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악을 제하라
201129 조원형목사님
(여호수아 7:6~1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마태복음14장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를 가신다.
그런데 풍랑을 만나고 제자들이 두려워 떠는데 예수님이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고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신다.
또한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우시고 베세다언덕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두려워 떨 때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가신다. 모두가 유령이라 할 때 베드로가 먼저 알아보고 나도 걷겠다하니 그리하라 하는데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풍랑을 보고 무서워 바다로 빠진다. 살려달라 부탁하여 손을 잡고 배위로 올려진다.
성경에는 바다의 이야기가 많은데 거기서 교훈을 얻는다.
예수님의 주기도문에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시며..."라고 나온다. 우리가 시험에 빠진다, 바다에 빠진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감정에 빠지고 욕망에 빠지고 시기와 질투심에 빠지고 시험에 들고 내 신앙에 손해를 본다. 거기에다 주변사람에까지 손해를 끼치는 일을 경험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한 사람이 시험에 빠지고 그 종속들이 이스라엘사람들에게 큰 낭패를 가져다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때 지도자 여호수아가 낙담하여 하나님께 기도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이 실패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시는 것이 본문 내용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인이라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살면서도 자주 감정에 빠지고 욕망에 빠지고 세속에 빠지고 작은 것에 시험이 들어 북적거리고 그러면서도 그게 시험이고 그게 죄이고 잘못된 것인줄 알고 돌이켜서 회개한다면야 구제받고 용서받고 긍휼하신 은혜를 누리게 되며 또 얼마나 감사하겠느냐마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숨기고 숨기는 반복된 죄를 거듭할 때가 많다.
본문에서도 여호수아 분대 중에 지도자인 '아간'만이 시험에 빠졌던 것이 아니고 물위로 걸어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도 풍랑심한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물에 빠진 것처럼 우리도 시험에 빠질 수 있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오늘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시험에 빠졌더라도 곧 회개하고 돌이켜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동화같은 얘기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운전하며 가다가 신호위반을 한다. 아들이 신호위반을 하면 안되잖는가 물으니 아버지의 대답이 다른 사람들도 급하면 다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아들이 중학교때에 집에 오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한다. 엄마를 왜 때려요 하니 남자가 밖에서 술먹고 들어왔다고 잔소리하는데 그 잔소리하는 사람을 누가 그냥 두겠느냐 친구들도 손을 들어 때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컨닝을 하다가 들켜서 벌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말하길 고등학생이 되어서 컨닝하면 되겠느냐 정학까지 맞았으니 어찌하나 하니 아들 대답이 우리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깊히 생각해야 할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잘못된 것을 아들에게 물려줬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얘기이다. 우리도 내가 시험에 빠진 것을 모르고 지내다가 얼마 지난 후 깨닫고 회개할 때도 있지만 몇년 후 계속해서 내 자신이 시험에 빠진 줄도 모르고 자신은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성경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가 인도하는 군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광야에서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고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니까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도 기쁜 나머지 교만하거나 자숙하는 믿음이 약해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여리고성은 몇바퀴 돌고 함성을 질러 함락시켰는데 그 옆에 있는 작은 성중 하나인 아이성은 3천명만 투입하자하는데 결국 패한다. 26명의 사상자가 났고 패전했다면 부상자도 많았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칵 뒤집혔다.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낙담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여호와 하나님앞에 앉았다가 입을 열어 기도한다. 우리를 하나님의 군대로 삼으시고 훈련시키셔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가나안땅을 정복하라 하셔서 그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했습니다 한다.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숨겨진 죄악이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신앙인도 그 이전에 어떠한 죄악이 있었든지간에 성결이 우선이다. 하나님을 주로 믿으며 점점 성화되고 성실하고 거룩해지고 그런 단계를 거치며 마지막 하나님앞에 부름받아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처음 신앙 생활할 때는 성결한 마음으로 변화된 신앙인으로 충성된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며 충성하게 되는데 어느만큼 지난 다음에 내 삶이 형통하게 되고 내 삶에 변화가 오게 되고 부유해지는 그 때가 바로 위험의 시기이다. 시험에 빠지기 쉬운 시기로 되돌아볼 수 있다.
시험에 빠지고 인간 욕망에 빠지고도 착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내 욕심을 채워주시고 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시길 바라는 이상한 방향의 신앙인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참 많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간이 범죄하게 된 이유가 욕망에서부터이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왕의 집을 방문한다. 사울왕이 처음엔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이 커서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왕으로 세우려해도 자격이 없다고 피하여 숨고 다시 그를 찾아서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왕이 되고난 후 왕의 자리에 앉고 모든게 형통하게 되고 자기 의중대로 되어가는 것 같으니까 사울왕의 가슴속에 자신도 모르게 욕망이 꿈틀대고 자란 것이다.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왕에게 명령하시기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얻은 것은 다 불살라버리고 죽여라 하신 것은 왜 그랬을까. 블레셋과의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전쟁이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아이성을 정복하고 가나안땅 족속들을 모두 몰아내고 정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들이신 것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전쟁을 통해서 그 땅 종족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려고 광야에서 40년을 연단시키기까지 했는데 그만 '아간'이란 사람이 시험에 먼저 빠지게 된 것이다.
여리고성 전쟁에서 얻은 재물은 금이든지 짐승이든 사람이든지간에 모든 생명은 죽이고 재물은 불태워 없애라 그걸 취하면 죄에 물드는 것이라 하셨는데 아간이 외투 한벌 은과 금에 시험이 들어서 그걸 감춘다. 그리하여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다는 것이 오늘 성경 본문이다.
아간도 아이성 싸움에 나갈 때에는 여리고성 싸움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수행하는 자로서 전쟁을 하리라 하였지만 가나안 사람이 버리고 간 외투 한벌과 금은을 보고는 잠시 욕심이 나서 감추고 만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패배의 쓴 잔을 마신다는 것이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이다.
아간만이 아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이 시험거리가 될 때가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세속적인 것들이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
탈무드에서 한 청년이 랍비에게 상담한다. 여자만 보면 시험에 들어 견딜 수가 없다 한다. 이에 랍비의 대답이 한번 본건 어쩔 수 없지만 두번다시 뒤돌아보지 말라 한다.
우리 신앙인도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살면서 어려울 때 급급할 때에 여러 시험거리들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고 할 때가 참 많다. 그럴 때 우리는 뿌리칠 줄 알아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본다.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 하시고 먹으면 죽는다 하셨는데 사탄이 와서 그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까하여 먹지말라 하신거라고 미혹하고 유혹한다. 이에 선악과를 보면 죽음의 과일이었던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달콤하고 자기 인생을 복되게 할만한 과일로 뒤바뀌었다. 결국 따먹고 시험에 들게 되는데 우리 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시험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분노하게 해도 하나님 말씀을 번뜩 생각해서 용서하고 이해하자, 포용하자, 나를 시험하는거라고 넘어지지 말자, 겸손하고 더 낮아지자 하여 자신을 다스려야 하는데 감정이 상할 때 스스로 상한 감정을 더 상하게 하기 우해서 나쁜 기억들을 떠올리고 또 감정에 휘둘려서 분노를 표출하고 결국 시험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나 자신 속에 있는 것을 다스리는 것, 내 속의 유혹될만한 것들을 경계하는 것을 말씀으로 교훈삼고 기도하고 말씀을 칼과 방패로 마음속에 담고 우리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2500여년전 철학자 플라톤의 '행복론'에서 다섯가지를 말한다.
첫째, 재산은 어느 정도 있어야 행복한가. 먹고 살만한 것으로 만족하면 행복하다.
둘째는, 외모이다. 재주가 있으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으나 외모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났다는 것보다는 조금 못났더라도 거기에 만족하면 행복하다.
명예도 그러하다. 내 이름 석자만 들어도 유명하고 훌륭하고 잘난 사람으로 알아주길 바라지만 내 주변 사람에게만 인정받으면 그걸로 족한 줄로 안다.
그 다음엔 체력이다. 운동선수들이 매번 이기려고 노력하지만 플라톤의 행복론은 한사람을 씨름에서 이기면 그걸로 만족하라, 두사람까지 이기려 하지 말라고 한다.
그 다음엔 말솜씨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제압할 정도의 말솜씨보다는 내 의사 표현을 할 정도로 만족하면 행복한 것이다.
내가 제일이고 최고라는 욕심을 버리고 적당히 있는 그대로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행복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성경의 교훈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신앙생활이 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아간이 전쟁에서 패했을 때 이미 양심의 가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오히려 자기 죄를 숨기려 한다. 죄의 근성은 처음엔 숨기고 또 숨기다보면 그것을 정당화한다. 나는 이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그 다음엔 정당화한다. 그 다음엔 오히려 자기 죄를 지적하거나 비방하는 사람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공격한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아간의 숨겨놓은 죄를 가리키고 지적하여 벌을 주고 제거하였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간은 죄를 가리기 위해서 여호수아도 비방하고 잘못을 덮기 위해서 악인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도 죄는 숨길 수 없다고 전설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농경사회에서 추운 겨울이 되면 대부분 할일이 없어서 사랑방에 모여 화투를 친다. 그런데 밤중에 한 사람이 소변보러 밖에 나왔는데 사람이 엎드려져 죽어있다. 그리하여 사랑방에 이 사람을 놓고는 지서에 알린다. 지서에서는 날이 밝으면 오겠다 하여 되돌아 다시 사랑방에 와보니 사람이 없어졌다. 추위에 얼어죽었다는 사람을 따뜻한 곳에 놓으니 몸이 녹아 정신이 들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그 밤에 줄행랑을 쳤는데 지서 순경에게 알리고나니 사람이 없어졌기에 지서를 속이게 됨으로 의논결과 수일전 죽은 남자 무덤을 파서 갖다놓고 순경에게 보여주자 한다.
다음날 아침 순경이 와보니 사람귀에 대못이 박혀있어 어찌된 일인가 문책해보니 더이상 속일 수 없어서 사실대로 얘기한다. 원래는 폐병을 앓아 죽었는데 실지는 그 부인이 동네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 것이다. 남편이 폐병에 병수발도 힘들고 빨리 죽기를 상간자와 의논하여 죽인 것인데 당시 폐병을 앓아 죽었다면 너무 무서운 병이라서 염도 제대로 안했다고 한다. 이에 대못을 박아 죽인 살인죄가 무마된건데 사람들이 시신을 다시 캐는 바람에 발각이 된 것이다.
결국 사람의 죄는 감추어둘 수가 없다. 반드시 죄값을 치룬다는 전설적인 얘기들이 참 많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죄를 숨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곧 회개하라는 것이다. 아간이 외투나 금은을 숨길 때에 같이 했던 사람과 신하들과 가족들이 있었을턴데 네가 뭘 아느냐 나쁜 방법으로 모은 것을 이 다음에 좋은 일에 쓰면 되지 않겠는가 하면 계속하여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이 오늘을 살면서 이런 문제를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인으로서 성실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들하는 방법대로 살아가는가. 우리는 성별된 사람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죄를 숨기고 선을 드러내어 자랑한다. 하지만 선은 숨기고 악한 일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사람들과는 반대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오늘에 감사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숨겨진 악을 제하고 가나안 땅을 끝내는 정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선한 방법으로 살아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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