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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1023 정말 두려워할 분

정말 두려워할 분

 

11023                                                                                                              조원형목사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오늘을 사는 연세드신 분들의 마음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나이들어 치매, 병들어 자식 고생시킬까  두렵다 하신다. 겁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생활가운데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옛날과 지금을 볼 때 옛날엔 집안의 어른들이 무서웠다. 무섭게 교육을 시켰다는 뜻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모와 조부모를 우습게 안다. 옛날엔 사람노릇 못하고 살까봐 두렵다고 했다. 현재는 돈 못벌까봐, 병들까봐 두렵다 한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윗은 믿음이 충만하고 당대의 용사중의 용사이며 골리앗도 무찌른 사람이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일 고민에 빠진 것은 (시편51:11) 처럼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고백한다.

자신에게 성령을 주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시지 말기를 간구한다.

 

신약의 가룟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초대교회 7집사중의 1인인 니골라..등이 성령을 거두신 대표적 인물이다. 스데반처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 죽은 사람은 얼굴이 평안하고 기뻤다.

내가 하나님을 떠날까, 하나님이 나를 떠나실까 두렵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크게 역사하시고 빛을 주셔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심이 복이다.

 

들포도나무는 잘 살아나가는데 접붙이기 위해서 잘려진 참포도나무가지는 버림받으면 그 형편이 더 나빠져서 죽고만다. 하나님이 떠나실까 두려워 더 기도하고 공경함이 신앙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징벌을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는 죄를 즐기면서 하나님 사랑을 모른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도

불신자는 깨닫지 못한다.

신앙인은 하나님 사랑을 알며 죄의 결과가 사망임을 안다.

 

에스겔 33:1~8의 말씀처럼 신앙인의 주적 개념은 사탄이며 미혹하는 세상이지만 또 다른 나이다. 무책임, 게으름, 교만함이다. 거기에 잠들어가는 백성을 깨우라고 말씀한다.

미국의 어느 교회는 십자가 대신 눈 하나를 크게 그려놓은 곳도 있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부족을 깨운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뜻도 된다. 다른이에게 상처를 줄까 염려한다.

 

핍박자들을 두려워말라. 죽일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까 두려워하라. 죄의 결과는 반드시 심판이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벵겔은 "하나님이 아닌 것은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어느 묘비에는 "하나님외에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용사가 여기 누워있다"고 씌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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