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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210103 찾으시는 의인

찾으시는 의인

 

210103                조원형목사님

 

(예레미야 5:1~6)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유목민들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는 이리,  사자 또는 호랑이이다.

어렸을 적 어른에게서 호랑이가 나타나서 짐승도 해치고 사람도 해쳤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오늘 날 우리에게  두려움, 공포의 대상은 무엇인가.

 

시대가 발달하여 산업사회, 도시사회가 되며 공포와 두려움을 제거하여 평안한 세상을 산다고 자처하지만 이 시대의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성경의 경고처럼 전염병, 오염 등으로 세상이 두려움에 떠는 세상을 산다. 두려움을 없애려 노력하는 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재해, 재난도 있지만 이제는 온역까지 나타나서 세상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까. 오늘 성경 본문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그 원인은 죄의 결과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져버린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모독한 결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이며 메세지임을 알고 바른 신앙을 되찾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중국 노나라의 의곳이라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전쟁이 많았던 시대에 제나라에서 노나라를 침공한다. 아무런 대비없어 백성들이 피난길에 나선다. 그러나 훈련된 군대가 성읍을 점령하여 피난민들이 모두 잡혀 문초를 당한다. 제나라 장군이 한사람씩 문초하는데 우리 제나라가 오면 환영을 해야지 왜 도망을 가는가를 묻는다. 의곳이란 여인에게는 피난길이 급하다 하여도 안고 가던 작은 아이는 버리고 손잡고 가는 큰 아이만 데리고 갔는가. 어찌하여 작은 자식이라도 그를 버릴 수가 있는가 묻는 것이다. 이에 의곳이라는 여인의 답변이 안고가던 아이는 내 아이이고 손잡고 가던 아이는 언니 아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의구심이 들어서 재차 묻는다. 네 아이는 마땅히 데려가야 하고 언니 아이는 남의 아이니까 버려도 되는데 어찌 반대되는 행동을 하였는가 하니 의곳이 재차 대답한다. 안고 있던 아이는 내 아이니까 사적인 사랑이고 손잡고 간 언니의 아이는 공적인 아이라서 버릴 수 없었노라 대답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적인 사랑을 더 중히 여기고 공적인 사랑을 져버린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되묻는다. 의곳을 문초하던 장군이 탄복을 한다. 이에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돌아가자! 일개 여인이지만 의로운 사람이 있는 이곳을 어찌 침공할 수 있겠는가." 한다. 역사의 실제 이야기이다.

의로운 여인 하나가 사적인 사랑보다도 공적인 사랑을 더 중히 여기고 살며 실제 행동으로 옮겼기에 한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뿐 아니라 적장과 그 병사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잠언 14장에서 의인은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인은 백성을 욕되게 한다는 말씀이 있다.

사람을 만나보면 외모도 나무랄데가 없고 말 한마디라도 지식과 인품을 가졌다. 잘나서 인정받고 경제력도 있다. 하지만 아쉽고 문제되는 것은 정직함이 없다.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의로움이 없다. 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은 "의"라는 것이다.

사교술과 대인관계가 뛰어나서 믿을만하고 존경할만하고 다 나보다도 나은 사람같지만 살면서 오래 사귀어보면 신뢰성이 안간다는게 문제이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의를 사모하고 공의를 사모하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잘못된 개념의 의를 가지고 산다. 잘못된 기준 때문에 내가 의인인줄 착각하고 내 지인이 바른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 하지만 내가 가진 기준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게 문제이다.

 

개역성경 본문 1절에서 '예루살렘을 왕래하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라' 하신다. '공의를 구하며 진리를 행하는 한사람을 찾으면 멸하고자 한 이 성읍 지파를 용서하리라' 하신다.

 

공산주의라는 사상도 문제가 있지만 민주주의 사상도 실지 문제가 많다.

이론상으로는 민주주의보다도 공산주의가 사람들에게 더 매력을느끼게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다수결인데 부정선거 문제보다도 여론에 휩쓸려 절반이상이 찬성하였지만 후회하는 일들이 많다. 나라뿐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향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만 반대하는이도 많고 異論을 제시하는 사람도 많다.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좀더 기도해 보자 하여 연기하지만 또다시 제시하고 설득하여 교회일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 가야바가 군중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죄인취급해서 십자가에 못 박는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자고 했으니 정당한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무서운 악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런 역사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기독 역사에도 있고 우리 교회에도 있어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가 많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고 다 이루어진 다음에야 주저하고 망설였지만 이게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깨닫는다.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지 못해서 반대하신 분도 있었구나 깨닫는다. 목회 현장에서 수없이 경험한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할 때도 있었다.

내노라 하는 사람들, 의롭다 하는 사람들, 그 시대에 존경받을만한 사람들, 지도자 등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 성읍을 멸하시겠다 하신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심판의 대상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길 예루살렘을 왕래하라 넓은 거리를 다녀보라 하신다. 거기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를 행하는 사람 진리를 행하는 사람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멸하시기로 한 이 성읍을 용서하겠다는 계시의 말씀이다.

 

신년 새해가 되어 왜 내게 복을 안주시나 왜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나 왜 우리중에 있는 코로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가... 그런 마음으로 떼만 쓰고 하나님이 우리만 사랑하고 잘 살길 바라고 우리만 형통하길 선호하고 갈망할게 아니라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우리 성도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소돔 고모라성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듣는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가서 소돔 고모라성이었던 사해를 보면 소금 기둥이 떠다니고 염도가 높아 사람이 누우면 둥둥 뜬다. 그 주변에도 소금기둥이 많다. 어떤 소금기둥이 롯의 아내일까 어떤 것이 심판받은 사람의 가족일까 궁금해 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생각하는데 나도 주변의 소금기둥처럼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한다. 의인 50인에서 40인, 30인, 20인, 10인으로 줄였으나 의인 10인이 없어서 하나님이 멸하러 가신다. 그런데 그 성읍에 사는 롯을 권고하신다. 이 성읍이 불로 심판되니까 빨리 성읍을 떠나라 하신다. 그 가족들이 천사의 권고를 받고 성읍이 심판되기 직전에 도망한다.

그런데 롯은 어떤 사람인가.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고 의로운 사람일까.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을 놓고보면 롯은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구했다.

 

성경의 노아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해서 육체가 되었다는 말씀이 있다. 신앙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기 눈에 좋은대로 세상의 향락에 빠져사는 여자들과 결혼해서 결국 그들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신앙은 다 잊어버리고 육체적인, 본능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한다. 의는 있으나 죄가 더 크다는 것인데 은혜를 입었다는 그 의미는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재하셔서 내 죄를 깨닫고 내 마음에 감화감동을 주시고 돌이키게 하셔야 회개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한다.

노아도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죄인중의 죄인이었는데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 당대에 구원받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소리를 듣고 회개했다. 그리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방주를 짓게 되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유한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똑같이 기도한다. 바리새인은 저 세리와 같지 않고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내고 의롭게 살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없다. 그런데 세리는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자기 죄가 너무 가슴아파서 마음을 조아리며 통회하고 자복했는데 하나님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씀한다.

의인의 길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을 자랑하신 적이 많다.

그런데 다윗이 과연 의로운 사람인가. 죄인중의 죄인 괴수이다. 우리는 다윗의 죄를 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왜 그리도 기뻐하실까.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기다린다. 하인과 종들이 많으니까 아마도 사람도 보냈을 것이다. 편지로라도 권면도 해봤을 것이다. 어디있느니 찾아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되어 돌아온게 아니고 자기 배가 고파서 온 것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성도들이 겪는 고난은 하나님의 권고하심의 시작이다.)

그런데도 돌아왔다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잔치를 베푼다.

 

다윗도 정말로 회개하니 하나님 마음에 맞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친척 고향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갈등한다. 고향에서도 나이들고 노쇠해서 기운도 잃고 살기가 어려운데 타향이라니, 당시 타향에서는 길가다가도 죽이기도 하고 자기 사정을 얘기할 곳도 없다. 많이 갈등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 개인적인 욕망, 개인적인 판단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의롭다, 고집하던걸 회개하고 내 뜻에 따라주었구나 의롭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리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온다. 그들을 의롭다 말씀하신다.

모세도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부르신다. 그를 사용하신다. 모세는 성격도 대단하다. 불같은 사람이다. 많은 실수와 죄를 범했다. 사람도 죽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서도 그렇다. 사람에게만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여지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다. 물때문에 백성이 원성이 높으니 하나님이 지팡이로 반석을 쳐라 그러면 물이 나온다 하시지만 학자들 말에 의하면 모세는 못된 성질이 발동하여 지팡이를 가져와서 반석을 막 두들겼다. 신경질내면서 화를 내면서 두들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를 보시면서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의를 보이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하지 않고 성질내고 하나님을 원망하였기에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네 종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자격을 물려주어라, 그리고 모세는 홀로 백성을 떠나도록 산으로 간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복음을 전하시다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셋만 데리고 변화산상에 가셔서 변화되셨을 때에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거기에 엘리야가 나타났고 모세가 나타났다. 그걸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혼자 그 백성을 떠나서 산으로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세의 시신을 찾지 못해서 묘가 없다.

모세 혼자 산으로 가면서 얼마나 회개했는지 하나님이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노아가 그 시대에 은혜를 입은 것처럼 모세에게 은혜를 입히셔서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존재할 수 있었고 변화산상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새해 첫주일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왔는가.

회개하는 마음, 내 자신의 자존감으로부터 시작하여 경험, 판단, 노고와 수고, 이 모든 것을 나를 부인하는 마음에서 버리고 하나님께 내 뜻대로 산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말씀대로 준행하겠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신앙으로 오늘 다시 시작하는 새 주일 새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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