임을 안다. 이들이 성도들이다.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왔는가.
어떤 집사님이 교회에 봉사를 하는데 남들보다 먼저 오고 나중에 간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 망한 회사를 구입한다. 그리하여 열심히 하여 얼마 안되어 신제품이 나온다. 인기가 대단하다. 한달이 아니라 한주간한주간이 발전하며 바빠진다. 결국엔 설교 시작하면 교회에 나오고 축도 전에 나갈 정도로 바쁘다. 그런데 IMF가 오니까 도산하여 큰 빚을 진다. 모두가 걱정한다. 성도가 잘 되면 모두가 감사하고 망했다 하니 걱정을 한다. 그런데 목사님을 찾아와서 공장 문을 닫는데 폐업 예배를 드려달라 한다. 여지껏 폐업 예배는 드려본 적이 없다. 이에 세상적으로는 잘 될 때는 신앙이 죽었는데 사업이 망하니 깨어나 신앙이 살아나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에 폐업 예배를 드렸다 한다.
성도는 하나님 하시는 일을 깨닫는 것이다.
머피의 법칙이 아닌 아하의 법칙이다. 여기까지도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감사의 믿음이다. 그런 인생을 산다. 병들어 감사하는 헌금은 몇번 기억이 난다. 큰 은혜이다. 죽어도 감사하다. 죽음을 초월한 부활의 아침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도 부활의 아침을 기대했다.
성경 본문 말씀이다.
마가복음을 연구한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목회하신 것을 보면 3년반이라는 기간이라지만 짜집기하여 모아보니 딱 90일이라 한다. 그렇게 목회하셨다. 목회 현장을 보면 말씀으로 감동시키셨지만 표적과 기적으로도 복음을 전하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메이온"한다.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이 본문 내용이다. 3년을 지속적으로 말씀 전하시며 표적을 행하셨는데 또 표적을 구한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기적은 착각 우연으로 생각한다.
구약의 바로 왕이 하나님이 보냈다는 모세를 무시했으나 모세가 기적을 보여준다.
마술사들도 그 기적을 행한다. 이에 모세를 폄하하는데 점점 그 표적의 강도가 강해진다. 표적을 보며 마로는 마음이 더 강팍해졌다고 기록한다.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영적 눈과 양심이 살았다면 감사한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표적을 더 구하다가 장자까지 잃어버리고 또 군대를 몰고 모세를 뒤쫒다가 나라까지 망하게 된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어떤 기도를 했는가. 우리가 간절히 바랬던 기도는 무엇인가. 기적과 표적을 보며 며칠간은 신앙이 살아나는듯 하다가 결국은 죽는다.
성경 본문의 교훈이다.
이 세대 사람들이 또 표적을 구한다. 이 세대 사람들이란 불신자들이다. 이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 하신다. 요나는 모든 사람들이 안다. 니느웨 사람들을 위해서 요나를 선택하셨고 요나를 희생시키신다. 악인은 잘되고 의인이 고난당한다. 하나님 뜻을 알면 감사하며 순종하는데 세상사를 보면 하나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판 때까지는 악인을 회개하고 구원시키기 위해서 의인을 희생시키신다. 불의한 세대를 위해서 요나처럼 예수님이 이 세대에 왔다는 뜻이다.
어느 책 내용이다.
김익두목사가 전도차 논두렁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걸 본다. 이에 예수 믿으시오 하니 한 청년이 말한다. 이 동네에 지난 밤 천둥번개가 쳐서 마을이 쑫대밭이 되고 동네를 지켜줄 나무까지 부러졌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도하나. 이에 김익두 목사가 말한다. 학교에서도 학생이 잘못하면 선생님이 호통친다. 이 동네를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라 한다. 이에 그 청년이 김익두 목사를 따라 봉사하며 장로가 되었다 한다.
우리는 요나처럼 도망갈 때가 많다. 왜 내가 희생해야 하나. 엘리야를 희생시키신다. 선지자들의 역사가 우리의 생이다.
잘난 형제는 못난 형제를 위하라는 요지이다. 부부 관계도 50대 50이 없다. 마찬가지이다. 더 감싸주라 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우리는 예수님 뒤를 따라간다. 형제간 싸움에도 모자란 사람보다도 마음이 큰 사람이 먼저 사과한다. 한쪽 팔이 아픈 팔을 무시하고 괄시하면 고통이다. 의인을 권고하기 보다는 악인을 권고하여 싸움을 멈추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성도들이 먼저 희생하는 것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감사한다. 세상에서 뛰어난 것은 좋으나 마음만은 단순해야 한다.
예수님은 목자요 우리는 양이다.
몽골 등의 목장을 보면 소규모 약 300마리정도를 키운다. 양은 지능이 떨어지는 짐승이다. 심리학자들은 지능지수가 높고 아는게 많을수록 심리적 불안감이 더 크다 한다. 제일 행복한 사람은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다. 하루종일 웃는 사람이 태평스럽고 살도 잘 찐다. 믿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양처럼 풀밭도 모르고 이리에게 대항도 없고 대비책도 없다. 목자만 바라본다. 믿음은 그렇게 믿어야 한다. 세상에서는 똑똑하고 유능해도 신앙 생활은 목자 바라보듯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목자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맹수들은 지팡이를 무서워한다. 개가 싸움을 하는데 떨어지질 않는다. 눈에 살기스런 붉은 불이 켜졌다. 그런데 몽둥이를 드니 도망간다. 구원의 막대기이다.
고난 역경을 당해도 선을 행하고 낙심치 않고 요나의 표적을 생각하면 이 길을 갈 수 있다. 이것만 생각하면 낙심치 않는다.
요나가 억지로라도 니느웨에 가서 순종하여 전파하니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말씀 > 조원형목사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13 마지막 상(하프타임) (0) | 2020.09.13 |
---|---|
200906 조상의 신앙 (0) | 2020.09.06 |
190929 아브라함의 딸 (0) | 2019.09.30 |
190922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0) | 2019.09.23 |
190915 잡힌 것을 잡으라 (0) | 2019.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