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의 신앙
130929 조원형목사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사도행전 9:36~43)
알렉산더 대왕은 존경받는 왕이었다.
헬라의 왕으로서 인품과 큰 꿈때문에 존경받았다. 어릴 때부터 큰 꿈은 동서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었다. 싸움을 근절시키기 위한 동서 화합을 위해 헬라를 떠난다.
왕의 창고를 신하와 장군들에게 나누어 준다. 하지만 신하들이 반대한다. 이에 내게는 창고보다 더 큰 보물이 있다고 말한다. 큰 보물 창고가 어디 있는가 물으니 큰 꿈이 내 보물이라 대답한다. 이에 신하와 부하들이 충성하여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기원전 663년에 제나라 명재상 관중과 장군 습궁이 고죽국이라는 나라를 징벌하러 나간다.
봄에 시작하였으나 겨울까지 이어졌다.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지라 지리에 익숙치 않아 길을 잃는다. 이에 관중이 늙은 말은 지혜가 있다는 옛말을 하며 늙은 말을 풀어놓으니 길을 찾는다. 그리하여 전쟁에서 승리한다. 한편 한 지역의 물이 없는 곳에 도달하여 습궁이 하는 말이 개미는 겨울엔 북쪽, 여름엔 남쪽에 살고 개미집에 1인치높게 집을 지으니 7자를 개미집 부근에 파자고 하여 물을 낸다.
대장수요 명재상은 유명인의 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늙은 말, 미물인 곤충에게서도 배운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의인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지만 악인을 통해서도 배운다. 미련하고 교만한 자는 남들이 나를 보고 배우는데 정작 자신은 배우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4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자기중심적 사람이다. 매사에 반항하고 불평적인 사람이다. 남은 커녕 가족도 생각할 줄 모른다. 주변에 고통을 주는 사람이다.
둘째는 예스맨이다. 자기는 없다. 평생을 살면서 목적을 이룰 수 없거니와 보람도 없다.
세째는 실리주의, 이득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부모 형제 부부간에도 돈계산을 한다.
네째는 신앙적인 사람이다. 신앙인의 인격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제후 맹손이 사냥을 나가 새끼 사슴을 잡는다. 이에 가신 진습하에게 사슴요리를 부탁하며 사냥을 계속한다.
가신이 새끼 사슴을 가지고 가는데 어미 사슴이 울며 계속 따라오기에 새끼 사슴을 내어준다. 이후에 왕이 사슴고기를 가져오라 하니 사실대로 말한다. 왕이 화를 내며 가신을 내쫒는다. 3개월쯤 지나 가신 진습하를 다시 부른다. 자기 아들의 선생으로 삼는다. 이에 3개월 전에는 내쫒더니 어찌하여 아들의 스승으로 삼는가 하니 짐승의 모정도 헤아리니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한다.
신앙인의 인격에 가득 채운 것은 사랑이다.
본문 말씀은 이름처럼, 직분처럼 산 사람을 말씀한다.
히브리어로는 도르가, 희랍어로는 다비다라 한다. 동양에서는 낳아놓고 이름을 지으며 이름처럼 살라고 교육시킨다. 그대로 살기 힘들지만 다비다는 이름처럼 살았다. 암사슴이란 뜻이다. 당시 암사슴이란 귀엽고 남편을 잘 따르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며 잠언 5:19의 말씀처럼 여성 직분의 대명사이다. 잠언 32:10~31에서는 현숙한 여인으로서 현숙하고 부지런하며 집안 일뿐 아니라 재산을 늘리는 등 밖의 일도 감당한다. 남편을 사회 지도자의 자리에 앉도록 한다.
고넬료를 군인으로서 남자로서의 모범으로 생각한다면 다비다는 교회를 어머니처럼 성도들을 잘 돌보고 양육한다.
건강하고 돈이 있어야만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도 아니다.
다비다가 헌신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은 평소 건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구제하는 것도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중국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기진하여 쓰러졌다. 권력자가 가다가 보고 음식을 먹이는데 반만 먹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굶는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 하니 이에 데려다가 가신으로 썼다.
마태복음 14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만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어린아이가 내놓는다. 그 사람들중 음식을 가지고도 감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내놓은 이유가 풍족해서만이 아니다.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에 자주 머물렀다. 이 나사로의 건강은 평소에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죽기까지 충성했다.
이 다비다도 죽기까지 충성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베드로의 소식을 듣고 급히 초청한다. 다비다의 교우들의 증언으로 이에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려낸다. 다비다 선교회가 지금도 있다.
하나님앞에 부름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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