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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200209 남당항 새조개쭈꾸미축제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마스크가 필요할거라 미리 짐작하고 사재기해놓은 사람이 돈을 벌었노라 하는건 돈버는데 귀재인 사람이리라 생각합니다.


올 겨울이 따뜻하여 김 양식이 흉년이란건 지난 겨울을 지나며 주위로부터 많은 말을 들었지만 김 가격이 2배 정도로 올랐노라 하는건 이제야 듣습니다. 진작에 알았다 해도 사놓으려 해도 돈이 없고... 솔직히 돈버는덴 문외한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중국으로 가야 할 러시아산 킹크랩이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에 풀리는 바람에 Kg당 7~8만원하던 것이 5만원대 초반으로 30%나 낮은 가격으로 싸게 구입했다는 뉴스도 나옵니다. 여튼 우한 폐렴 때문인지 불경기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 밀리던 서해안고속도로조차도 뻥 뚫렸습니다.


어쩌다보니 시간반 거리를 달려 홍성군 남당항에 도착했습니다. 우한폐렴으로 인하여 평시 차량이 밀리는 2시간이상의 거리를 시간반에 주파할 정도로 차량이 적어 110km/h의 규정속도를 유지하고도 짧은 시간입니다. 넓은 주차장이 대부분 비었고 지난 날의 조개무덤은 안보입니다. 그래도 새조개와 쭈꾸미 축제라 하여 각설이타령의 노래가 구석까지 넓게 퍼집니다.

새조개는 현지에서 먹으면 Kg당 7만5천원, 포장판매는 6만5천원입니다. 작년만 해도 10만원이 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현지 식당에서는 서비스로 피조개회와 가리비회 등등, 멍게, 굴과 석굴찜 등이 푸짐하게 나옵니다. 식당마다 서비스차원이 다릅니다만 단골을 확보하려다 보니 어느 곳이나 대동소이합니다. 올 때마다 지난 날의 방문했던 곳을 찾았으나 여의치 못하여 또다른 식당에서 먹어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왕언니가 보여주는 새조개가 살이 통통하고 샤브샤브를 하니 단맛이 나고 연하여 어린 손주들도 잘 먹습니다. 끓여진 배추의 단맛이 배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개맛이 조개맛이겠지요. 새조개는 보관이 힘들고 먹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고 상하여 버려야 한다는 말도 듣습니다만 안팔린다면 싸게라도 팔아야 할 처지겠지요. 올겨울 날씨가 포근하여 씨알이 작다지만 먹어보니 씨알도 꽤나 괜찮은 편입니다.

우한폐렴이 이곳에서는 크게 영향이 없는듯 마스크한 사람들은 과반을 넘지 못하지만 이동 차량만큼은 확연히 줄어든듯 합니다. 우한폐렴탓도 크지만 경제가 어려워진 탓도 크겠지요. 여튼 이곳에서는 남여의 비율도 대동소이합니다.

각설이 타령하는데서 멀리 떨어져 구경하는데도 쫒아와서 어린 아이에게 엿과 과자를 덥썩 안깁니다. 안 살 수가 없지요. 돈버는덴 적극적이어야 함을 실감합니다.


군밤도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판매합니다. 물론 본거지 포장천막이 있지만 돌아다니며 맛보라 하고 아이에게 안겨주니 또 안살 수가 없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쬐며 식당에서는 쭈꾸미를 Kg당 5~6만원에 판매하는데 작은 보트 크기의 배에서 Kg당 2만5천원에 판매하니 순식간에 팔립니다. 그런데 크기는 좀 작은 편이네요. 식당에 넘기고 남은 작은 쭈꾸미를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짐작합니다만 여성 어르신들이 호들갑에 떨이로 사가십니다.




강제로 안겨진 군밤을 들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바닷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무척 맑은 편입니다.





따스하다 해도 찬 바닷바람에 몸을 녹이는데는 따뜻한 커피 만한게 없습니다.

이왕 들른 김에 건어물도 구입하는데 서울 인근의 도심보다는 저렴한 편입니다.


식당 앞에는 차량들이 그런대로 들어차 있으나 지난 날 꽉 찼던 주차장 공터는 거의 비어있습니다.

상경길에 행담도에도 들렀습니다만 작은인형 하나에 만오천원입니다. 종전에 6개에 2만원이지만 같은 레벨의 인형이라도 퀄리티가 높은 편이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진을 정리해 올리며 "돈없어 라면 국물만 얻어 먹어"라는 황교안 눈물 고백에 "진위논란"이 있다는 인터넷 뉴스를 봅니다.

내 자신은 황교안 대표가 종로구에 출마한 것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결단력이 부족한게 아닌가, 대통령감은 되지 못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 사람입니다만 황교안 대표의 발언에 내 자신이 1~2년 먼저 학창시절을 지낸 것이 아닌가 짐작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기억해 냅니다.


꼰대의 라떼입니다만...

학창시절 당시에는 라면이 시중에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 찌질하게 가난한 집안에서는 사먹기가 여의치 못했습니다. 중3 가을날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졸업하지 못한 친구도 있습니다.


승합차 크기의 버스비가 3원에서 7원으로 오르고 라면이 10원 내지 20원, 30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아련합니다만 조사해보면 다 나오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야 라면 부스러기를 기름에 튀긴 라면땅이 10원, 자야가 20원이었습니다. 배도 불릴겸 어렵게 돈벌어서 주점부리로 무척이나 사먹었습니다. 당시 내 자신이 인문계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 생활을 했었는데 하루 일당이 300원, 한달 월급이 9천원이었던건 분명 기억납니다. 당시 인천의 도로는 인천역, 동인천역, 그리고 제물포역과 주안역이 기관차로 이어져 있었으며 버스비 7원이 아까워서 비오는 날에도 전학년동안 수개역을 걸어서 다녔습니다. 주안역앞의 논바닥은 손바닥만한 붕어가 발자국마다 들어차 있었고 논바닥을 한참 건너서 저수지가 나오고 염전이 펼쳐졌습니다. 기차역변으로는 논바닥 아니면 포도밭, 부천역쪽은 복숭아밭이 이어졌던 시절입니다. 주안역 앞에서 대동연탄 공장이 있었던걸 기억한다면 나와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입니다.


한반에 60명이 조금 넘었는데 13개반이 있었고 도시락은 집에서 가져와서 뜨거웠던 것이 차가와진 후에야 먹는데 뜨거운 라면국물이 끝내주는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식당은 별도로 없었고 작은 매점에 목재 장의자와 식탁을 하나 놓고 언감생심 돈있는 친구들만이 군것질하던 때입니다만 대부분 날들이 비어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경양식집에서 돈가스 하나 먹는 방법도 칼과 포크인건 아는데 왼손인지 오른손으로 해야 하는지 먹는 법이 있을텐데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곳엔 갑부 아니면 꿈도 못꾼 시절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당시 육고기는 국물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먹어야 그나마 풍족히 먹을 수 있고 굽거나 튀기면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또한 라면국물이 따뜻하여 건데기는 따로 모았다가 주문하면 넣어 파는 시대였습니다. 물론 국물도 별도로 팔았지만 내 자신은 한번도 사먹은 때가 없었으니 황교안씨는 사먹었다면 돈있는 사람이었고 얻어먹었다면 어려운 시절에 얻어먹을 정도로 대단히도 교우관계가 좋았던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얻어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꿀꿀이죽을 먹는 친구도 있었는데 친구집에서 얻어먹어보기도 했습니다만 음식에서 담배냄새가 나더군요. 시골에서는 책보를 메고 다니던 시절 도시에 이사와서 책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2020년도에 고3학생이면 내년에 졸업할 횟수가 120회이니 계산하기 쉽고 무척이나 역사가 깊은 학교를 졸업했습니다만 어느 학교인지는 짐작하시겠지요. 당시 인천과 지방은 중고등학교 모두 시험쳐서 입학하였지만 서울만은 뺑뺑이로 바뀌는 시대였습니다. 여튼 황교안 대표는 명문고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셨네요.


기억이 가물하여 중등시절이 혼합되어 기억합니다만 라면 국물을 사먹었던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돈없어서 라면 국물만 얻어 먹었다는 눈물 고백은 상황이 그렇지만은 않지 않나 생각되는 오늘입니다. 분명한 것은 라면 국물을 먹었다면 분명히 당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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