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갈 길을 갑시다
10248 조원형목사님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태복음 11:2~6)
나 자신은 행복한 인생인가. 불행한 인생인가. 아니면 그저그런 인생인가?
또한 왜 그러한지 그 이유를 알고 돌이켜본 적이 있는가?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이란 만족해 하는 삶에 있다"고 말했다.
남이 가진 것을 못가져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소유의 多少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에 따라 행복과 불행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즉 결핍감에서 불행이 오고 만족감에서 행복이 온다고 말한다.
많이 가졌어도 나보다 더가진 사람이 많다. 내가 가진 것은 변변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행이다.
아주 적게 가졌지만 그래도 과분하게 생각한다. 다 못가졌어도 이것 하나만은 가졌으니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 달렸다.
마가복음 12:42에서 아이 하나를 가진 가난한 과부가 성전에 헌금을 한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시고 가장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신다. 구차한 가운데서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렙돈이 생활비 전부이지만, 당장 먹고사는 것이 시급하지만,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은 감상적이거나 충동적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헌금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폴 트루니는 저서 "창조적 고통"에서 이기적인 사람은 소유욕으로 전락하고 소유욕은 그 욕망 자체가 재앙이라고 했다. 부모새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새보다도 못먹은 새끼새가 입을 더 크게 벌리기에 어미새는 골고루 먹일 수가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가진 자의 욕심이 더욱 크다. 대형 마트가 소형 구멍가게를 망하게 한다. 더 못가져서 병인 이기적인 사람과 더 못줘서 고통인 이타적인 사람이 있다. 행복은 이타적인 사람에게 깃든다.
마태복음 26:7~13에서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헌금과 헌신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만이 아니다. 좋은 일을 하고는 욕을 먹지는 말아야 하는데 비난이 쏟아진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행위를 계속한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끝까지 침묵하며 향유를 모두 쏟아붓는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주위의 반응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내게 손해가 오고 비난이 와도 끝까지 행하는 믿음이라야 한다.
세례 요한이 겪어야 했던 갈등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에게도 그 갈등이 온다. 사람의 한계이다.
세례 요한의 뜨거운 열정이 이스라엘 백성을 깨운다. 그러나 인내가 길수록 사람이 지친다. 처음에는 짐을 잘 질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쳐서 꼼짝을 못한다. 마라톤이나 병들었을 때도 결국엔 지친다.
처음 세례 요한의 마음은 열정이었지만,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었지만, 악인이 번창하고 의인은 고통당하는 것을 보며 지쳐간다. 갈등과 낙심이다.
마가복음 1:7에서 뜨거운 열정의 세례 요한은 이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노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을 보며 왜 응답이 없으신가? 무능한 선비로만 보인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낸다.
예수님의 대답은 본대로, 들은대로 그대로 말하라고 하신다.
세례 요한의 현실과 예수님 앞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는 세상에서 세례 요한은 갈등하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병자가 고쳐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가 복음을 받는다.
여기서 세례 요한은 깨닫는다. 악인이 이기는 것으로만 보여지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복음의 역사가 계속된다는것을 제자들로부터 듣고 깨닫고 이에 자기의 길을 계속 간다. 이것이 큰 믿음이다.
한알의 밀알처럼 복음을 전하고 자신은 소멸되어가고 있다. 갈등을 겪지 말라는 말씀이다.
파스칼은 39세에 죽었지만 그 저서는 대단하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사도 바울의 죽음, 그리고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기록했다.
십자가에서 침묵으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상황을 기록했다. 예수님이 고민과 갈등에서 나아가시는 모습을 기록했지만 스데반의 죽음에서는 다르게 화려하게 묘사했다.
화려한 환상의 순교보다도 침묵의 순교가 더욱 값지다.
고민과 갈등은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죽는 사람에게 오는 마지막 고통을 잠재우기 위한 신포도즙조차 거절하신 예수님이시다.
오직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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