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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조원형목사님

160221 병든 줄 아는 사람

병든 줄 아는 사람

 

160221                                                                                  조원형목사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태복음 9:9~13)

 

현대인들의 인격 의학자, 선학 의학자인 폴 두르니에 박사의 "고독"은 사람의 심리적 현상을 기록한 글이다.

내가 왜 오늘을 살면서 고독한가, 외톨이로 사는가, 생각하고 고치자. 이 책에서 현대인의 고독한 이유를 말한다.

 

먼저, 의회 정신때문이다.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튈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소외당한다. 미움받고 거리감을 가진다. 남과 비교하여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맨처음엔 헌차라도 있었으면 하다가 차가 생기면 더 좋은 차를 갖고싶은 마음이 생긴다. 사랑과 친근감을 갖지 못핮다. 경쟁의 마음, 비교 정신이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뛰어나고 유명한 사람, 행복해 보여도 그 속은 텅텅 비어있는 고독을 본다.

 

둘째, 혼자이고 싶은 개인 정신, 독립 정신이 고독하게 만든다.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다. 하지만 착각이다. 사람은 만나서 부딪히고 함께 하며 살아야 하는데 혼자 편안히 살고 싶어도 그 내적인 속은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의 근본은 하나님이 창조때에는 좋았더라 하시더니 에덴에서 아담을 지으실 때는 그 다음 계획도 있겠지만 독처하고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아담을 지은 그 날에 하와를 지은 것이 아니라 고독을 느끼게 하시고 그 후에 하와를 지으셨다. 부모들의 소원이 다 자란 자식을 짝지어주는 것이다. 짝지어주니 자기들끼리만 좋아하고 부모를 서운하게 하는 일도 있지만 여튼 사람의 교류, 나눔으로 인해 행복을 찾고 속사람을 채울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고독, 외로움을 느끼게 하시고 하와를 만드셨다. 사람이 연합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그것이 행복, 감격, 감사인데 현대인들은 혼자서 살기 원한다. 그리하여 고독을 느낀다. 인간은 인간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과의 교제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영적인 의미에서 찾아야 한다.

 

세째, 사람들이 더 가지려는 소유의 욕망 때문이다.

무엇인가 소유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더 갖고싶은 욕망이 인격을 이기면 욕망따라 살다가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살았음을 깨닫게 된다. 자기가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면 내적인 공허감을 더 크게 느낀다. 소유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북한을 다녀온 분의 말이다.

스스로 혼자할 수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물질, 돈을 모아 무기를 만들어내는 것 외의 삶은 가난에 찌든 삶이다. 학교 건물을 외부에서 지어줘도 젊은이들이 들어와 일해도 배불리 먹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된다. 돈을 줘도 공산당 간부들이 주관한다. 일하는 사람의 음식은 멀건죽을 아침점심저녁으로 먹는다. 음식이 허술해서 미안하다 말해도 여기서는 세끼를 먹지만 집에서는 두끼도 못먹는다 한다. 이만큼이면 내게 과분하다 생각하는 것이 삶의 행복이다. 욕심을 부리면 더 고독한 삶이 된다. 어느 정도 소유를 가지면 나눌 줄 알아야 한다. 가정 이웃 교회 어느 곳이든 나눔으로서 교제가 시작되고 행복이 시작된다. 나눔으로 더 고귀한 사랑을 주고 나눈다.

그러나 욕망은 나눌 줄 모른다. 소유하고도 허탈한 마음이 된다.

 

네째, 내가 정당하다. 내가 옳다는 고집이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이 안되고 외로워지고 고독해진다.

 

본문의 마태가 당시의 세리장으로서 많은 소유를 가졌으면서도 내적 공허감과 갈등을 갖는다.

김용식 작가의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에서 왜 실패가 두려운가. 실패하면 내 곁을 떠나고 나를 무시하고 교제를 끊는 것이 무서워서이다. 남들이 나에게 다가와도 그 호의를 거절해야 하는 실정에서 내가 비록 옳을지라도 남의 말을 청취하고 들어야 한다. 양보 배려의 정신이 이 병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두가지 죄인이 있다. 창녀와 세리이다. 교제하면 안된다. 유대인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치기에 사회적으로 죄인이었다. 창기와 마찬가지로 인사해도 안된다. 그런데 세리장인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다. 또 마태는 세리 친구들을 부른다. 이 때 바리새인들이 지적한다. 왜 죄인들과 음식을 잡수시는가, 우리 관습으로는 용납이 안된다고 비난한다. 제자들도 갈등으로 답변이 모호하다. 그 때에 예수님이 정확한 해답을 말씀하신다. 병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이에 제자들도 마음놓는다. 호세아 6:6의 말씀으로 인용을 더하신다. 제사보다 긍휼을 더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자기 자신이 병든 줄 아는 것이 더 소중하다.

건강한 신앙인으로 착각하는 것이 더 문제이다. 마태는 스스로 병든 줄 알고 메시야를 사모하는 사람임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마태를 보았다는 것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는 것이다. 마태의 눈빛을 보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하신다. 마태가 이에 곧바로 따랐다는 것은 메시야를 향한 소원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마태의 과거를 추측해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신앙인으로 자랐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 어느 싯점에서 미혹을 받는다.세상은 신앙만으로 안되고 돈이 있어야겠다 하여 열심히 산다. 세리장까지 오른다. 세례 요한의 외침 소리와 예수님 소식을 들으며 회개하는 마음이 불붙었을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사는 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을 공경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내 속 사람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우리의 속사람을 채우는 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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