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기쁨
11044 조원형목사님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22~29
대중 앞에서 웅변가가 환영받는 시대가 있었다.
사람들의 감정이 쌓여 있었고 분노가 가시지 않는 전쟁 이후의 시대였다. 1950~1960년대는 대리만족의 시대였다. 영화나 연속극의 주인공이 울기를 잘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공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부의 축척이 일어났다. 영화나 연속극도 열애사건이 인기를 끌었다. 내 만족의 시대가 되었다.
가난한 시대에는 조금만 얻어도 감사하고 나누고 기쁨을 함께 했는데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제는 가정, 사회, 사람이 모인 곳에 갈등, 분쟁이 일어나며 반목, 대립의 시대가 된다.
이전 시대에도 경악하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2000년대가 지나면서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건, 욕망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사자, 호랑이, 깊은 산중의 캄캄한 밤 짐승이 무서웠다. 귀신 이야기에도 처녀귀신이 더 무서웠다.
나이가 들고 시대가 변하고 도시 문화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무서운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고 맹수의 습성이 사람들의 마음가운데로 들어와서는 악해진 사람들이 더 무서워진 시대가 되었다.
귀신 이야기도 공동묘지에나 있었던 것이 우리 사회 가운데로 들어와 우리 영혼에 깊은 상처를 주는 시대가 되었다.
풍족해진 시대에 마음속 도덕과 윤리의 등불이 꺼져 버렸기 때문이다.
분노조차도 과거에는 스스로 삭이고 내적인 신앙의 등불로 잠재웠으나 지금은 맹수처럼 남에게 피해를 주며 표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 굶을 때보다 배부름이 더 행복한 줄 알았으나 지금은 내적인 고통이 더 심해지는 때에 웃음이라는 치료약이 나오게 되었다. 고통과 아픔을 잊기 위해 술, 담배가 아니라 웃음으로 치료하자는 것이 코미디언뿐 아니라 지성인들도 주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연세대 김동길교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 내용도 좋지만 우스개 소리도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박정희대통령이 암살되고 군부가 장악하던 때에 감투라는 걸 자기 머리에 맞게 써야 하는데 너무 커서 안빼앗기려고 푹 눌러써다보니 앞이 보이지 않고 막무가내가 되었다는 표현도 한다. 자신의 옷이 멋진 것도 좋지만 자기 자식에게 멋진 옷을 입혀 보내는 거도 성숙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혼자 입으려다가 망신당한 이가 많다고 말한다.
엔틱이란 오래된 그림이나 그릇류 등을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취미이다. 보는데에서 즐거움과 교훈을 얻는다. 어떤 엔틱은 서민적인 것도 있지만 엄청 비싼 것도 있다. 그릇 하나를 보아도 주인에게 사랑받으며 귀하게 쓰여진다면 그 그릇은 주인에게 감사해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군으로 쓰여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이상의 상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은혜를 다른 이에게 전할 수가 있다면 최상의 신앙인이리라. 이러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쓰여지는 것이 복이다. 내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자식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이 더 기쁘리라.
본문의 말씀에서 요한과 예수님은 30대의 나이이다. 선배인 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감명깊다. 예수님이 요한을 두고 여자가 낳은 자중 제일 큰 자라 표현하셨다.
친동생도 아닌 예수님에 대하여 충성하는 세례 요한의 모습이 귀감이 된다.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모습으로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자신을 고백한다.
아직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지 않았을 때에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석청을 먹고 가죽옷을 입고 광야로 나갔다. 하나님 음성을 듣기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고 몸부림쳤는데 하나님의 응답으로 예수님이 오심에 그 공로를 모두 예수님께 돌림이 본문의 말씀이다.
이러한 감사와 감격이 있기에 세례 요한이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들러리를 배운다.
신랑 들러리와 신부 들러리가 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들러리가 된 것을 기뻐한다.
예수님을 증거할 수있는 기쁨을 세례 요한은 가진다.
이에 예수님이 여자가 낳은 자중 가장 큰 자라는 칭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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