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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210124 믿음

믿음

 

210124                        조원형목사님

 

(요한복음 5:41~47)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 흔히 말하는 유언비어도 있고 떠도는 말도 있고 사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있는데 그 말들 중에서도 의미가 깊은 교훈적인 말들이 있다.

2천년대 경제위기 때에 들은 말이 있다. 미국사람 일본사람 한국사람 셋이 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목마른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고 한국사람이 먼저 나선다. 삽과 괭이 등의 여러 연장을 가지고 우물을 파는데 일본 사람도 목이 마른지 우물파러 나온다. 일본 사람은 지형을 관찰하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확인한다. 이후에 미국 사람이 우물파러 나와서는 기계를 가지고 우물을 파서 물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리고 두번째 물이 나온 것이 일본사람이고 한국사람은 파도파도 물이 안나와서 미국사람과 일본사람에게 얻어마시고 말았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전해졌는데 경제적인 비유였다.

 

근간에는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세기적인 어떤 부자 할아버지가 자기나라에만 광고를 내는게 아니라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전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신문, TV등에 광고를 낸다. 광고의 내용이 이러하다. 파란 얼룩말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백만불을 준다고 한다. 그 광고를 보고 독일 사람은 도서관으로 간다. 어디 가면 파란 얼룩말을 찾을 수 있을까 공부한다. 영국 사람은 아프리카로 간다. 아프리카에서 여러가지 기묘한 것들을 많이 얻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은 고물상으로 간다. 옛부터 얼룩말을 사냥했을텐데 파란 얼룩말을 사냥했던 총을 찾는 것이다. 일본 사람은 말 한필을 가져다가 털을 다 뽑고 파란 털을 다시 심는다. 색채와 그림이 발달된 불란스 사람들은 어느 색을 조합하여 만들어야 멋있는 얼룩말이 될까 열정을 낸다. 한국 사람은 모인다. 파란 얼룩말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백만불을 준다고 하니 다른나라 사람들은 얼룩말은 찾거나 만들기 위해서 애를 쓴다는데 우리도 모여서 의논하자. 과연 이 세상에 파란 얼룩말이 있을까 없다 있을거다 그러니 광고를 냈지 내 말이 옳다 며칠을 싸우더니 우리가 얼룩말을 구해 가져간다해도 과연 그 노인이 백만불을 주겠느냐 세상사람에게 광고를 냈으니 줄거다 아니다 이목을 얻기 위한 광고일 뿐이다 의견이 분분하다.

뭘 말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무엇에 미쳐서 오늘을 살고 있나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지식도 있다. 논리도 있다. 흔히 말하는 철학도 있고 법치도 있다. 그런데 싸움만 계속한다. 다툼만 계속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 왜 그런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 기본이 믿음이다. 그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는데 그런데 그 믿음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부모자식간에도 믿음이 없다. 이런 불상사가 오늘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신뢰가 없다. 본인 자신에게도 믿음이 없어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하나님을 못믿고 자기 자신에게도 믿음이 없다. 그래서 갈등과 고민에 우울증이 생기고 자기 목숨을 스스로 져버리는 일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며 학교를 보내고 과외도 시키지만  교육에 있어 남보다 앞장서야 사람됐다 사람노릇한다고 하는데 가르치는데만 열정이었지 가장 기본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질 않았다. 우리 사회에 나라에 국민들에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문제냐 믿음의 문제냐.

 

믿음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르쳐본들 기초가 안된 땅에 집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계적 역사를 통해보면 천재라는 사람들, 머리가 그렇게 좋다는 사람들의 문제가 정신병자가 되고 스스로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병에 걸려서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심병보다도 큰 병은 없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나도 못믿고 세상도 못믿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산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너희들은 너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실제 역사속에서 너희를 인도한 모세도 제대로 믿지 못했잖느냐. 모세를 못믿은 너희가 나를 믿겠느냐. 모세가 나를 증거했다해도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은 모세를 못믿었기 때문이다. 너희의 믿음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를 향해서 지적하신 말씀이다.

자식도 못믿고 부부간에도 못믿고 스승도 못믿고 제자도 못믿고 우리 나라 사람이 뽑혀서 모인 곳 국회도 싸움만 하는 이유이다. 믿음이 없으니 비방만 하고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는 교육자가 있는가.

믿음이 먼저라는 사실을 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하는데, 옛날에 예의범절을 가르친 것은 결국 알고보면 믿음을 지켜가기 위함이었다. 사람간에도 예의범절을 지킨다는 것은 서로에게 신뢰를 지켜가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실종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믿음에 대한 교훈이 있다.

어떤 청년이 랍비를 찾아갔다. 나귀가 필요한데 선생님댁의 나귀를 빌려달라 한다. 랍비의 대답이 우리 집 나귀가 어디론가 가버려서 없으니 빌려줄 수 없다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 랍비의 마굿간에서 나귀 소리가 들린다. 이에 이 청년이 나귀소리가 들리는 마굿간을 쳐다본다. 이에 랍비가 소리를 친다. 너는 너 귀에 들리는 나귀소리를 믿느냐 아니면 나귀가 없다는 나의 말을 믿느냐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다.

그래서 사실이라고 판단을 했는데 그게 잘못된 경우가 많다.  손으로 만지고 현장에서 내가 경험했는데도 그게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럴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믿고보니까 그 말씀이 옳았다. 내 판단이 옳은 줄 알앗는데 나중에 지내고 보니까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걸 교훈하기 위해서 탈무드에서 랍비와 청년의 나귀 얘기를 써놓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끼고 감동하고 감격하고 경험했으면 옳은 것인데 그것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내 눈에는, 내 귀에는 현실 이야기가 옳은 것 같은데 하나님 말씀은 아니라 한다. 이상적인거 같고 못믿을거 같은데 하나님 말씀을 믿고 보니까 나를 부인하고 내 판단을 부인하고 내 이성을 부인하고 내 경험을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고 따라가다 보니까 옳았다는 것이다.그걸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너는 나귀 소리를 믿느냐 랍비 소리를 믿느냐 네 귀의 소리를 믿느냐 그걸 부정시키는 스승의 말을 믿느냐.

우리 믿는 성도들이 오늘을 살면서 시험에 자주 빠지는 것은 내 판단이 옳은 것 같고 하나님 말씀이 틀린 것 같기 때문이다. 성수주일 십일조 순종 이게 모두 내게 손해되는 것 같고 현실적으로 그러하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믿음의 세계로 이끌어가시고 계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바보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미쳤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 아편에 취해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러하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니까 믿는다. 그리고 오늘을 산다. 그 말씀에 순종한다. 

 

오늘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가 회복되는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못믿어서 불행이 왔으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믿는다.

아담과 하와가 귀로 듣기에는, 눈으로 보기에는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먹으면 지혜로와질 것 같은, 하나님같이 될거 같아서 먹었는데 결국 타락하였다.

 

따라서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어야 하는데 너희는 현실을 믿고 산다는 것이다. 내 좁은 판단을 믿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배척하게 되는거다. 오늘 우리를 향하신 말씀이다.

 

오늘 우리의 정치 사회를 놓고보면 서로가 서로를 못믿는다.

국민에게 표를 얻기 위해서 아부는 해도 국민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나라 대통령이면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낮아지고 자신이 죄인이 되더라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헌신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하여 분쟁하고 싸움박질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정치인들 거의가 다 그러하다. 그러하니 우리나라가 바로서질 못한다.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말하지만 행복은 믿음안에 있는거지 지식 경험 경제에 있는게 아니다는 것을 우리는 잘안다. 

 

여기에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있다.

나는 어리석은 죄인이고 하나님앞에 책망받을 죄인이고 허물진 백성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게 사는 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망신살이 뻗쳤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베드로를 찾아오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믿느냐는 말씀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성경의 말씀은 주 예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믿음의 해답은 사랑이다. 사랑의 해답도 믿음이다. 사랑과 믿음을 말로 표현한거지 사랑이 믿음이고 믿음이 사랑이다. 믿음을 떼어놓은 사랑은 거짓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책망하셔야 마땅한데 하시는 말씀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다.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예수님을 믿습니다 대답한다. 이에 내 양을 쳐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다. 베드로가 자신의 신앙도 못지키고 넘어지고 넘어졌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양을 이끌어주고 가르치고 인도하겠는가. 그런데 그 말씀이 맞다.

예수님이 마지막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너는 네 신앙도 못지켰지만 하나님이 네게 오시면 성령님이 오시면 내 양을 치리라 내 양을 위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할만큼 충성된 사람이 될거다 그런 뜻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을 깊히 깨닫지 못한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내 인간됨이 누구보다도 옳아서 믿은거같아도 성령이 내게 임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할 수 없다. 내가 예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증거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할 때 형제들과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자기 죄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회개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한다. 성령께서 임하셔야 통회하고 자복한다. 

 

성경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니까 너희가 모세의 말도 못믿었거늘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신다.

모세는 너희 조상들과 함께 40년을 살며 갖가지 고난도 같이 겪고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는데 그 때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아멘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몇 안된다. 배척한다. 심지어 모세를 때려죽이려까지 했다.

 

얼마나 불신이 가득한 사회였으면 애굽에서 이끌어낸 지도자까지 돌로 때려 죽이려 하나.

믿음이 상실된 시대였다. 예수님 때에도 믿음이 상실되고 나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런 백성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긍휼을 베푸신다. 너희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그러면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임을 믿게 하시고 네 인생도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말씀하신다.

 

오늘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구하여야 한다.

내가 믿어서 손해가 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믿어주는 선물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내가 깨닫고 믿고 순종하며 오늘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세계 은총의 세계가 충만하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했다는 그 해답도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충성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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