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행복론
201206 조원형목사님
(고린도후서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멘.
행복론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요 주제로 삼았다. 인간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 사는 존재 목적이라 말한다.
인간 삶의 이유, 목적도 행복에 있다고 말한다.
대학교수 한분이 신문에 칼럼을 썼는데 초등학교 관심사가 나이키 신발이었다 말한다.
나이키 신발을 신은 사람은 행복하고 신지 못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엄마한테 졸랐더니 공부를 못하는 놈이라 말한다. 20등을 올린다해도 40등이니 엄마가 사주질 않는다. 당시 한반에 60명 정원이었다. 그래서 중국집에 가서 심부름을 하며 돈을 벌어 나이키 신발을 사려고 하니 집에서 자신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결국 집에서 사주니 그 신발을 신고 자랑하려고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골목길에서 불량배를 만나 두들겨맞고 신발을 빼앗긴다. 그 때 문득 생각난게 러시아의 문호 고글이란 사람이 '외투'라는 글을 썼는데 젊은 청년이 남들이 다입는 외투를 입고 싶은데 외투살 돈이 없다. 그리하여 굶으며 아껴서 외투를 사는데 결국 불량배를 만나 두들겨 맞고 외투를 빼앗긴다. 집에 돌아와서 식음을 전폐하며 병까지 들어 죽고만다. 겨울만 되면 그 청년이 살던 집을 지나가면 '내 외투 내외투' 하는 유령의 소리가 들렸다 한다. 결국 자신도 내 나이키 내 나이키 하면서 울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신발장을 보면 그보다 더 좋은 신발들이 가득 차 있는데도 그 때의 행복감이 없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행복이란 옛날 못가진 사람과 지금의 풍부한 시절의 사람이 느끼는 행복이란 다를 것이란 글을 쓴다.
'행복의 중독자'란 글을 쓴 올리버 버그만 작가는 현대인들은 모두가 행복의 중독자라 행복을 목표로 삼는다 말한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 그걸 얻으면 당시엔 행복해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착각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이 땅에 행복이 있는가 행복을 느끼는건 일시적 증세일 뿐이라 한다. 당시의 순간적 쾌락적 기쁨일 뿐이지 진정한 행복은 없다는 글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의 중독자가 되어 사는 것 뿐이라 말한다.
행복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기준을 4가지로 말한다.
먼저는 동물적인 본능이다.
사람도 동물과 같은 육체로서 무언가 먹고 배부르면 행복하고 추운데 따뜻하면 행복하고 집을 짓고 이를 얻으면 행복하다. 동물도 먹고 마시고 누리며 배부르면 늘어지게 누워 잠을 자면 행복하다.
두번째는 인간적 행복이다.
사람에겐 양심, 도덕적 기준이 있다. 남을 도우며 행복을 얻는다. 양심을 지켰다면서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세번째는 철학적 행복이다.
무엇인가 배웠고 무언인가를 안다는 것에 행복감을 가진다.
네번째는 영적인 행복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전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위안시키지 못했고 감사하지 못했고 생의 삶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고 때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내 마음이 움직이고 내 마음에 희열을 느끼고 거기에서 진정한 인간의 참행복을 발견했다는 것이 어거스틴이 말하는 내용이다.
보통 사람이 가지는 행복의 세계는 환경적인 것이라 한다. 내 환경이 좋아야 하고 내 환경이 바뀌고 처지가 바뀌면 행복할거라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을 보면서 행복을 추구한다. 나는 저사람처럼 살고 싶고 저 사람이 누리는걸 자신도 가지려 한다. 세째는 스스로의 착각이다. 나는 행복하기엔 틀렸다 한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체념한다.
중국의 정이라는 학자는 이 세상의 3가지 불행을 말한다.
첫째는 초년의 성공이라 말한다. 그런데 너무 일찍 성공하여 거만해지고 자만심으로 타락한다.
두번째는 부모 잘만난 것이라 한다. 못된 짓을 해도 누구누구 자식이라 말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인가 부모를 잘만나서 오히려 사람이 망가진다.
세째는 너무 재주가 많아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나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 처지를 이해못하고 그것이 화가 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오늘을 살면서 기뻐하는 깊은 의미 즉 사도 바울의 행복론을 기록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로 살지만 세상 사람으로서는 가정이 없고 자식이 없다. 사명자인 사도로 살면서 교회를 하나 맡아서 존경받으며 살아야 하지만 모르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 다른 사람을 세운다. 즉 목회자로서의 뒷배경이 없다. 요즈음 큰 교회의 교역자들은 큰 목을 세우지만 그런게 없다. 사도로서 예수님이 다메섹상에서 직접 부르셔서 사도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대단한 학력 경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물이 잘나지도 못했다. 키도 작고 인물도 잘생기지 못했다. 몸마저 병들었다. 몸의 가시 즉 안질인지 간질인지 추측할 정도의 병을 가졌다. 다른 사람도 고치고 죽은 사람도 살리지만 본인의 병은 고치질 못했다. 다른건 다 받아들이지만 건강하지 못해서 금식하며 기도하며 세번을 거듭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네 현재, 네 받은 은혜로 족하다 하신다. 그 응답을 받은 이후엔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너무하신 것 아닌가 절망하지만 사도바울은 깨닫고 감사한다. 오늘의 처지와 고난을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이 발견해야할 깊은 진리이다.
어려운 처지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는데 결국은 감사한다. 깨닫고 감사한다.
교회의 헌신자들이 그 노고를 알지만 몇번 봉사하고 나를 알아주니 안알아주니 하는데 사도 바울은 내가 타락하고 죄인인 것을 아는데 내가 죄인중의 괴수인걸 아는데 곤고한 사람으로서 누가 나를 이 사망에서 건져내랴 고백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쓰여진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내 겸손한 신앙을 지키기 위한 가시라 말한다.
어떤 부인이 상담을 하는데 그 딸만 보면 가슴이 무겁고 바윗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사는거 같은데 내 아는 상식으로는 이는 집사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신앙의 지킴이라 말하니 이를 깨닫고 사는데도 힘들다 대답한다. 이것이 실체이다. 가시를 옆에 끼고 산다.
남들보다 더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더 열정적으로 충성하고 교만하여 못된 인간 될까봐 나에게 주신 지킴이라 말한다. 사도 바울의 고백은 모든 시련이 하나님께서 주신 몽학선생이라 말한다. 내 실체를 알게 하심으로 내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말한다.
성 프란체스코의 일화이다.
하루는 그 제자가 꿈에 천국에 갔다. 큰 의자가 비어있어 천사에게 무언가 물으니 네 스승이 앉을 자리라 말하는데 깨어났다. 기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지만 이에 스승을 찾아가서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묻는다. 프란체스코가 스스로 나는 교만하고 무지막지하고 타락한 인간이라 말하니 그 제자는 이를 외식이라 말한다. 이에 프란체스코는 내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셨으면 열배천배만배나 충성했을텐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매일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한다. 그 제자도 이 겸손을 깨닫는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내 구원, 내 평생의 신앙을 위해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감사를 깨닫고 진정한 신앙의 행복을 알면서 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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