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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그 외 자료

200524 진짜 신앙 가짜 신앙

진짜 신앙 가짜 신앙

 

200524                                  박재덕 목사

 

(사도행전 16:16:25)

....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루디아의 집에서 첫세례를 준다.

빌립보에는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살고 복음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빌립보가 마게도니아의 전도 전초기지가 된다.

 

바울 일행이 전도하며 가다가 점치는 여인을 만났다.

가짜 신앙을 가진 귀신들린 여인이다. 당시 헬레니즘 사상으로 곳곳에 신전이 있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뱀이란 '파이톤'이라 부르는 여인이었다. 군중들은 존귀한 자로 여겼고 신탁하여 점을 치는 여인이다. 모두들 이 여인에게 와서 돈을 주고 점을 쳤다. 그 돈은 그 여인의 주인이 가져갔다.

가짜 신앙은 신에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작은 돈에 있고 자기의 이익에 있다. 그 목적이 자신의 미래와 복에 있다. 

 

바울과 실라 일행이 점치는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신통하여 바울과 실라를 알아본다.

지극히 높은 자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예배하는 자라고 칭송하는데 바울과 실라는 오히려 그 말에 심히 괴로워한다. 바울과 실라의 정확한 신분을 알고 신들린 여인이 말하는데 바울은 왜 괴로워하는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표현한 그 "길"은 원문에는 정관사가 빠져있다. 결국 유일한 길이 아니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란 의미이다. 결국 귀신들린 여인의 말과 자신의 전도하는 예수의 권위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신령한 여인으로 보고 여인의 존재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바울을 드러내는데 하나님을 앞세우는게 아니라 바울 인간을 드러내며 자신을 낮춰야 하는데 바울이 불편하다.

 

그리고, 그 여인의 상황과 행실이 불쌍하다. 자신의 미래를 알기에만 급급하여 현실은 참담하다.

 

결국 가짜 신앙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지만 진짜 신앙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바울이 그여인에게서 귀신을 쫒아낸다.

귀신을 쫒아내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도시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인데 여인의 주인은 자신의 이익이 끊어지니 결국 바울과 실라를 고발한 것이다. 이들은 로마의 치안판사에게 고발한다. 당시 로마 체제에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 일행이라 함은 혼혈인 디모데와 이방인 누가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빌립보에서 로마인이 유대인을 고발한 것이다.

여인에게서 귀신을 쫒아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란을 일으킨 정치범으로 고발한 것이다. 로마인으로서 지킬 수 없는 이상한 관습을 유대인들이 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 때문에 로마의 반역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고발 결과로 실지는 재판도 받지 않고 일제의 사람들이 분노를 일으키고 치안 판사는 재판없이 그대로 매로 대리고 감옥에 가두라 명한다. 당시 3종류의 감옥중에서 중범죄자들을 가두는 깊은 감옥이다. 채찍은 뼈조각 쇠조각을 끝에 붙인 채찍으로 '태장'이라 불리운다.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것을 세번이나 경험한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시민권자로서 착고까지 찼다. 착고는 도망갈 수 없도록 몸에묶은 것으로 경련까지 일으킨다.

 

진짜와 가짜는 평상시 구분할 수 없지만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이익이 끊어지니 변한다. 진짜 신앙은 억울한 가운데서도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한다, 그러니 죄수들이 듣더라 말씀한다. 주의깊게 경청하더라는 뜻이다.

귀신을 쫒아낸 사람들인데 매를 맞고 갇혀서 죽기 직전인데도 착고한 상태로 기도하고 찬양하니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고 다른 죄수들이 주의깊게 들었다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린다. 이에 간수장이 잠에서 깬다. 죄수들이 도망갈 수 있는 상태임을 알고 자결하려 한다. 그 간수장은 퇴역한 군인이었을 것이다. 죄수들이 도망하면 그들의 생명을 물어내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고 한명도 도망가지 않았다. 찬송과 기도 내용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청하였던 죄수들이 지진과 착고 풀림과 옥문이 열림에도 간수들을 제압할 수 있음에도 그대로 있었다.

이에 "선생님이여.(원문에는 주님이여.) 내가 어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간수가 말하니 바울이 대답한다. "내가 주가 아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거짓 신앙은 내 이익과 욕망 때문이다.

진짜 신앙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이에 간수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거기서 세례를 받는다. 신학자 크리스토돔은 씻겨주고 씻김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결국 바울과 실라가 매맞고 감옥에 갔지만 그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간수가 세례받고 죄수들도 주님앞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35절 이후의 상관이 날이 새어 그들을 풀어주고 이 지역을 떠나게 하라 하니 이제서야 바울이 신분을 드러낸다. 재판없이 때리고 나가라 하느냐, 자신은 로마 시민이라 한다. 로마 시민은 모멸감을 느끼는 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법이 있다. 날이 샜다는 것은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의미의 단어를 쓴다. 이에 상관이 두려워한다.

바울이 상소한다면 상관이 처벌받는 것이다. 로마인이기에 재판없이 처벌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매맞기 전에 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까.

유대인으로서 군중의 분노에 자기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로마인으로서 매맞지는 않았겠지만 유대인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는 호기심과 어려움만 겪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으로 매맞고 감옥간 것은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결국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 또 루디아의 집을 건들 수 없고 또 신들린 여인의 주인이 고발했다는 것도 거짓임이 드러난다.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이유이다. 바울이 고난 속에서도 자족하는 이유이다. 바울이 감옥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이익이 있었음을 말할 수 있었다. 초창기 빌립보에 루디아, 귀신들린 여인도, 감옥 간수장과 그 가문, 죄수들 모두가 빌립보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교회의 구성원 자체가 연합할 수 없는 이들이 모이게 되었고 편견이 없었다. 할례 받고 안받고가 아니라 주 예수를 믿음으로 연합한다.

 

내 이익 내 욕망 내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반전의 역사가 일어남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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