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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41228 하나님을 보는 사람

하나님을 보는 사람

 

141228                                                                                                           조원형목사님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편 8:1~9)

 

시골 파리 3마리가 상경하여 서울역에 내렸다. 하나는 음식점, 하나는 불빛이 휘황찬란한 곳, 또 하나는 부잣동네로 가면서 내년 이맘때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 했는데 다시 1년후 모여보니 음식점으로 간 파리는 쇠파리가 되어 요리사 자격증까지 받았다. 빛이 요란한 곳으로 간 파리는 친구만나는 자리에 빨간 루즈를 진하게 칠한 입술로서 춤꾼이 되어 왔고 부잣동네로 갔던 파리는 돈독이 올라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하여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지난 일년간 무엇을 했는가.

 

토마스 학스레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했다.

사람의 생식 본능은 짐승의 암컷수컷 생리현상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동물 세계를 관찰 연구하여 진화론의 정당성을 만든다. 인간은 동물이 진화하여 세상에 존재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말할 것 없다. 따라서 더이상 진전이 없다. 칼 마르크스도 다윈의 영향을 받아 진화론 사상에서 동물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공산주의 생존경쟁, 약육강식을 만들었다. 결국 세상 종족 이웃 자신까지도 망쳤다.

공산주의가 제일 먼저 가르친 것이 진화론이다. 작은 아메바가 생기고 물고기가 되고 동물이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조상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에 불과하다. 두번째는, 사회 발전사를 가르친다. 약육강식중의 사회성으로 할아버지가 동무이고 자식도 동무이다.세번째는 볼세비키 黨史를 가르친다. 테러, 폭동을 혁명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의 교육도 창조론보다는 진화론만을 가르친다. 사람이 동물과 같다.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지 못한다. 옛날엔 하늘 天, 하나님을 가르치고 사람의도리를 가르쳤는데 지금은 동물학설만 가르친다. 교회에선 창조론, 학교에선 진화론을 가르치는데 어떡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학교에선 학설,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교회의 창조론은 믿음으로 받아들여라 말한다.

서구에서 메리 크리스마스의 명칭을 Happy Holiday로 바꾸려고 한다. 편파적 종교탓으로 기독교의 색채를 없애라는 것이다. 12월 25일을 노는 것은 받아들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자욱은 망각하자는 이야기이다.

 

성경 본문의 3가지 교훈이 있다.

 

먼저,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아야 한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하늘을 보고 나를 보니 감사와 찬양뿐이다. 원망 불평 두려움을 바라보면 자신도 그렇게 변한다.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은혜를 감사해 한다. 양을 치고 있는 목동이 시편 본문의 記者이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 배경으로 잘도 나가고 출세하는데 나는 목동에 불과하다. 목동으로서 이리 도적을 생각하면 분노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양을 보며 감사와 찬양으로 바뀐다.

헬렌 켈러는 실명하고 장님으로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모른다는 고백을 한다.

추측이지만 본문의 시편 기자 다윗의 생각은 이러하리라. 형님들은 선지자 사무엘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런 자리에 있는데 자신은 부모 형님들의 양까지 돌보고 있다. 두려움과 불평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크게 생각하며 감사하며 찬양한다. 우리는 일년간 낙담할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보며 은혜를 보며 감사해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한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본문 4절말씀으로 인자가 무엇이관대 내가 무엇이관대 나는 흙덩이에 불과한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감사감읍하며 살아간다. 내게 과분한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이다. 성 안토니오는 3년동안 동일한 기도 제목으로 기도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또 나는 누구입니까. 무엇때문에 나를   사랑하십니까 감사해 한다. 너무나 은혜롭고 은혜롭다.

 

둘째는 하나님을 보면서 대자연을 본다.

우주를 보며 영광스럽기 그지없는 세상을 본다.  하나님앞에 입은 은혜를 본다. 우주 과학의 세계를 본다.

아인쉬타인은 과학 연구자는 3가지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겸손과 정직해야 한다. 오만하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둘째는 행복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천체의 별들이 자신의 궤도를 돌며 그 질서를 보니 신비롭기 그지없다. 세째는 여유를 가지고 보아야 한다. 보다말다 연구하다말다 하는 것은 게으름이다. 깊히 생각하고 깊히 살펴보며 여유를 가져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카네기 이야기이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과일가게를 갔더니 앵두같은 열매를 한웅큼 가져가라 하는데 주춤한다. 주인 아저씨가 한웅큼 쥐어주니 두손으로 받는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내 손은 작아서라고 대답한다. 내 생각 내 판단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 깊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나를 보아야 한다.

 

세째는 내 사명을 알게 되더라는 것이다.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 옛날 어른들은 바쁘니 어렸을 때 소를 몰고 들판으로 많이 나가서 풀을 먹였다. 덩치가 수배나 큰 소가 작은 아이의 손을 다른다. 소등을 긁어주면 감사의 표시로 소꼬리를 흔든다. 소를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린다. 순종하는 짐승은 가축이 되고 반항하는 짐승은 맹수가 된 듯 하다. 낙담하고 짜증만 내는 것은 없이하고 이제 하늘의 하나님을 보며 사랑입은 자로 은혜입은 자로서 새해를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