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가 되라
121118 조원형목사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17)
미국 부시대통령이 파월국무장관을 임명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파월은 어릴 적 가난하여 알바이트를 했는데 땅을 파는 일을 했다. 도랑을 파며 유독 불평하는 이를 보고 또 감사하는 이도 보며 그마음에 남았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도랑파는 일에 두 사람을 만났다. 불평하는 이는 계속 도랑을 팠는데 감사하는 이는 화물차를 운전했다. 또 그 후에 다시 보니 불평자는 몸이 아파서 그만두었고 감사하던 이는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범사에 감사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불평하면 불평의 열매가 거두어지고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한 일만 거두어지는 축복의 인생이 된다.
인생은 농사짓는 것처럼 입술로 씨를 뿌리고 거둔다.
데이비드 소로 목사는 저서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썼다.
감옥은 죄짓고 벌을 받는 곳으로서 자유가 없다. 감독자가 있어 시간에 맞추어 자고 깨며 일한다. 끌려다니며 고된 하루를 산다. 격리된 곳에서 답답함을 겪는다.
몸의 자세, 눈 시선조차 간섭받을 때도 있다.
수도원은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발적 신앙 훈련이지만 고생이 시작된다. 예배, 기도, 찬양을 신앙 역량에 따라 하지만 하루종일 기도하고 묵상, 찬양하는 생활이 힘들다. 고된 일이다. 수도원에도 감옥같은 곳이 있는데 규칙을 어겼거나 실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치룬다. 시간의 제한도 받으며 기상, 취침도 자유롭지 못한 기계적 생활이다.
감옥은 죄값을 치루지만 억지이고, 수도원은 자발적이며 감사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신앙역량에 따라 감옥이 자신의 신앙 수련을 하는 수도원이 되고 수도원이 감옥으로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목회 말년에 감옥생활에서 감옥이 수련장이 되었다. 수도자로 살았다.
우리가 사는 곳이 감옥이요 지옥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이 내재하시고 고통중에 나오는 찬양이 수련이 되고 훈련이 된다.
요셉이 그러했고 다니엘이 그러했다. 결국엔 애굽의 총리가 되고 바벨론의 총리로 복직된다.
성령의열매는 감사이고 성령의 은사가 믿음 소망 사랑이며 감사이다.
행복해야 할 곳에서 불평하는 이가 하갈이다. 은혜를 입어 아브라함의 아들을 잉태하였으니 감사해야 하지만 불평원망한다. 결국에 쫒겨난다.
고멜이란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짓밟히는 여인에게 선지자 호세아가 포용하지만 다시 뛰쳐나가 또 불평한다.
본문 말씀은 "감사하라"는 명령이다.
감옥에서 쓴 편지 내용이다.
오늘은 1년중에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이다. 감사가 평생의 계명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바깥에서 돌아온 자식의 몸을 씻기고 새옷을 입히듯 하나님께서 부활의 몸으로 되살리신다. 썩어 문들어질 몸, 병들고 배고픈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팔과 다리도 온전하게 부활한다. 영혼 부활만이 아니라 이 육신의 몸이 부활의 몸으로 거듭난다.
고통, 병중에서도 감사하자.
이제는 길러주고 먹여준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나에게 뭐 해준게 있느냐는 자식이 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회, 직장, 사회 생활에서도 늘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양결핍증이다.
눈은 크고 배는 볼록하지만 몸은 바싹 말랐다. 영적인 병이 든 사람이다.
에베소교회는 믿음을, 고린도교회는 사랑을, 골로새교회는 감사를 가르쳤다.
칼빈은 교만한 자에게 진리를 가르침은 당나귀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겸손한 자에게 감사함이 나온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감사한다. 구약 시대는 규율로 묶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완성시킨다.
사도 바울은 나를 쳐서 복종케 한다고 말한다. 내적인 계명이다.
감사해야 할 줄 알지만 힘이 들면 불평이 나온다. 그러나 의식적인 감사를 계명으로 삼아야 한다.
영국의 윌리엄 로가슨은 저서 "엄숙한 소명"에서 성자에 대한 해명이 나온다.
오랜 기간 기도하거나 헌금을 많이 하거나 생활을 이기는 자, 공의와 진리에 몸바친 자가 아니라 성자는 감사하는 사람이다.
어린 아들이 "왜 때려요" 반항하기 전에 "내가 잘못했어요"말하는 자식으로 가르치자.
불신자인 40대 여인이 말기암으로 그 통증에 악을 쓴다.
위로차 찬송을 부르니 잠이 든다. 자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 나가려 하니 손가락을 바지 가랑이에 넣어 걸려 넘어졌다. 테이프를 틀어줘도 안된다. 찬송만이 통증을 가라앉혔다. 찬송이 최고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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