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의 진통
210117 조원형목사님
(갈라디아서 4:17~20)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사람이 일생을 돌이켜보게 되면 어렸을 때에는 교육과정을 통해서 성장한다.
부모의 교육, 학교 선생님의 교육, 그 외에 기초적인 교육을 통해서 자라며 성년이 된다. 그 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자신에 대하여 교육가가 되어야 한다. 내 스스로에게 스승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제자된, 자식된 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생을 살다가 마감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어렸을 때 철저하게 대인교육 과정을 통해 자라온 사람이다.
그러다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는 교회에서 목회자로 성도들을 교육시키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신에 대해서 철저한 스승이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들을 목회하고 교육한 스승이며 목회자로서 오늘 성경 본문에서 고백한 내용처럼 성도들을 성도다웁게 하나님의 자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갈라디아교회 성도들만 향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가르칠 때에 이런 심정으로 이런 생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앞으로도 이런 생을 살며 내 일생을 마감하게 될거다 하면서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얘기인가, 먼저 자기자신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고 고백한다.
'나는 나를 쳐서 복종케 했다' 하면서 그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탄식을 한다. 마치 어린아이를 출산하는 여인이 해산의 고통 때문에 소리지르고 신음하는 것처럼 자기자신을 교육시키는데, 자기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는데 얼마나 힘들고 힘들었으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나를 쳐서 복종케 할 수가 없구나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쳐서 복종케 하셔야만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구나 하는 고백을 한다.
여인이 어린아이를 출산할 때 애를 쓰고 힘을 쓰지만 자기 힘에 겨워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소리지르게 되고 어머니를 찾게 되고 몸부림치는 고통을 통하여서 한 생명을 품에 품을 수 있는 것처럼 삶이란 것은, 교육이란 것은,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이렇게 진통스런 일이며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사도바울은 성경을 통해서 고백한다.
오늘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 스스로가 스승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 내 신앙생활에 성공을 거둘 수 없는 존재이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에게 교육받고 성장해서는 스승에게 교육을 받지만 성년이 되어서는 내 스스로 나를 교육시켜야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데, 내가 나를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내 자식을 내가 교육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태인들만큼 교육에 대하여 철저한 민족은 없다고 말한다.
그 결과 유태인들의 인구가 세계인구의 0.2%밖에 안된다는데 세계를 지배하는 뛰어난 사람들은 거의 유태인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아인쉬타인, 심리학자 프로이드, 칼뱅, 빅터 플랭클,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키신저, 스필버그 감독,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이들중에서 유태인이 제일 많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것은 교육 때문이다.
그런데, 유태인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4가지가 있다.
첫째, 쉐마이다.
믿음의 시작은 들음에서부터라고 성경에서 교훈한다. 사도바울도 목회에서 듣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부모가 가르치는 말을 귀담아듣도록 마음에 새기며 듣도록 그렇게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입으로는 네,네 해도 마음으로는 부모의 말을, 스승의 말을 안듣는 경우가 많다. 그게 교육 실패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듣는 교육,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는 교육이 유태인들에게는 철저하게 가르쳤다.
둘째는, 탈릿이라는 과정이다.
큰 솔을 어깨에 두른다. 이것은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솔을 어깨에 두른다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나는 행복한 노예이며 내 살 길은 그것밖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덮어라 나는 순종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세째는, 메필리라는 과정이다.
가느다란 천같은데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넣고 그 말씀을 허리에 두르기도 하고 팔에 감기도 하고 손에 쥐기도 하면서 사람과 대화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을 한다. 매사에 섬세함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우리 생의 삶에 있어서 숨쉬는 것조차 앉고일어서는 것조차도 내 생각조차도 내 마음먹는 것조차도 다 하나님 말씀이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네째는 메주자라는 단계이다.
하나님 말씀을 새겨서 상자안에 넣어둔다. 집에서 나갈 때 상자안에서 꺼내어 읽고 밖에서 들어와서는 상자안에서 꺼내어 또 읽고 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가 내가 오늘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는가 반성의 계기, 다짐의 계기로 삼는다. 집을 나서기 전에 상자의 말씀을 꺼내어 오늘은 말씀대로 살아야지, 귀가하여 오늘 말씀대로 살았는가.
이러한 습관 교육의 결과로 유대인들이 주요한 위치에서 산다.
유태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에 붙이고 사는 생활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돌이켜 본다.
교육으로 많은 말을 통하여 해보려고 하지만 큰 효과가 없다. 이는 기본적인 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아비 게가 옆으로 걸으면서 아가 게에게 교육을 시킨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 게가 똑바로 걸어온다. 알아보니 술에 만취하여 똑바로 걷는다고 한다.
사람에겐 이중적인게 모두에게 있다.
밖에 나가서는 착하고 선하고 바르게 산다. 체면 이목 명예 명분 때문에 의인인척 선하고 바르게사는 척하다가 집에들어와서 폭력적이고 악한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다.
내 자신을 돌이켜보며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의 말씀을 요하네츠로츠 교수가 해석했는데 형상이란 흙으로 모양을 빚는다는 것으로 손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옹기점에서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그 흙이 옹기만들 재료가 못된다. 모래와 돌, 나무뿌리 여러가지 이물질이 섞여있다. 불순물을 골라내고 그 흙을 자꾸 다진다. 발로 밟고 방망이로 친다. 그 흙으로 옹기쟁이가 그릇을 빚어 만든다. 흙덩이같은 인간을 그릇으로 빚듯 교육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 한다.
불순물을 제거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간다.
사랑을 3등분하여 말하는 내용이 있다.
에로스는 육체적 정욕적 사랑이다.
필리아는 정신적 우정적 사랑이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우리 인간은 육신의 몸을 가지고 에로스의 사랑을 가진다.
정신적 사랑인 필리아는 지식 교훈을 통해서 배우고 아가페인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없는 교육은 악마를 교육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칼막스는 하나님을 버리고나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천재가 세계적 공산주의 창시자가 되었다. 하나님없는 교육이 그러하다. 교육에서 힘안드는 교육이 없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고통으로 비유한다. 죽음을 넘나드는 진통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고통중 하나는 새 생명을 얻기 위한 진통이고 또 하나는 삶에서 겪는 역경 고생이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되기까지 내 자신을 쳐서 복종케 하고 자신을 이겨내며 하나님께 바르게 세우기 위한 고통을 겪는다. 내 자녀들에대한 교육도 그러하다.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한 해산의 고통을 너희도 겪어야 한다는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교훈이다.
자녀를 낳는 것만이 해산의 고통이 아니라 자녀를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세우는 과정 또한 해산의 고통이라 말한다.
내 자신에 대하여 내 성숙 과정을 내 스스로 지키고 내 자녀들을 낳을 때처럼 내 자녀들에 대한 교육도 그러한 고통이며 우리는 그러한 과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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