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든 억새든지간에 가을도 영글었습니다.
머리를 산발한듯한 모습도 보입니다.
산발한 모습이라지만 갈대 중에서도 나름 치열한 삶을 사는 듯 보입니다.
씨를 뿌리는 씨방도 다른 억새나 갈대의 양에 비교할 바 아니게 많습니다만,
인생 삶이 그러하듯이 그래봤자 군집 생태계도 제각각 한자리씩입니다.
난데없이 장끼가 보입니다만 눈을 마주치니 풀숲 속으로 숨어버리네요.
창릉천 하류로 내려가는 중 강매석교를 스쳐지납니다.
십중한둘 라이더들이 지나는 길입니다.
들녘 너머 행주산성이 보입니다.
정오를 지나서 나왔는데도 아직 참게 낚시하는 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온차가 크지만 오늘은 먼지인지 이슬인지 분무가 가득하여도 가을 햇살이 따가운 날씨입니다.
햇살 가득한 저녁 귀가할 때까지도 북한산은 흐릿하게 보입디다.
집 떠나고 남은 빈 둥지도 보이는데,
어쩌면 내 자신도 한여름 철새와 다름없어 보입니다.
행주산성으로 내려오며 강매석교가 있는 방향으로 오다보니 돌다리도 건너야 합니다.
아직 코스모스 밭은 30cm정도의 수준입니다.
바로 인근에는 벌써 씨앗을 맺은 코스모스도 보입니다.
가을이면 국화를 연상하지만 국화와 비스무리 손톱만한 작은 꽃(쑥부쟁이)들도 봅니다.
방화대교입니다.
방화대교 다리밑에서 라이더들이 쉬고 있는 것도 봅니다.
하면서도, 오후1시가 다된 시각인데도 행주산성 수변공원에 있는 전망대에는 아직 아무도 없네요.
행주산성 너머로 보이는 다리는 행주대교입니다.
방화대교 아치형 모양 때문에 연신 사진에 담습니다.
주변을 계속 눈에 담습니다만,
방화대교 밑에 왔어도 주변을 맴돕니다.
올무로 친 참게 그물도 아직 그대로 보입니다.
마포 방향으로 한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마곡대교도 봅니다.
마침 전철이 지나고 있네요.
다리 밑으로 건너편에 방화대교가 보입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쉬어가지만 라이더들이 수시로 다니는 곳입니다.
한강변으로도 나와봅니다만 늪지대여서 진입을 금하네요.
한강변이라는게 늪도 있고 모래밭도 있고 자갈밭도 있답디다.
건너편 하늘공원이 보입니다만 수일전에 올랐었습니다.
평일에는 자전거도 입장이 가능한 곳입니다.
성산대교도 지나고 화양대교까지 내려오니 절두산 성지가 보입니다.
개신교인으로서 들어가보는건 당연하겠지요.
내 거처할 곳도 천주교 성당 바로 옆이라 하니 관심이 더욱 쏠립니다.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순교 사적지로서 1866년 병인박해때 많은 신자들이 여기서 순교하였다는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하자 프랑스 함대가 책임을 묻기 위해 9월과 10월에 조선을 침범하였으며 이에 함대와의 교전 후 천주교 신자들을 이곳 양화진에서 본보기로 처형하였으며 이곳에 순교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는 내용입니다.
김대건 신부와 성 바오로 교황, 마더 테레사 등의 동상이 있고 관광차 들른 교인들이 헌금을 내고 양초를 켜서 추모하고 있는 것도 봅니다.
불교 사찰과 마찬가지의 형태로 헌금을 받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겠지요.
양초를 켠다든가, 마리아상이나 교황, 테레사 수녀 동상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기도하는건 하나님을 향한건가 아님 마리아나 교황, 마더 테레사를 향한건가...어찌되었건 기도 안하는거보단 낫겠지요.
박물관도 돌아봅니다만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어 입구의 절두산 음각글만 사진에 담습니다.
1~2층은 상설 전시로서 대원군 시절의 천주교 박해도 눈에 들어옵니다.
평일인데도 미사가 진행되어 참석할 용모를 갖추지 못하여 바로 옆의 박물관만 돌아보면서 지하에 특별 기획전으로 전시된 지향(intentio)을 보고 3천원짜리 책자를 한권 얻으며 이곳에 헌금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축하와 감사를 전할 때 카드 대신 자그마한 성화(상본像本이라고 하네요)에 축복의 글귀나 성구를 적어 간직하거나 책갈피용으로 쓰는데 그 글귀가 자신의 의향을 나타내거나 지향하는 글귀이기에 기획전 제목을 "志向(intentio)로 정한 듯 합니다.
예를 들어 신부 서품을 기념하며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루가19:31
"이날은 야훼께서 내신 날 다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시편118편 24절
또는 혼인성사, 선종(The Dead of Christian), 학교 졸업 등등..에도 사용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양화진(楊花津)
영혼의 고향 하늘나라로 가는 길목
백년전에 이 땅을 예수께서 지적하신
땅끝으로 믿고
아비의 집을 떠난 젊은 이들이
그 생애를 기꺼이 바치고
주안에서 잠든 곳.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억압속에서
신음하던 이땅의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고
우리들의 가난 우리들의 질병을
함께 지고 가다가
한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은 이들이
그 육신을 묻은 언덕
강물은 세월의 매듭을 풀어
끝없이 흐르는데
이땅의 역사와 개화의 전통은
뭇 형제의 목숨을 이 언덕에 심었으니
그 사랑의 터밭에서 열매 맺은 믿음은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든
사랑의 승리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이땅에 주어야 할것 아낌없이 주어
썩지 아니한 것과 영광스러운 것과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기 위하여
그 몸을 이곳에 심었으니
이곳은 하나님이 만드신 변화산의 정수리
그들은 하나님께 돌려드릴 흙 한줌으로
누어있으나,
남아있는 우리, 영혼의 귀를 열면
하늘나라 사랑의 속삭임이 들리네
비밀한 약속의 말씀이 들리네.
백년전에 말씀으로 맺어진 우리
먼저 가신 그분들의 은혜 우러르고
그 사랑을 기려
일천만성도 삼만교회 우리의 뜻을
하나로 모아
이곳에 집을 세우니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된
감사기도.
이제, 사랑의 반석위에
주께서 머리되신 교회를 여기 세우셨으니
고난 많은 이땅과 슬픔 많은 이 민족으로
주님의 뜻을 속히 이루게 하소서.
복음의 빚, 사랑의 빚을 크게 진 우리
이제 약속된 말씀 위에서 성숙한 믿음을 안고
신자가 군병으로 일어서리니
믿음의 승리를 향한 출발의 나팔소리
크게 울리시리라.
땅끝까지 달려가 그곳에 계신 주님을 뵈오리니
주님 홀로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도 돌아봅니다.
양화진(楊花津)은 "버들 꽃 나루"로 해석이 되네요.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사진 한장으로는 담기 어려워 영상으로 남깁니다.
일부분을 잠깐 보았는데 감리교 선교사 묘도 있어 개신교 선교사도 포함되어 있네요.
요한 웨슬리 회심 268주년 영적대각성운동을 기념한 석비가 2006년도에 세워졌다는 글귀도 봅니다.
그러고보니 북한산 아래에서 이곳 양화진까지 자전거로도 쉬이 올 수 있는 거리인데 2시간정도 소요되었으니 편도 약20~25km정도로 추측됩니다만,
일전에 안식구와 함께 방문한 기억도 있습니다.
다시 되돌아나오면서 1801년에 서소문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이승훈 신자의 동상도 있는데 그 묘는 인천 대공원앞의 거머리산에 안치되어 있는걸 기억해냅니다.
절두산 성지에서 한강 너머로 국회의사당 지붕이 보이네요.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나왔지요.
천주교는 구교이고 개신교는 신교이면서도 같은 그리스도 교회입니다.
개신교에서 믿는 하나님도 천주교에서 믿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입니다.
천주교의 형세가 지금은 불교와 유교 문화가 많이 뒤섞인듯 보이지만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는건 개신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양화진에서 되돌아나오며 귀갓길에 보는 함상공원입니다.
월드컵경기장과 마포구청 사이로 흐르는 홍제천도 지납니다.
다시 고양대덕공원의 용치전망대에서 흐르는 한강의 우편을 봅니다.
용치전망대에서 본 좌편입니다.
정오를 지나서 나왔는데도 해가 지려면 멀었습니다만, 늘 새로운 곳을 찾는다면서도 내 게으름을 되돌아봅니다.
오늘도 어쩌다보니 절두산 성지를 찾은 셈입니다.
가만히 한곳에서 쳐다보는 구경만으로도 레종 데트르라는 위안이 부끄럽습니다만,
하면서도, 안쳐다볼순 없지요. 누구의 싯귀처럼 자세히 보면 예쁩디다.
한줄기 뚝 꺾어서 이 밤에 필사 성경을 다 썼노라 소식전하는 이에게 바치고픈 모양새입니다.
아니, 이제 처음 만나는 이에게라도 드리고픈 마음도 있습니다.
가을 국화류가 아름답고 향기롭습디다.
다시 창릉천으로 오르며 장소를 옮겨서 참게낚시하는 어르신을 봅니다.
낚시하는 그 자체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즐거움이겠지요.
귀가하며 계속 꽃만 쳐다보입디다.
이제 해가 지려 합니다.
귀가하여 뭘 좀 하려 움직이면 시간이 금방 가지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는 말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산위에 초생달이 보이네요.
오늘 내가 지향(志向)하는건 무엇인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편1절 말씀을 좋아하고
"Seize the day, for God's glory."라는 문구도 좋아하지만...
정작 입술만 달싹거리는 죄인이기에 부끄러운 마음만 앞섭니다.
마침, 멀리 화개장터에서 필사성경을 마쳤다는 사진을 보내왔네요.
'복받으리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예수님도 포도주 드셨으니 만나서 필사성경 마친 기념으로 술 한잔 하자 했더니 노아도 먹고 야곱도 먹고 선지자들도 먹었노라는 답변도 나옵니다.
그런데,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도, 우리가 다 함께 부르는 Let Us Sing of His Love 를 배경음악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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