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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150411 서오릉

올해는 이상 기온현상 탓인지 꽃게와 쭈꾸미가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개체수가 적어 비싼 편이라네요. 마침 벚꽃과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도 동시다발적으로 피어납니다.

여의도 벚꽃축제나 인천대공원 벚꽃축제, 부천 원미산 진달래축제도 함께 벌어집니다. 아마도 이번 주말이 수도권에서는 꽃 축제가 절정이리라 짐작됩니다.

괴산에서 훈련 일정을 마치고 대전에서 교육중 첫외박을 얻어 올라오는 이와 또 오전 직장일을 마친 이가 약속 시간을 정하여 만나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반가운 모임을 갖습니다. 훈련 군복은 미리 준비한 사복으로 뒷칸에서 갈아입었고 고양시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식사후 휴식을 즐깁니다.

음식점 인근의 서오릉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꽃 축제로 많은 인파를 피한 곳이지만 순환도로 등등의 정체 몸살을 앓는 것에 비하면 그런대로 양호한 형편입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인 서오릉(西五陵)은 경릉(조선7대 세조의 맏아들로 세자 책봉되었으나 즉위 전 20세에 요절하여 이후 그의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추존된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조선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익릉(조선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 명릉(조선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 홍릉(조선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추가로 순회세자가 묻힌 순창원과 영빈이씨가 묻힌 수경원도 있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우리 육체의 숙명입니다. 시인 천상병의 말처럼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육체의 장막을 벗고 주께로 돌아갈, 귀천의 날이 올 것입니다.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자각까지 이어지며 박석이 깔린 참도(參道)가 있는데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신도(神道)라 하며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어도(御道)라 합니다. 2도(道)로 되어있는 참도 양편에는 신하들이 걸어갔던 변로가 참도보다도 더 낮게 조성되어 있는 곳은 명릉입니다. 

왼쪽 사진이 순창원, 오른쪽 사진이 명릉입니다만 순창원은 참도로만 되어 있고 명릉은 참도와 변로 즉 4개의 길로 되어 있습니다.

 

마침 인현왕후와 대결을 벌여 "천남성"이라는 독초의 사약을 마셨던 희빈 장씨의 묘소 "대빈묘"입니다.

군 훈련중인 사위의 눈썰미가 꽃봉오리채 떨어지는 모습에 꽃잎만 떨어지는 일반 벚꽃과는 다름을 지적합니다. 유난히도 꽃술이 길게 나와 있습니다.

또 멀리 있는 장끼의 모습을 발견한 사위의 지적에 지나던 모든 상춘객들도 바라보며 확인합니다.

장희빈과의 대결에서 폐위되었다가 다시 복위되어 임금 숙종과 그 옆에 묻힌 인현왕후가 있는 명릉까지 돌아봅니다. 구름버섯이 채취된 모습도 보입니다.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의 왕릉과는 규모나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게 조그마하지만 조선시대의 왕릉은 홍살문을 들어서며 정자각을 중심으로 수라간, 비각 등의 제향 공간이 있고 그 위 능침(능상)을 중심으로 뒤에는 병풍석, 앞으로는 난간석, 혼유석, 장명등, 문인석, 무인석 등으로 구성된 능침공간이 있습니다.

신라와 조선의 능을 비교해 보아도 훨씬 복잡해진 모습을 돌아보며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성이 우리를 혼미하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생각보다는  단순한 삶에서 우리의 영혼이 더욱 편안한 쉼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소풍나온 이 세상에서 가족의 반가운 재회가 단순한 기쁨의 마음으로 모든 시름을 잊게 만드는 오늘 안식의 날입니다.

 

추이.

(훈련중 먹고싶었던 리스트들을 바깥에서 하나씩 확인하는 즐거움도 가집니다. 하면서도, 논산을 수료하고 장성에서 전차운전교육중인 조카와, 괴산을 수료하고 대전에서 의무 교육중인 사위의 전통에서도 훈련의 강도는 다르지만 정신적인 자유와 압박도 다릅니다. 논샨의 유격은 당시 사정상 생략되었다지만 괴산은 20km, 40km두번의 행군과 유격이 치열했다네요. 발뱌닥의 동전크기만한 물집 자욱이 40Km행군의 흔적입니다. 하면서도 대전은 외박이 되는데 장성은 외출조차 안되어 면회만으로 즐기는 중이지만 외박 소식이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이젠 논산이 더 자유가 없었노라,  괴산의 훈련 강도가 더 셌노라, 서로가 자신이 더 힘들었노라 말하는 단순함조차도 복잡성의 일부입니다. 오사카로 가신 사돈내외는 늦은 저녁 목욕탕에 들어왔다는 채팅 이후에 또다시 연락이 없네요. 바쁜 즐거움으로 잘 지내시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이곳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