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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200913 마지막 상(하프타임)

마지막 상(하프타임)

 

200913                     조원형목사님

 

(고린도전서 9:19~27)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요사이 사회를 보면 애완동물의 세상에서 애완동물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경제 발전이 왔음을 추측한다. 서울에서는 애완동물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데 노인들은 양로원에 보내지고 거기에서 세상을 마친다. 동물의 천국이다. 사회를 보고 뉴스를 보며 이젠 맹수의 세상이 온게 아닌가 판단한다. 짐승은 마굿간과 마루밑창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동물들이 마루위로 올라오고 안방을 차지하고 권력을 차지하여 세상에 으르렁거린다.

 

여의도 한구석을 지나며 백성들을 향하여 나라에 봉사할 사람들이 맹수가 거품내품고 흰 이빨을 보이고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젊은이들도 그걸 보며 그래야 사는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성전을 내 집보다 더 사랑하고 갈망하고 살고 있는가. 40여년을 교회에서 살아오며 새벽마다 한탄하며 기도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법 안에서 전염병도 예방하면서 교회에 오르내릴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하는데 교회안에서 화재 문제로 소방서에서 와서 하는 말이 교회에서도 화재 예방과 심폐소생술을 가르쳐야 하는데 대면예배는 안된다고만 한다. 지키지 않으면 고발한다고만 말한다.

 

주기도문에서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는다고 세월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이 원망한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빌라도의 판단 미스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면예배를 금지하니 오죽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도록 하셨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형식적인 예배,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솔로몬의 성전이 돌위에 돌이 남지 않도록 하게 된 처지가 된 듯하다. 유대인의 통곡의 벽을 보면 돌 사이사이에 소원을 적은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는데 지금도 속히 교회문이 열려서 함께 예배를 하기위해 기도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당을 오르내리는게 신앙의 표현이고 신앙의 회복이 되기도 하는데 온라인 유튜브 방송예배를 한다. 과연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성도들중 한분이 암에 걸려 소천할 때가 되어 가서 기도후에 일어서는데 넘어질 뻔 했다. 내가 가질 않도록 손가락은 내 바지자락에 얽매어놓은 것이다. 찬양 테이프와 설교 테이프를 틀어놓아도 통증이 있는 것이 직접 대면으로 통증이 적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직접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성전에만 왔다가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데 점점 교회가 멀어진다.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이 아닐까 고민해야 하는데 전염병으로 인해 괜찮다 하며 수련회도 하고 모임도 가져서 더욱 전염병이 퍼지는데 이것조차도 지도자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데 목장의 개들이 양을 지키지 않고 착각하여 침묵하며 좌로 그리고 우로 치우쳐서 방임한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유지해야 할 신앙에 대하여 말씀한다.

정치인과 종교인을 비방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1981년도에 아카데미 수상 영화 "불의 전사"라는 영화가 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한 선수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한다.

영국의 에릭 비들리라는 선수가 100m달리기로 세계에 집중받는다. 그런데 시합이 하필이면 주일날에 있다. 그래서 결국 예배를 드리기 위해 경주를 포기한다.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런데 월요일에 400m 선수가 사정이 있어 그 대신 뛰게 되는데 전문가들도 어렵다고 혹평한다. 그러나 거기서 신기록을 낸다. 그 후에도 16년동안 영광을 얻는다. 나중엔 세상이 칭찬하고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지도자로서 살 수 있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 간다. 그 후 20년동안을 선교하다가 2차대전 당시 일본강제수용소에서 선교하다가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다.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자신은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사람으로서의 각오와 결심으로 일생을 바친다.

험난한 곳에서 40대에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것 같았지만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진정한 신앙인은 무엇인가.

성공하고 돈을 벌고 권력을 갖고 복을 받는 것이 신앙인의 성공인가. 사도 바울의 말은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을 잃으면 실패자요 패배자라 말한다. 우리 삶을 돌이켜보며 안개와 같이 바람과 같이 우리의 생을 살면서 어느 시점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곳 초록리에서는 서산의 지는 해가 아름다운 곳이다.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

이를 보면서 내가 어느 시점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본다.

 

사도 바울은 농부로 비유하고 경기로 비유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고린도교회가 아테네지역에 가까워서 경주의 이야기를 비유로 든다. 경기에 여러 법칙이 있다.

아무리 유능한 실력이 있어도 기본의 생활이 있어야 하는데 '주일은 쉽니다'라는 말보다는 '주일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쉽니다'라고 해야 정상인데 주일이 놀기 위해 쉬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향방없는 자처럼 목적없이 뛰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어야 하는데 허공을 치는 것처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교인들이 되었다. 뚜렷하고 정확한 표적을 보아야 한다. 나는 신앙인이라 뛰는 선수라 하지만  목적이 없다.

대통령이 국민의 말을 안들으니 광화문에 모인다. 광화문에 모여 떠들어도 말을 안들으니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써 올리는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절제이다.

차량을 운전하다보니 젊을 때는 따지고 버텼는데 지금은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횡포자, 무법자로 길을 다니는데 그들이 사고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신앙의 질서를 지키면서 사회의 질서도 지켜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것이 절제이다. 죽으라고 마라톤을 뛰는 것이 아니다. 시간 안배도 필요하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프타임이란 말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삶을 살면서 신앙에 있어 자신을 바라보고 재어보고 방향을 바라보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사도 바울의 말씀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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