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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21209 우리 주

우리 주

121209                                                                                                     조원형목사님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느니라.

                                                                                                              (빌립보서 2:9_11)

 

우리는 21세기를 산다.

2세기경 교구 터툴리안은 기독교인을 작은 물고기라 말한다. 작은 물고기를 죽이는 방법은 물에서 건져내는 것이라 한다.

기독교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속에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신앙인은 세례를 통하여,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통하여 기독인의 일원이 된다. 신앙인이 죽는다는 것은 세례받는 그 때의 심령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즉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쿼바디스" 영화가 있다.

예수믿는 자를 핍박할 때 예루살렘의 11제자들과 120문도들에 대한 핍박이 자행되었다. 사도 베드로라도 살아남아야 계속 전도할 수 있으니 예루살렘에서 피하여 숨어 있어라 하니 예루살렘을 피하여 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막아 서신다. '어디로 가십니까?' 물으니 '나는 네가 버리고 가는 양들을 위해 죽으려고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씀하신다. 이에 베드로가 다시 돌아선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다가 붙잡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베드로는 '나는  더더욱 죄인이니 거꾸로 못박아 달라' 한다는 영화이다.

예수믿는 자가 핍박과 감시를 피하여 다닐 때 주위 사람이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당시 믿는 자들의 암호가 물고기 모양이었다. 물고기를 헬라어로는 '익서스'라 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뜻도 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통용어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한다.

"우리" 즉 기독교는 한사람 한사람의 구원에만 관심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나 하나의 구원으로 속세를 떠난다. 기독교인은 "우리"라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다. 기독교인은 내가 먼저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먼저이다. 내가 있고 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기에 부모님이 있고 그 다음에 내가 있다. 신앙고백에서 "나는 전능하신..."의 "나"는 원래 "우리"라는 뜻으로서 나중에 "우리 주 예수.."로 표현한다.

 

캐나다 작가인 누시모드 몽고메리는 부모를 잃고 엄격한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평소 꿈꾸던 내용을 글로 썼다. "빨간머리 앤"이다.

캐나다 동쪽 섬마을 게이브루스집안의 두 남매가 결혼도 못하고 나이들었다. 고아원에서 남자 아이를 데려 오자고 하였으나 여자 아이가 왔다.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귀엽게 군다. 아이가 이름을 "게이브"로 써달라 하니 집안식구로 인정한다. 구박하지만 고아원에서 이젠 한집안의 일원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자란다. 학교에서도 사랑받는다. 자기 집안의 남자는 죽고 여자는 살아남았는데 앤은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고 여인을 돌보기 위해 남는다는 내용이다.

공동체 일원이 된 것을 기뻐하며 섬긴다는 주된 내용이다.

하나님의 집안에 공동체 일원이 된 것은 은혜요 감격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한 감사이다.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허물이 보이니까 멀리서 보라고 하는 것이 他종교이다.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라다녀보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신앙고백은 사도들의 체험고백서이다.

예수님의 친동생들도 성령에 의해 태어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순교까지 한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40일간 세상에 보이시면서 모든 사람이 모두 본다. 우리 모두가 신앙 생활하면서 동일한 고백을 한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일원, 큰 감동이요 큰 감격이 된다.

"主"하는 고백은 헬라어로 "휘리오스"라고 하며 노예가 주인을 부를 때, 백성이 왕을 부를 때 사용한다.

절대 충성을 다짐하는 호칭이다.  바로 한 분 하나님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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